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재편하는 '실용외교의 시대'
'친미=반중+반북'...극우들의 공식이 무너진다
흡사 '왕의 귀환'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돌아왔다.
취임 열흘 만에 200개 넘는 행정명령을 쏟아내며 워싱턴의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의회 폭동 관련자 1500명 사면, 멕시코 국경 비상사태 선포와 군병력 투입, 파리 기후협약 탈퇴, 연방 공무원 200만 명 권고사직, 세계보건기구 탈퇴 등, 파격적인 조치들이 연일 발표되고 있다.
이미 상당수 행정명령이 법적 도전에 직면했다. 2기 정부의 성공을 예상하기엔 너무 이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워싱턴의 오랜 제도와 규범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이는 '모 아니면 도'의 극단적 대결 국면으로 전개될 것이 자명하다.
한미동맹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재취임 직후 '친미는 곧 반중, 반북'이라는 한국 보수 진영의 동맹관을 뒤흔들고 있다. 대선 공약이었던 중국 60% 관세 부과를 10%로 대폭 낮추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하며 협상 파트너로 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내에서도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정치인이다.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는 워싱턴의 '반트럼프 정서'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의 실용주의적 외교 기조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전략적 대응을 모색한다면 오히려 기회의 문이 더 열릴 수 있다.
트럼프의 실용적 대중 전략
공언해 온 대로, 트럼프는 중국에 먼저 관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대선 기간 공언했던 60%보다는 확연히 낮은 10%를 부과했다. 그것도 무역 불균형 관련 조치가 아니고, 중국의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수출에 대한 소극적 대응 때문이었다. 향후 무역 협상이 결렬되거나 하면 관세 보복 수준을 훨씬 더 올릴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일단 중국 반응을 지켜보겠다는 수준의 관세다.
이런 탄력적 관세 부과 전략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의 조언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줄곧 관세는 시장이 적응할 시간을 주면서 산업별, 국가별로 맞춤형 접근을 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가 이런 조언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내 지지층을 향한 트럼프의 거친 '말'과 실제 '행동'을 잘 구분해야 함을 시사한다.
트럼프의 에너지 전략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을 대폭 확대해 세계 에너지 패권을 확보하려는 야심을 보인다. 이 전략에는 중국의 에너지 수급 취약성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미국이 2028년까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능력을 두 배로 확대하는 계획은 LNG 최대 수입국인 중국에 대한 견제와 협력을 동시에 도모한 포석이다. 물론 유럽연합에 대한 러시아의 에너지 영향력 약화가 더 큰 전략적 밑그림이긴 하다.
대중국 기술 정책에서도 실용주의적 접근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틱톡(짧은 동영상 플랫폼)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 1월 19일 연방대법원이 틱톡 모기업 매각을 결정했을 때, 트럼프는 전면 금지 대신 75일간의 유예 기간을 부여하고, 미국 기업의 50% 지분 인수라는 구체적 해법을 제시했다. 더 나아가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경우 대중 관세 조정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안보 우려 해소와 경제적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이런 실용주의적 기조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트럼프는 규제 완화로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오픈AI, 오라클, 소프트뱅크와 협력해 4년간 최대 5000억 달러를 투자함으로써 인공지능(AI) 및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대중국 우위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560만 달러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미국 거대 기업들과 맞먹는 AI 모델을 개발해 낸 것이다. 이는 첨단 반도체 칩 수출 규제만으로는 중국의 기술 발전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트럼프 정부는 이에 대응해 화웨이식 전면 통제가 아닌 틱톡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기술이전과 데이터 접근은 제한하되, 시장 중심의 기술 경쟁은 유지하는 실용적 균형점을 찾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 기조는 '신냉전'을 강조하며 미국의 일방적 압박만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과는 거리가 있다. 이념적 체제 경쟁 구도와도 다르다. 