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의 역사, 후대를 위해 새기는 마음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 형사 재판정에서 “대통령은 어느 장관이나 국민보다 수백배 수천배 외교·안보 국정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어서”라고 했다.
그는 탄핵심판정에서도 “대통령의 자리에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벼랑 끝으로 가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이 보였다”고 진술했다. 그는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이용해 판단했고 그에 따른 정책 수행을 해왔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그는 지도자로서 신뢰받을 정책을 펼치지 못했다. 집권 내내 주목받은 것은 편향적인 사고와 형편없는 사리 분별력이었다. 그는 이태원 참사를 두고 기획 운운한 것에서 보듯 입맛에 맞는 정보들만 찾았을 것이다. 평소 측근들에게 극우 유튜브 보기를 권유한 것에서도 그의 뒤틀린 인식체계를 짐작할 수 있다.
느닷없는 연구개발(R&D) 예산의 대폭 삭감, 취학 연령의 5살 하향 문제, 의료개혁을 둘러싼 난맥상 등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미친 사람 널뛰듯 섣부른 정책을 잇달아 터트렸다. 그렇게 그의 집권 2년 반 동안 정치는 엉망이었다.
잼버리 대회에 참가한 전세계 청소년들의 꿈을 짓밟고 위험에 빠트려 국제적인 망신을 했고, 부산 엑스포 유치 외교에선 사우디아라비아에 119표 대 29표로 밀린 득표 결과에서 보듯 외교력도 정보력도 분석력도 맹탕이었다. 그에게서 한 나라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판단력이나 통찰력을 찾을 수 없었다.
윤석열의 의식은 제정일치 시대 샤머니즘 차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손바닥 왕(王) 자 부적에 의탁해 대통령 선거에 나섰고, 무속과 풍수에 따라 집무실과 관저를 용산과 한남동으로 이전하는 주술로 임기 첫날 업무를 시작했다는 의혹을 샀다. 그는 신내림 받은 것처럼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점들”을 봤다고 하면서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무당의 신탁 같은 억설을 주장했다. 그 망상은 계엄령 선포와 군대를 투입한 내란으로 이어졌다.
한 무속인은 ‘김건희 여사가 공적 문제 처리나 결정을 위해 조언을 구하는 명리학자와 무속인이 본인 외에도 풍수, 관상, 사주, 미래 예측 등 분야별로 7~8명 더 있다’고 한겨레 취재에서 증언했다. 무속과 주술에 의탁해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무지몽매가 참으로 가증스럽다.
윤석열은 난처한 상황에 놓이면 거짓말로 호도하거나 남 탓으로 돌리고 궤변으로 변명했다. 취임 넉달 뒤 미국 순방 중에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막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는 논란을 뒷수습하면서 보인 행태는, 추악함을 넘어 범죄 행위에 가까웠다.
같은 수법으로 12·3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회피하기 위해 철면피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거짓은 그뿐만이 아니다.
한겨레가 지난해 11월 대통령의 ‘가짜 출근 행렬’로 의심되는 차량 행렬을 세차례나 포착했는데, 이는 늦은 출근을 감추려고 위장한 행렬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직은 무단으로 지각해도 될 만큼 한가한 직책인가. 그런데 왜 굳이 위장 행렬로 출근하는 척 국민을 속여야 했는가.
윤석열보다 앞서 탄핵당한 박근혜가 세월호 침몰 참사라는 위기 상황에 7시간이나 국정 공백을 초래했던 것과 같은 모양새다.
그런 무책임한 윤석열이 공들여 변호하고 감싸면서 지키려고 애쓴 한가지는, 국가가 아닌 그의 부인 김건희 여사였다. 김 여사의 대선 이전 행적은 접어두더라도, 순방외교에서 범한 의전상 결례와 명품점을 찾아 쇼핑에 나선 염치없는 행위는, 나라의 위상을 1960~70년대 저개발국 수준으로 추락시켰다.
김 여사는 계속해서 마치 자신이 통치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위세를 떨었다. 중요한 인사에 관여한다는 시중의 공론들은 헛소문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윤석열 부부와 긴밀히 거래했던 명태균씨가 그들을 앉은뱅이 주술사와 장님 무사 관계라고 묘사했을까.
하지만 윤석열은 명품 쇼핑에 호객행위 핑계를 대고, 금품 수수 문제를 박절하게 뿌리치지 못하는 인정 탓으로 둘러대는 등, 번번이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으로 김 여사의 탈법과 허영과 위선 행각을 감쌌다.
국정에서 측근의 간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역대로 중국과 조선 위정자들이 깊이 유념해온 원칙이다. 조선왕조 국정의 기틀을 세운 정도전은 그의 삼봉집에, 중국 고대 역사를 간추린 통감절요(通鑑節要)의 “정권이 조정에 있으면 다스려지고, 측근에게 있으면 혼란해지고, 궁궐 비빈에게 있으면 망한다”라는 경구를 옮겨 실어 국정의 경계로 삼았다. 하지만 윤 정권에서 고교 동문과 검찰 측근들의 농단은 나라를 혼란에 빠트렸고, 김 여사의 비빈 정치는 국정을 망친 것이다.
부끄러움 없고 반성할 줄 모르는 윤석열은, 앞으로 감옥에 갇힐 일밖에 남지 않은 막다른 상황을 탈출하고자, 열심히 거리의 광신도와 극우 인사들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넉달에 걸친 탄핵 운동에서 민주 시민들은 초조와 불안에 휩싸이는 고통을 겪기는 했어도,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튼튼하고 건강한 민주 토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토대 위에서 우리 사회는 아스팔트 우익들의 준동을 지혜롭게 극복해낸 것이다.
친일파에서 뉴라이트와 교회 광신도로 이어진 극우 인사들이, 얄팍한 잇속을 쫓아 역사의 수레에 맞서는 광기는 시대착오일 뿐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안으로 충돌과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다. 그 역량으로 이번 내란에서 제주 4·3과 광주 5·18 학살 같은 마녀사냥 사태를 방지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선진문명국이다.
역사는 어느 한순간도 쉬어갈 수 없다. 나라를 경영할 지도력도, 아무런 국정 철학도, 현재와 미래를 인식하는 역사적 안목도 확인되지 않은 윤석열 패거리에게 운명을 맡긴 과오에서 이 시대 누구도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지난 3년간 윤석열 정권이 허비하고 그르친 역사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나는 2년 전, 이 지면에 기고를 시작하면서 첫번째 칼럼의 제목을 ‘윤석열 정권도 역사가 된다’라고 붙였다.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책임감으로 국정을 수행하기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선 창피스럽고 망가진 전대미문의 역사를 목도했다. 그래도 후대를 위해 이를 새길 수밖에 없다.
안병욱 |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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