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붕괴 시대를 만들고 있는 대통령과 간신들
[김종대 칼럼]
의료·교육·군대까지 국가기반 붕괴
지금은 의료 공백 아닌 국민 안전 비상사태
자기도취 대통령과 우글거리는 사리사욕 간신들
여야는 파국 막기 위한 대화 긴급히 도모해야
2003년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발생한 물류 대란은 신생 노무현 정부에 큰 충격이었다. 그 여파로 2004년 3월에 제정된 재난안전법(이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으로 개정)은, 사회적 위기가 닥쳤을 때 국민의 안전과 정부의 기능이 유지되도록 제반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2007년에 개정된 이 법에서는 에너지, 정보통신, 교통수송, 보건의료 등 “경제, 국민의 안전·건강 및 정부의 핵심 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설, 정보기술시스템 및 자산”을 ‘국가 핵심 기반’이라고 정의한다.
2024년 현재 11개 주관기관, 144개 관리기관, 363개의 시설이 국가 핵심 기반으로 지정되어 있다.
28개 의료기관은 전쟁 때에도 기능 유지해야 할 국가 핵심 기반
이 시설에 대해 행정안전부는 안전정책조정위원회를 운영하여 국가 핵심 기반 보호계획 수립지침을 관리기관에 통보하고 관리 실태를 점검하며 재난관리를 평가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관리기관과 주관기관은 핵심 기반에 대해 보호 계획을 수립하고, 핵심 기반의 기능이 연속성을 유지하도록 의무를 부과한다. 평소에 안전점검과 정밀진단을 시행하되,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고 위기관리 메뉴얼을 유지하며 비상 상황을 관리하도록 한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를 보면, 국립중앙의료원과 8개 대학병원(서울대, 경북대, 전남대, 충남대, 충북대, 경상대, 분당서울대, 양산부산대), 20개 혈액원이 핵심 기반으로 지정되어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이 28개 의료 기관에 대해서는 전쟁이나 사회재난, 자연재해 등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반드시 그 기능을 유지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의료 기관은 원전, 석유 시설, 철도, 공항, 정보통신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국가 생존의 기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올해 2월에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한 의료 개혁안을 발표하고, 그 직후부터 전공의가 속속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8월부터 직격탄을 맞은 충북대 병원의 일부 셧다운 사태에 대한 첫 보도가 나왔다. 이후 9월까지 충남과 부산에서도 유사한 응급실 마비 현상이 나타났다.
응급실과 배후진료 마비 사태는 재난 및 안전관리법에서 규정한 국가 핵심 기반으로 지정된 의료 기관에서 먼저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국가 핵심 기반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는 어떤 의견이나 비상조치를 건의한 적이 없고, 당연히 위기관리 메뉴얼도 작동하지 않았다.
국가 안전 비상사태에 손놓은 정부, 흔들리는 항상성
주관 기관인 보건복지부와 관리기관인 시·도는, 응급실과 진료 정상화를 위해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재난 및 안전관리법을 위반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의 의료 공백 사태를 업무 복귀명령에 응하지 않은 전공의 탓으로 돌리는 것 말고, 국민 안전의 비상사태에 대비한 법령 체계와 행정 기능은 완전히 고장났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으며, 책임을 질 생각조차 없다.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재난 및 안전관리법은 사실상 파산 상태로 치달을 수 있다.
처음에는 이 상황이 의료 개혁 문제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국민 안전 사태라고 보아야 한다. 지금의 의료 붕괴는 경부선 축을 따라 충청권과 대구, 부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돌발적인 응급상황에서 100km를 이동하여 수도권 병원으로 몰려드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문제는 치료 가능 환자가 의료 공백으로 얼마나 사망하였는지를 알려주는 ‘초과 사망률’에 대해서는 통계조차 나오지 않고, 간헐적으로 벌어지는 안타까운 사망 사례만 언론에 보도될 뿐이다.
정부의 책임 있는 설명이 없고, 알 권리를 충족하지 못한 국민의 심리적 불안은 실제 의료 공백보다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전쟁 상황에서도 유지되어야 할 정부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개혁이라도 국가 생존의 기반을 위협하면서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우리가 국방개혁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개혁을 핑계로 휴전선 경계마저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어떤 개혁이라 하더라도, 국가를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이 침해될 수는 없다.
