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포항 지역 답사기

道雨 2007. 6. 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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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포항지역 답사기


 * 답사일자 : 2003. 1. 5                                 오  봉  렬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던 날, 우리는 또 다시 답사에 나섰다. 지난번 청암사 수도암에서 내려올 때 빙판길에 혼이 난 터라 길이 험하지 않은 곳을 고르다 보니 이번 답사지는 포항지역이 적격지로 선정되었다. 칠포암각화와 일월사당을 제외하곤 모두 예전에 가 보았던 곳이지만, 아내는 냉수리 신라비와 법광사터도 가 보지 않았기에 답사코스로 잡았다. 보경사를 필두로 해서 냉수리 신라비, 법광사터, 칠포 암각화, 일월사당, 오어사 등 비교적 적은 지역을 돌아보았다.



                        보경사에 서린 추억


  김천의 직지사 만큼이나 포항에서 유명한 곳이 내연산 보경사인데, 내게 있어 보경사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몇 명 있다.

  내가 보경사라는 이름을 듣게 된 것은 영천에 있는 3사관학교에 다닐 때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7년전쯤 된다. 생도시절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던 친구 중 포항에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외박을 나가면서 여럿이 이 친구 집에 갔었다. 그 때 친구 말이 보경사 계곡이 경치가 좋고 기암괴석이 많이 있어 볼 만하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당시 보경사는  시간이 없어 못가고, 어느 해수욕장에서 보냈던 것이 생각난다.

  한의과대학에 다닐 때 나는 ‘침맥’이라는 학술동아리에 들어가 있었는데, 어느 해 여름, 동아리에서 보경사로 MT를 갔었다. 그 때 김00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 말이 첫 대학입시에서 낙방하고는 찾아온 곳이 바로 보경사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아픈 마음을 달래고 재수한 끝에 한의대를 들어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쌍생폭포에서 신나게 수영을 했던 즐거운 추억이 있다.(지금은 상수원보호 관계로 수영이 금지되어 있다)

  수년전 같은 동네의 세 가족(아이들 포함해서 12명)이 감은사터, 대왕암, 이견대, 대보등대, 보경사 코스로 돌아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연산폭포 주변의 경관이 매우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보경사와 원진국사부도


  보경사가 있는 내연산에는 무려 12개의 폭포가 있으며, 좋은 등산코스가 있어 답사 및 관광객과 함께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 갔던 날도 매서운 추위가 몰아쳤는데 눈만 빠끔히 남겨놓은 털벙거지를 쓴 등산객들이 많이 보였다.

 

  신라 진평왕 때의 고승 지명법사가 당나라 유학시 전해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위에 금당을 세워 절을이룩한 뒤 보배(寶) 거울(鏡)을 묻었다 하여 절이름을 보경사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 고종 1년(1214)에 원진국사가 중창하였고, 임진왜란 후에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절의 건물들은 그리 오래된 것들이 아니지만, 적광전의 기초는 신라시대의 것으로 주춧돌과 고막이돌 등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보경사 5층석탑은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경상북도 유형문화재임) 1층 몸돌 앞뒤로 자물쇠 모양이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다. 이러한 모양의 통일신라 시대의 자물쇠가 두 개 전하고 있는데, 하나는 호암미술관에 있고 다른 하나는 김천 직지사의 성보박물관에 소장(예천의 한천사에서 출토됨)되어 있으며, 둘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적광전의 우측 뒤쪽에 원진국사비가 비각 안에 있다. 거북 껍질의 낱낱의 무늬 속에 ‘왕(王)’자를 새겨놓은 것이 특이하며, 원진국사 입적 3년 뒤인 1224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원진국사 부도는 절 뒤쪽의 산중턱에 있다. 원진국사비가 있는 곳의 뒷 담장에 쪽문이 있는데 이 쪽문을 지나 등산로를 따라 약 300m 정도 올라가면 있다(쪽문이 닫혀 있을 때는 화장실 있는 곳까지 내려 갔다가 담장을 끼고 다시 올라와야 한다). 경사가 약간 가파르지만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가면 괜찮다. 올라가는 길에 포항시 문화유산보존회 산악회에서크게 써놓은 표어가 보인다.

  “역사는 자연 속에 묻히고, 자연은 역사를 이어가나니, 우리 모두 산에 올라 자연을 즐기자”

  공감이 가는 말이라 나중에 답사기에 써먹으려고 집사람과 나는 둘이서 함께 외워두자 하였으나, 인용하는 지금 맞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원진국사 부도는 키다리이다. 팔각원당형이지만 몸돌이 매우 길어 이색적이다. 보경사의 다른 부도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 서 있다. 등산로 옆에 있어 등산객들에게 간식과 같은 눈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어 많은 사랑을 받을 것 같다. 원진국사 부도비와 원진국사 부도는 각각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절에서 나와 폭포쪽으로 가다보면 왼쪽 계곡 건너편에 서운암이 있고, 암자 뒤편에 부도밭이 있다. 철조망을 쳐 답사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만, 무릅쓰고 들어가 보면 돌 담장에 감싸여 있는 부도들은 모양도 여러 가지이며, 편안하고 여유롭게 자리잡고 있다. 오와 열을 맞춰 서 있는 통도사의 그것에 비하면 훨씬 자유롭다. 특이하게도 보경사의 부도 중에는 석탑의 부재(지붕돌, 몸돌 등)를 사용한 것들이 많이 눈에 띈다. 무너진 석탑의 일부를 가져다 부도를 만든 듯 하다. 이것도 윤회인가?

