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독립기념관장'이란 형용모순에 침묵한 언론은?
조선일보 '딴청'·KBS '단신'…친일·어용 언론 증명
한겨레·경향 강하게 비난…한국·국민 "부적절" 사설
동아도 "논란" "유감"…그러나 단지 '논란꺼리'인가?
서울· 문화· 세계 등은 또 '여야정쟁' 몰이로 왜곡
친일 뉴라이트 성향을 갖고 있는 김형석 씨가, 광복절을 앞두고 지난 9일 독립기념관장에 취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독립운동을 ‘반일 종족주의’로 폄하해 온 친일 극우 인사를, 끝내 민족 자주·독립의 역사를 보존하고 전시하는 국가 공식 기념관의 수장에 앉혔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형용모순인 ‘친일 독립기념관장’이 탄생한 것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헌법정신과 역사적 정의에 반하며, 독립 정신이 훼손되고 우리의 정체성이 유린당한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한 때 윤 대통령의 ‘정치 멘토’라고 불렸던 그는 “배신감을 느낀다” “용산에 밀정이 있다”는 격한 감정적 표현도 쏟아냈다.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시민사회와 야당도 크게 반발하며 철회를 요구했으나 윤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도 이 사태를 중요하게 보도했다.
경향신문의 사설 제목처럼 ‘제 정신을 갖고 있는’ 언론이라면 친일 뉴라이트 성향의 인사를, 다른 곳도 아닌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 이 정부의 반역사적·반민족적 행태를 강력히 비판하는 게 당연하다.
이것은 무슨 정치적·정파적 진영 간의 대립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 국민 보편적 감정은 물론이고, 헌법 가치를 농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류 언론 가운데 조선일보, KBS를 제외한 대부분은, 윤 대통령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과 광복회·독립운동가 단체,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발을 기사로 보도했다. 한겨레, 경향신문은 물론, 스스로 ‘중도지’를 자처하는 한국일보, ‘보수’ 매체 중 하나인 동아일보와 국민일보도 사설을 통해 김형석 씨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7일 “독립기념관장까지 ‘뉴라이트’로 채우다니” 사설에서 “당혹스럽고 기가 찰 노릇, 도대체 윤 대통령은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하는가”라고 개탄했고, 9일에도 “독립기념관이 친일파 명예회복위원회인가” 사설에서도 “독립기념관이 머잖아 친일파 명예회복위원회가 될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다”고 썼다.
경향신문도 7일 “독립기념관장마저 ‘뉴라이트’ 인사라니, 윤 정부 제정신인가” 제목의 사설에 이어 9일에도 “역사교육 기관장 뉴라이트로 채우는 정부 역주행 멈추라” 제목의 사설을 냈다.
경향은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등, 최근의 여러 뉴라이트 인사들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임명을 강하게 비판하고 “뉴라이트 인사 강행의 평지풍파가 일고 있다,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역사를 축소·왜곡하려는 반역사적 인사를 멈춰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 ‘중도지’임을 내세우는 한국일보는 “친일이 반민족 아니란 인물이 독립기념관장이라니”(8.7) 제목의 사설을 냈다. 순복음교회가 주인인 ‘보수적 성향’의 국민일보의 8일자 사설 제목도 “인사가 만사인데...독립기념관장 임명 부적절하다”였다.
‘조중동’으로 묶여 ‘친윤·어용·보수’ 매체로 분류되는 동아일보가 이번 사태에 비판적 논조를 보이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동아일보는 8일자 “독립기념관 이사 이어 관장까지 굳이 ‘논란의 인사’를” 제목의 사설에서, 광복회가 반발하고 있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면서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독립기념관 수장 인선을 놓고 정부와 광복회가 갈등을 빚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유감”이라고 썼다. 또 “독립을 기념하는 일은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합의의 영역일 것이다. 그런 영역에서까지 굳이 ‘역사에 정치를 끌어들이려는 의도’라는 반발을 사며 논란을 자초했어야 했나”라고 지적했다.
과거 자신의 친일보도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동안 줄곧 친일 기득권 세력의 편에 서온 동아일보가, 윤석열 정부와 뉴라이트에 대해 이 정도의 비판적 논조를 보이는 것만 해도 의외다. 다만, 동아일보가 이번 사태를 ‘논란’으로 표현하고 ‘유감’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 자체가 ‘논란’이고 ‘유감’스럽다고 해야할 것이다.