의대 증원을 위해 법까지 위반한 정권의 과시욕과 대학의 탐욕
우리나라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수험생이 입시를 안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끔, 전국 4년제 대학의 학사, 재정, 시설 등 주요 관심사에 대하여 의견을 모아 정부에 건의하여 정책에 반영하게 하는 대학교육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대교협 등 ‘학교 협의체’는 입학연도 개시 1년 10개월 전까지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공표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래서 대입전형 시행계획은 입시생이 고2가 되는 해의 4월 말까지 예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유독 2025학년도 모집 요강은 ‘대학 구조개혁을 위한 학과 개편 및 정원 조정 시한’에서 2024년 4월 말까지 신청하고 5월 말까지 심의·조정을 완료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의 의대 정원이 여기에 해당된다. 올해 의대 정원 조정안이 법원에 집행정지 소송이 제기됨에 따라, 각 대학은 재판 결과를 지켜보느라고 5월까지 정원 증원에 따른 학칙 개정을 미루다가, 판결 이후 부랴부랴 학칙 개정을 완료했다.
이는 명백히 고등교육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임에도 교육부와 대학이 이를 방치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이런 교육제도의 문란함은, 현실을 무시하고 정원을 늘리려는 대학 당국의 탐욕과 정권의 과시욕이 결합된 결과다. 이런 한탕주의식의 입시 제도에 현혹된 수험생들이 대규모로 의대를 지원하면서 한바탕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다.
8월 말에 “의대 증원 문제는 6개월이면 끝난다”고 공언한 정부 고위 관료들은 바로 이 점을 노렸을 것이다. 내년 3월 입학식만 무사히 치르면 의대 증원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니, 시간은 자기네 편이라고 믿는 것이다.
자기 과시욕 충족 위해 의대 교육 현장에 재앙 부르는 윤 대통령
이후 교육 과부하로 인해 의대 교육 현장에서 벌어질 혼란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더 큰 망상이 따라온다. 나중에 의대 시설 투자에 2조 원을 투입하겠다며 일단 정원부터 늘리고 보라는 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도제식 교육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의대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의학을 연구하는 전문 직업집단으로서 의대 교수를 깔보고 무시하는 우월감이 도사리고 있다. 서울의 일부 의과 대학의 경우 1~2학년 남자 재학생의 63%가 군대를 가겠다며 휴학을 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앞으로 닥칠 대규모 유급 사태는 물론이고, 일시에 복학하는 학생이 늘어난 정원과 합쳐질 경우, 지금의 2배인 7000~8000명이 일시에 교육을 받는 2026년 이후 상황은 거의 재앙이다.
지금의 의료 대란은 국민 안전 비상사태인 동시에, 정치화된 교육과 입시 제도가 파산으로 가고 있는 명백한 징후다. 설령 의료 개혁이 국민이 지지를 받는 선한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 방법이 권위주의와 불투명, 무엇보다도 윤석열 대통령의 자기 과시욕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됨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형국이다.
이런 폭주는 추석 명절 직전에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을 20%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런 국정 파행은 대통령실과 여당 간에도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파국을 계속 감내할 것인지, 아니면 여야가 협력하여 윤 대통령의 폭주를 멈추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의료 대란 다음의 재앙은 국가 안보 초석인 군대
만일 윤 대통령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면, 의료 대란에 이어 나타날 다음의 재앙도 각오해야 한다.
작년에 윤 대통령의 대규모 연구개발 예산 삭감은, 한국이 과학 인재의 순유출국으로 더욱 곤두박질치게 했다.
다음의 재앙은 국가 안보의 초석인 군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에서, 한 때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던 대학 학군단이 미달 사태로 돌변하였고, 초급 간부가 정원에 비해 지원이 미달되어 군대 조직의 허리가 붕괴될 조짐이다.
원래 의료 취약 지대에 있는 군 의료체계는 군의관 지원의 급격한 감소로 그 수명이 몇 년 남지 않은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개혁은, 진정한 개혁의 본질에 집중하는 체계적이고 신뢰성 있는 방식이 아니라, 개혁을 빙자하여 자기도취를 충족시키는 방식이다.
자존감이 약한 측근과 관료들이 직언을 하지 못하고 면종복배하는 예스맨으로 전락하게 되는데, 이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밝힌 간신의 6단계 중 2번 째, 즉 군주의 말에 무조건 영합하며 아첨하는 신하인 유신(諛臣)에 해당된다.
이런 예스맨들은 윤 대통령이 현실과 동떨어진 국정 브리핑을 하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과 정치를 분리시키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3번째 단계, 즉 간신(奸臣)으로 진화한다.
국민 안전과 교육의 비상사태를 초래했고, 앞으로 국방을 무너뜨릴 자들이다. 지금이 바로 그들의 전성시대다.
여야는 정치적 견해를 초월하여, 지금의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김종대 매의 눈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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