시사, 상식

암살 시도 부른 ‘정치 양극화’, 폭력은 민주주의 파괴한다

道雨 2024. 7. 15. 09:40

암살 시도 부른 ‘정치 양극화’, 폭력은 민주주의 파괴한다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 도중 총성이 울린 뒤 얼굴에 피를 흘린 채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대피하고 있다. 버틀러/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전당대회를 코앞에 둔 중요 정치집회에서 연설을 하다 암살당할 뻔했다. 발사된 총알이 불과 몇㎝만 비켜 날아갔어도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리는 큰 비극이 발생할 수 있었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사실상 ‘내전 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내 정치가 양극화돼 있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로 시름하는 한국도 더 늦기 전에 정치 갈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13일(현지시각) 오후 6시께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단에서 연설을 하던 도중 총성이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단 아래로 몸을 숨겼고, 경호원들이 재빨리 달려와 그를 감쌌다.

그는 몇시간 뒤 소셜미디어에 “총탄이 내 오른쪽 귀 윗부분을 뚫었다”며 “미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적었다.

 

국제사회는 이번 미국 대선을 ‘신냉전’ 시기 대외정책 방향을 사실상 결정짓는 중요 ‘변곡점’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국내 정치에서 갖는 의미는 크게 달랐다.

이날 충격적인 사태에서 보듯, 인종·성소수자·이민·임신중지 등 핵심 이슈에서 서로 다른 ‘국가 정체성’을 주장하는 집단이 사실상 총성 없는 내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일반적 갈등과 달리, 정체성을 둘러싼 싸움은 해법 마련이 어렵고 쉽게 극단화될 수 있다. 미국의 정치 갈등이 쉽게 치유하기 힘든 ‘병적인 단계’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번 사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해온 저소득·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은 더욱 단결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정치 양극화도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다. 2022년 퓨리서치센터 조사를 보면, 전세계 주요 19개국 가운데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과 갈등이 가장 심한 국가 가운데 2위는 미국, 1위가 한국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2006),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2024) 등 주요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점점 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공존하기 힘든 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정이 심각하지만, 여야 모두 눈앞의 승리를 위해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최근엔 ‘가짜 뉴스’까지 등장하며 이런 경향이 증폭되는 중이다.

 

정치는 대화를 통해 타협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더 늦기 전에 정치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 2024. 7. 15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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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장 울린 8발의 총성… 트럼프, 피 흘리면서도 “Fight”

 

[美대선 트럼프 암살 시도]
긴박했던 트럼프 피격 순간
1만5000명 지지자 모인곳서 총격… 총상 트럼프 연단 아래로 몸 숨겨
다시 일어나자 청중들 “USA” 연호… 현장 청중 1명 숨지고 2명은 중태

 

 

 

* 13일(현지 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오른쪽 귀에 총을 맞은 뒤 피를 흘리면서 비밀경호국 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가고 있다. 버틀러=AP 뉴시스

 

 

 

군중의 환호 속에 등장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특유의 자신만만한 어투로 연설을 시작했다. 하지만 불법 이민에 대해 “(국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차트를) 보자”며 살짝 고개를 돌리는 순간, 멀리서 3번의 총성이 울렸다. 즉시 오른쪽 귀에 통증을 느낀듯 손을 갖다 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대로 연단 아래로 몸을 숨겼다. 13일 오후 6시 11분(현지 시간) 순식간에 벌어진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한 암살 시도는 축제와도 같던 현장을 순식간에 끔찍한 아수라장으로 바꿔 버렸다. 경호원 4명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몸을 감싼 뒤에도 총성은 5번 더 이어졌다. 총격으로 연단 뒤편 오른쪽 청중석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은 머리에 피가 낭자한 채 쓰러졌고, 주위 사람들은 긴급히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 축제의 유세장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는 15일부터 나흘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개최될 공화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열린 행사였다. 유세 현장은 낮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가 쓰인 모자와 티셔츠 등을 걸친 약 1만5000명의 지지자로 열기가 넘쳐 흘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정보다 1시간가량 늦은 오후 6시경에 나타났는데도, 유세 참석자들은 컨트리 음악 가수 리 그린우드의 노래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를 따라 부르며 환호했다.

 

하지만 약 10분 뒤 암살 시도가 벌어지자 현장은 충격과 공포로 가득했다. 연단 밑으로 몸을 숨겼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약 1분 뒤 경호원들과 함께 일어섰을 땐 오른쪽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입 주변까지 번져 있었다.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대로 무대를 내려가지 않았다. 경호원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채 “대통령님(Sir)”을 외치며 무대 아래로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그는 “(벗겨진) 신발 좀 신겠다” “잠깐, 잠깐”을 반복하며 경호원들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지자들을 향해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싸우자(Fight)”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 순간, 공포에 질려 있던 관객석에선 “미국(USA)”을 외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시 뒤 무대 옆으로 내려가 경호원들이 쉐보레 서버번 차량에 태우는 동안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시 한번 군중을 향해 돌아서 환호에 답했다. 그가 차를 타고 떠난 건 오후 6시 14분, 암살 시도 약 3분 뒤였다.

 

 

 

 

● “트럼프의 본능이 만든 장면”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인 모습은 향후 대선 정국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그(트럼프)의 본능이 만든 장면”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 사이의 강력한 유대감, 현대 미디어에 대한 그의 능숙함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순간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떠난 뒤, 유세장에는 현장에서 총을 맞고 숨진 남성 1명과 중상을 입은 2명의 남성이 남아 있었다. 다친 2명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지만, 현재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NYT에 따르면, 유세 참석자들은 당시의 혼란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억했다. 한 시민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였다”며 울먹였고, “모르는 사람과 손을 잡고 주기도문을 외우며 기도했다”고도 전했다. “혼란을 피해 도망치고 싶었지만,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가로막아 나갈 수 없었다”고도 했다. 한 지지자는 유세장에서 “트럼프가 오늘 당선됐다. 그는 순교자다”라고 계속해서 소리치기도 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