독립운동을 폄훼·부정하고 일제식민 지배를 두둔하는 친일과 극우는 ‘논란’과 ‘유감’의 소재가 아니다. ‘비판’과 ‘처벌’의 대상일 뿐이다. 유럽에서 독일의 극우 나치를 미화하고 두둔하는 것은 피점령국에서뿐만 아니라 독일 내에서 여전히 비판과 처벌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류 언론들 중에는 친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관대함을 보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정치인이 친일 발언을 해도 그것이 비난받을 일이 아닌 그저 ‘논란꺼리’ ‘정쟁꺼리’ 정도로 축소해 보도하는 것이다.
심지어 기자들은 이런 태도가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친일 매국과 그것을 비판·반대하는 것 사이에 ‘중간’은 있을 수 없다. 친일 매국은 배신이며 범죄로서 비판과 처벌의 대상이지 언론이 ‘중립’의 위치에서 관조하며 ‘논란꺼리’로 축소·호도할 일이 아니다. 겨레와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극우 세력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양지로 나와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언론이 이런 식의 보도로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와 함께 과거 일제침략을 미화하며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던 조선일보는 김형석 씨 독립기념관장 임명~취임 비판여론이 나오는 지난주 단 한 건의 관련 기사도 보도하지 않았다. 마치 친일 극우 인사가 독립기념관을 비롯한 여러 공직에 채용되는 것이 무슨 문제라고 소란이냐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광복회 등의 반발이 거세지자 12일자에 '논문, 저서를 보면 김형석이 뉴라이트가 아니다'란 취지의 기사를 실었다. 김형석 씨가 '보수'이긴 하지만 '극우 뉴라이트'까지는 아니니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가 웃을 소리다. 김형석 씨는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 임시정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1948년이라고 하고 식민지배 기간 한국인의 국적은 일본이었다는 식민지배 합법화 발언을 하는 자이다. 뉴라이트의 주장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친일 독립기념관장'이란 형용모순에 비판 여론이 커지자 이를 모면하고 변명하려고 억지 주장을 기사로 쓴 것이다.
조선일보는 광복절을 앞두고 오히려 TV조선 등의 방송에서 일본 노래를 일본말로 부르는 것이 이제는 문제될 것 없다는 내용의 기사(“예전엔 ‘왜색’ 손가락질...이젠 일상이 된 일본 노래”. 8. 2)와, 지난해 국민들과 야당의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반대 주장을 ‘괴담’이라며 사과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조의 사설(“오염수 괴담 1년, 거짓에 반성한 사람 아무도 없었다”, 8.7)을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줄곧 일본 극우와 한국 내 친일 세력의 입장을 충실하게 대변해 왔다. 광복절을 며칠 앞두고 일본 노래 부르기 기사와 후쿠시마 오염수 두둔 기사를 내는 것은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조롱하는 것이다. 또 이번 ‘친일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제대로 기사화조차 하지 않으로써 윤석열 정부의 반민족적 행태에 대해 비판과 논란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극우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 정권과 국내 친일 세력이 벌이고 있는 ‘독립 역사 지우기’ 막장 드라마에 조선일보가 중요한 배역을 맡은 것이다.
‘땡윤 뉴스’로 전락한 공영방송 KBS도 이번 뉴라이트 독립기념관장 임명 사태에 대해 비판은커녕 보도를 자제하고 있는 주류 언론 중 하나다. KBS는 대전과 제주 지역방송만이 광복회·시민단체 등의 반발 내용을 단신으로 보도했을 뿐 서울지역 방송의 9시 메인 뉴스에서 관련 뉴스를 보도하지 않았다.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등 친일·극우 조선일보의 아류 매체들은 조선일보처럼 사태의 본질과 배경에는 입을 닫고 대신 야당의 정부 광복절 기념식 불참 결정을 비난하는 기사와 사설을 썼을 뿐이다. “정부가 김형석 관장 임명 전에 광복회 등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민주당과 25개 독립운동가 단체가 따로 광복절 행사를 열기로 한 것에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세계일보 사설)며 오히려 엉뚱한 ‘개탄’을 남용하고 있다.
고통스러웠던 일제 36년의 과거사는 우리 국민들에게 ‘논란’이나 ‘유감’의 대상이 아니다. 사과도 하지 않은 일제 침략의 역사 앞에서 한국 언론이 ‘중립’에 선다는 것은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윤석열 정부의 8.15 광복절을 앞두고 한국 주류 언론들의 친일·극우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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