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극도로 위험한 대통령

道雨 2024. 12. 6. 10:04

극도로 위험한 대통령

 

 

 

정신의학자인 제임스 길리건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라는 책에서, 미국에서 공화당 대통령의 당선이, 세계대전이나 대공황 같은 커다란 사건을 고려한다 해도 미국의 살인 범죄율과 자살률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는 점을 입증한 바 있다.

특히 대통령 개인의 특성보다 속한 정당이, 그리고 추진하는 정책이 주는 모멸감과 수치심이 주요한 요인이라고 했다.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뤄낸 한국의 경우 그 경향이 더 강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정치는 개인이 아닌 세력이 하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3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하면서, 길리건이 그렇게 공들여 입증해낸 과학적 사실과는 다르게, 개인 그 자체가 너무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게 드라이까지 한 머리를 하고 비상계엄을 발표하는 대통령의 표정과 입으로 내뱉는 적의로 가득한 말을 들으면서, 그리고 서울 여의도 한가운데 나타나서 국회 유리창을 부수는 총을 든 군인들을 보면서,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행하는 군사작전 미션의 한 장면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다. 역사책이나 영화에서만 본 계엄이 내 현실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안 해봤기 때문이다.

물대포를 맞은 농민이 사망하는 시위의 한가운데에서도, 몇달간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 대통령 탄핵 요구 시위라는 엄청난 격동 속에서도 없었던 일이니, 말이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을 보면서 슬슬 현실감이 생겼다. 정치 활동과 집회도 금지하고, 언론도 통제한다는 말에 황당함은 두려움이 되었다. 파업 중인 전공의는 48시간 내 복귀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계엄법에 따라 “처단”한다고 했다. 포고령을 위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처단한다고도 했다.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전공의가 얼마나 미웠길래 처단한다는 말을 5항에 별도로 적었을까? 심지어 현재 파업 중인 전공의는 없는데 말이다. 사직하고 병원을 떠난 전직 전공의만 있을 뿐인데 안 돌아오면 누구를 처단한다는 것인가 말이다.

 

포고령을 보면, 대통령은 국회, 언론, 노조 그리고 전공의를 반국가 세력, 체제 전복 세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아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방해하는 모두를 영장도 없이 체포하고 구금하고 싶은 것 같다. 아마도 대통령은 이 모두를 처단하고 싶은 모양이다.

설득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해법을 모색할 국가의 한 주체가 아니라, 그냥 치워 버려야 할 적. 그 날것의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포고문이다.

그동안 이뤄낸 우리의 인권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민주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본 원칙이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담을 넘어 국회에 들어간 국회의원들이 계엄령 해제 요구 결의안을 채택하고, 대통령이 국회 요구를 수용해서 계엄을 해제한다는 발표를 했다. 그 발표에도 두려움과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계엄에 실패한 대통령이, 북한으로 미사일이라도 쏘면 어쩌지 싶은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었다. 군사동맹이라고 그렇게 강조하던 미국에도 계엄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한 대통령이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다고 그걸 안 할까 싶었다.

 

현실이 되긴 어려울 텐데, 그런 건 막을 수 있는 수준의 정부와 사회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임을 알고 있음에도, 합리적인 추론과 판단이 어려울 정도였다.

내가 믿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합의와 개념이 한 사람으로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짧은 시간이지만 경험했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잠시간 머뭇거리지 않았다면, 국회의원들이 그리 신속히 모일 수 없었다면, 우리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마주했을 것이다.

 

2021년 전두환이 사망한 날, 그가 그렇게 편안하게 90살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사실에 몰아쳤던 허탈감이 다시 떠올랐다. 공권력을 동원해 수많은 국민의 삶을 앗아간 자가, 이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이를 통해 얻어낸 수많은 이익에 대한 환수도 없이, 충분한 죗값을 치르지도 않고 사망했다는 사실이 허탈하고 미안했다.

전두환이 그렇게 죽게 그냥 두니까 어젯밤의 그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발생한 게 아닌가 싶다.

 

극도로 위험한 개인도 있다.

즉시, 극도로 위험한 대통령이 아무것도 못 하게 해야 한다.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