그는 중국을 견제해야 할 경쟁자로 보면서도, 실익이 있는 분야에서는 적극적인 협력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양면 전략은 인선에서도 드러난다. 대중 강경파로 알려진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직접 소통 채널을 유지하며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는 한편, 대중 강경파인 국무장관과 실무진을 통해 협상에서는 강경한 입장을 관철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이런 트럼프의 실용주의적 접근에 호응하는 모습이다. 한정 부주석을 트럼프 취임식에 파견해 최고위급 소통 채널 유지와 협상 의지를 보인 것이 단적인 예다. 이런 흐름을 볼 때 트럼프는 냉전식 봉쇄정책 대신, 안보와 경제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면서도 사안별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의 실용주의적 북핵 해법
대북 접근에서도 트럼프의 실용주의는 뚜렷하다. 취임 후 1주일도 지나지 않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한 것은 그동안의 미국 정부 공식 입장을 뒤엎는 파격적 변화다. 이는 2기 임기 내 조기에 북한과의 협상을 성사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1기 정부 시기의 미북 정상회담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김정은과의 대화 의지를 다시 피력했다. 취임 하자마자 김정은을 "똑똑한" 협상 파트너로 평가하며 "서로 좋은 관계"를 강조했고, 심지어 취임식 당일 주한미군 화상통화까지 대북 메시지 창구로 활용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물론 북한은 트럼프의 구애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며 신무기 개발과 핵·미사일 기술이전을 통해 군사력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 전략도 변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보다 러시아 협력을 통한 유엔 제재 회피와 '탈미국 경제블록' 참여를 우선시하는 모습이다. 최근 해상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한 것도 이런 강경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대미 협상력 강화를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러시아보다 미국이 제시할 수 있는 '당근'이 더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한국과 대화 제안은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의 한국 패싱 상황을 활용해 러시아가 한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북미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트럼프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동결, 핵군축, 장거리 미사일 개발 제한 등 실현 가능한 목표를 순차적으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른 제재 완화와 북미 간 연락사무소 개설과 같은 초보적 단계의 외교관계 개선을 추진할 가능성도 높다. 이는 북한이 추구하는 '병진노선'과도 접점이 있어, 협상을 통한 실질적 관계 진전이 가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트럼프의 이런 실용적 대북 접근으로 인해, '반북=친미'라는 극우적 도식은 당분간 설득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를 가장 친미적이라 자처하는 세력이 미국 대통령을 종북으로 규정하기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이 최근 반중 공세에 집중하는 이유로 보인다.
한국 외교의 미래: 이념에서 실용으로
트럼프의 행보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과는 안보 경쟁을 하면서도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고, 북한과는 비핵화라는 이상론 대신 핵동결 및 미사일 개발 제한이라는 현실적 목표를 추구한다. 이는 모든 외교관계를 미국의 국익이라는 단일 기준으로 조정하겠다는 의미다. 물론 그 '국익'의 실체를 두고 미국 내 논란은 불가피하다.
강력한 '친미세력'을 자처하는 한국의 극우세력은, '친미는 곧 반중, 반북'이라는 시대착오적 인식에 갇혀, 탄핵 찬성 국민을 '종북·친중'으로 매도하고 있다. 나아가 부정 선거 음모론을 넘어, 주한미군과 미 국방정보국, 국방부의 선관위 작전 개입설은 물론, 트럼프 당선자와의 연계설까지 날조해 유포하며, 트럼프가 자신들의 편이라는 허위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트럼프의 내정간섭까지 요구하는 이들의 행태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이는 동맹 간 신뢰를 훼손하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실추시키는 행위다. 어느 나라 보수가 다른 나라에 내정간섭을 요청하며 읍소하겠는가. 극우 진영의 이런 자해성 밀고 행태는, 트럼프에게 한미 협상의 우위를 스스로 갖다 바치는 꼴이 될 뿐이다.
현재의 위기는 한미동맹 자체가 아닌, 동맹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있다.
트럼프의 미국이 보여주듯, 국익을 위한 실용적 동맹관이 필요하다.
너무나 당연한 애기지만, 동맹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며, 그 방향은 언제나 국익이라는 좌표를 향해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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