 

  다른 때 같으면 더 걸어올라 폭포구경을 했으련만 답사 여정이 따로 있는지라 여기서 발길을 돌려 내려왔다. 사하촌(?)의 식당에서 칼국수로 속을 채우고 다음 답사지인 법광사터로 향했다.



                     냉수리 신라비와 법광사터


  냉수리 신라비는 1989년 신광면 냉수리에서 발견된 고신라시대의 비석으로서,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의 비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신광면 면사무소 마당의 비각 안에 있는데 육안으로는 글씨를 알아볼 수 없지만, 그 내용은 사유재산의 취득과 이를 둘러싼 분쟁의 해결, 상속문제 따위를 다루고 있어 5-6세기 신라의 경제사·법제사·사회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법광사는 진평왕 때 세워진 그의 원당사찰이었으며, 창건 당시에는 갖가지 보배로 장식하여 왕궁보다도 사치스러웠고, 크기도 불국사와 맞먹는 큰 규모였으며, 원효와 의상이 주지를 지낸 절이라고 한다. 법광사터는 절터 전체가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을 뿐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하나도 없지만, 금당터 불상좌대·불사리탑비·3층석탑·당간지주·배례석  등 많은 석재 유물 들이 있다. 밭 한가운데에 있는 금당터는 2층 금당이 있었다고 하며, 매우 큰 규모의 불상좌대, 이중벽을 가진 구조를 추측하게 하는 고막이돌, 기둥의 주춧돌 등이 남아 있고, 전돌의 조각들이 많이 뒹굴고 있다.

 

  답사여행의 길잡이(팔공산 자락) 책에는 4층의 석탑사진이 게재되어 있으나, 책에서 지적한 것을 좇아 원래의 3층석탑으로 복원하여 놓았다. 문화재 관리와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매우 훌륭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 석탑의 옆에는 석가불사리탑비가 있는데 지붕돌에 물고기와 국화꽃이 새겨져 있다. 비석 지붕에 흔히 쓰이지 않는 특이함 때문인지 이 책의 표지에 소개된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암각화


  답사기에 어찌 크리스마스 선물이 등장하는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선사시대의 암각화는 몇 개 되지 않는다. 1970년 12월 25일,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언양의 천전리 암각화가 발견되었고, 1971년 2월에 고령의 양전동 바위그림, 1971년 12월 25일에는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1989년 11월에는 칠포바위그림이 발견되었다. 암각화 중 국보로 지정된 2곳(천전리, 반구대)이 모두 크리스마스날 발견되었으니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겠나 생각해서 붙여본 것이다. (양전동 바위그림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칠포바위그림은 칠포해수욕장 뒤편 산자락의 바위들과 구릉지대의 고인돌에 새겨져 있는데, 돌칼, 돌화살촉, 성혈(性穴), 기하학적인 무늬 등 종류가 다양하다. 검파형 암각화로도 불리는 칠포바위그림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과 문화로 들어가는, 아직은 열리지 않은 비밀의 문이라고 이 책에는 묘사하고 있다.



                            일월사당과 오어사


  일월사당(日月祠堂)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와 관련된 곳이다.

  신라 초기에 동해 바닷가에 살던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가서 왕과 귀비가 되자,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었으며, 이에 신라왕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 세오녀가 짠 비단을 얻어 돌아와 제사를 올린 뒤에야 해와 달이 전과 같이 밝아졌다고 한다.

  일월신을 모신 곳으로 동해면사무소 뒤편 야트막한 언덕에 해송이 작은 숲을 이룬 곳에 있다. 안내판에 삼국유사의 내용이 한자로만 씌어 있고, 우리말로 설명된 것은 없어 아쉬웠다.

 

  오어사(吾魚寺)는 혜공과 원효스님이 물고기를 가지고 장난친데서 유래하였다는 설화로 유명한 곳이다. 물고기를 잡아먹고 나서 똥을 누었는데 그 똥이 물고기로 변하여 헤엄쳐 가는 것을 보고 서로가 내(吾) 고기(魚)라고 우겼다는데서 절 이름이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 오어사는 아래쪽에 큰 저수지가 조성되어 호반의 절이 되어 버렸다. 대부분의 건물이 새로 지어진 것들이고 전해 내려오는 유물도 없지만, 혜공과 원효의 유쾌한 설화의 현장을 찾아왔다는 것으로만 해도 마음이 즐겁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으면 암자에라도 올라 호수와 어울린 절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싶었지만, 이미 어두워지려 하고 있고 날씨도 매우 추운 탓에 서둘러 추령 고갯길을 넘어 경주로 가서 삼릉 앞의 칼국수집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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