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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마이너스 최악 위기, 한국 경제 대수술 기회로

道雨 2025. 4. 28. 09:42

성장률 마이너스 최악 위기, 한국 경제 대수술 기회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미국이 100년 전 사용했던 정책이다. 1920년대 압도적 지지를 받는 미국 공화당 정부는 친기업, 부자 감세, 관세 인상, 고립주의를 기치로 하는 정책을 편다. 현재 상·하원을 미국 공화당이 장악한 가운데 친기업, 부자 감세, 관세 인상, 미국우선주의를 펴는 트럼프 정부의 모습과 판박이처럼 보인다.

진보시대에 대한 반발이 친기업, 감세, 고율 관세 정책 불러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의 부작용에 직면한 미국에서는 개혁의 바람이 불었고, 이를 미국 역사에서는 ‘진보시대(Progressive Era)’라 부른다. 진보시대는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절 절정에 달했다. 이 시기 연방준비제도(미국 중앙은행)가 창설되고, 반독점법 강화,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이 제정됐다. 1차 세계대전 참전과 승리, 민족자결주의 선언 등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그러나 개혁의 성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반면 피로감은 쌓이고, 전쟁 후유증과 여전한 정치 부패에 대한 실망이 겹치면서 윌슨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윌슨이 주창한 국제연맹은 상원에서 부결됐고, 윌슨 자신도 정책 홍보 순회 중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후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됐다.

당시 공화당 지도부는 최약체로 평가받던 오하이오주 연방 상원의원 워렌 하딩을 후보로 지명했고, 하딩은 ‘정상으로의 복귀(Return to Normalcy)’를 내세워 무난히 당선되었으나 측근들의 부패 스캔들에 괴로워하다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병사했다.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쿨리지, 후버로 이어지는 12년 간의 공화당 정권은 친기업, 감세, 고율 관세 정책을 펼쳤다. 이 시기 미국은 전기 보급, 라디오 발명, 자동차 대량생산 등 기술 발전에 힘입어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는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Make America Wealthy Again)" 행사에서 각국별 관세율을 표시한 차트를 들고 상호관세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외국 지도자를 질책할까? 세계 시장을 뒤흔들까? 아니면 적에게 복수할까? 하지만 취임 100일 동안의 혼란 속에서도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권력을 거의 제국주의적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2025.4.2. AFP 연합뉴스

 

 


대공황을 악화시킨 스무트-홀리 관세법

고속 성장과 규제 완화는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거품을 불러왔고, 1929년 10월 ‘검은 목요일’의 주식시장 붕괴로 대공황이 시작됐다. 농민 보호 명분으로 관세를 인상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기업들의 강력한 로비로 관세 인상 품목이 대폭 확대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통과됐다. 1000여 명의 경제학자들이 반대 성명을 냈을 정도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후버 대통령은 마지못해 법안에 서명했다.

곧 유럽 각국이 보복 관세로 맞섰고, 세계 교역량이 3분의 2까지 줄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무역이 위축되어 전 세계 경제는 극심한 피해를 겪게 되고, 이로 인해 대공황은 전무후무한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금본위제도를 폐지하고 선별적 관세로 대응한 스웨덴, 대영제국 내 관세 인하로 무역 감소를 막은 영국 등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반면, 1차 세계대전 배상금 문제로 경제가 파탄난 독일은 이중고를 겪으며 나치가 부상했고, 군비 확장으로 경제난을 타개하려다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됐다.

대공황의 교훈은 경제학자뿐 아니라 정치인들에게도 깊이 남아, 1920년대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본 따 친기업·규제완화·감세를 내세웠던 레이건 정부조차 관세 인상에는 신중했다. 미국은 강달러 정책과 서비스·자본수지 흑자로 무역적자를 상쇄하며, 소비자 후생을 크게 증대시켜 왔다. 달러 패권 유지를 위해서도 강달러 정책이 선호됐다.

트럼프 정부 관세 정책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이런 미국의 전통과 상이하게 트럼프 정부는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내걸고, 고율 관세를 협상 지렛대로 삼아 상대국의 비관세 장벽을 낮추고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려 한다. 하지만 이 정책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글로벌 공급망이 극도로 분절화됐다. 예컨대 애플의 휴대폰은 중국에서 조립하지만, 부품은 세계 각지에서 공급된다. 관세는 이런 효율적 공급망을 교란해 세계 교역을 위축시킬 것이며 기업 투자를 저해할 것이다. 특히 예측 불가능한 정책 변화는 장기적 투자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둘째, 트럼프 정부가 내세운 제조업 부흥은 단기간에 달성할 수 없다. 미국은 이미 생산기반이 상당 부분 해외로 이전되어 제조업 공장이 없는 공동화 현상이 오래 지속되어 왔다. 처음부터 제조업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미국 기업의 입장에서 관세 정책이 장기적으로 유지된다는 보장 없이는 기업 투자가 쉽지 않다.

셋째, 제조업의 핵심인 기능인력이 부족하다. 제조업 공동화 현상은 기능인력 양성을 불가능하게 했으며, 서비스업의 높은 임금에 상응하는 제조업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이는 해외 기업들의 미국 투자도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역시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 정책 불확실성 높아지면서 경기 침체 가능성

역사적으로 볼 때,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냉전 이후 동맹국과의 협력을 중시해온 미국이 유럽, 멕시코, 캐나다 등 우방국까지 적대시하는 정책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협상의 기술’로 포장하지만, 타국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당장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장기적으로는 매우 큰 비용을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으로의 여행객이 급감하는 등, 트럼프 정부의 일방주의로 인한 경제적 부작용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수준에서 봉합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신뢰 하락과 함께, 각국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아졌음을 우려한다. 무역 분쟁의 승자는 자국 기업과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별적 대응국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세계 무역 자체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 미국의 상호관세가 발효와 함께 코스피 2,300선이 무너진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가 표시돼 있다. 2025.4.9. 연합뉴스

 

 


혁신과 생산성 중심 경제로 전환해야 할 마지막 기회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글로벌 경기 침체 신호가 있을 때마다 투자자들의 ‘현금인출기’ 역할을 해왔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으로 세계 무역이 급감하면, 한국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대표적 국가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 성장률이 1%대에 머물 것이라 전망했고, 주요 투자은행들도 1% 미만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한국 경제는 가계·기업·부동산 부채 등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 오랜 기간 부동산 산업에 의존해온 탓에 산업 경쟁력도 약화됐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내수 침체,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저가 상품의 대량 유입 등은 한국 기업에 큰 부담이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이익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곧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우리는 계엄과 탄핵 사태라는 정치적 격랑 속에서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전례 없는 충격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의 뿌리는 단지 정치적 사건에만 있지 않다. 한국 경제의 경쟁력은 지난 수십 년간 부채주도, 부동산주도 성장에 기대며 점차 약화돼 왔다. 이제는 과거의 성장 방식에 더 이상 기대서는 안 된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부채와 부동산 중심의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서 혁신과 생산성 중심의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구조적 대수술에 나설 마지막 기회다.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haasimi@naver.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