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언, 귀감이 되는 말

적당히 채워라 (계영배 관련 내용)

道雨 2007. 6. 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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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히 채워라 (계영배 관련 내용)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 최인호의 《상도(商道) 4》 중에서 -


* 계영배(戒盈盃)라는 술잔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인용해 한 말입니다.


이 계영배는 술잔의 7부까지만 채워야지 그 이상을 부으면 이미 부은 술마저도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신비로운 그릇입니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사랑도,

그릇의 7부까지만 채우고 그 이상은 절제하거나 양보하는 삶의 태도, 바로 거기에 참된 행복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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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호의 ‘상도(商道)’를 읽고

                                                         -  오  봉  렬  -



 최근에 우연히 최인호의 소설 ‘상도’를 읽게 되었다. 집사람이 해변도서관의 독서토론 선정도서라고 하며 빌려다 읽고 있기에, 나도 머리도 식힐 겸 같이 읽게 되었으니 내 의도로 선정하여 읽은 책은 아니었던 셈이다. 얼마 전에 TV의 드라마에서 가끔 접해본 바도 있기에(다른 채널의 방송을 보았기에 제대로 보지는 못하였다) 처음에는 대충 아는 내용이라고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책을 들었는데, 일단 읽기 시작하고 보니 손에서 책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여 어느새 5권을 모두 마칠 정도가 되었다.


 최인호는 1945년 서울 출신으로서,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가족’, ‘길 없는 길’, ‘잃어버린 왕국’ 등 우리가 흔히 들은 제목 외에도 많은 작품을 썼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중견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중 경허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길없는 길’을 몇 년 전에 읽었는데 이번에는 ‘상도’를 통해 그와 만나게 된 것이다.


 ‘상도’는 작가가 알고 있던 어느 자동차회사 회장의 죽음(교통사고)을 계기로, 그의 지갑 속에 있던 한문 글귀가 적힌 쪽지와, 그의 거처에서 발견 된 깨진 술잔(계영배 : 戒盈杯)에 얽힌 내력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조선 후기의 대상인이었던 임상옥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는 당시(19세기 초 및 중반)의 시대상황과 역사적인 사실들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허구와 함께 적절히 조합되어 있으며, 많은 수의 한시(漢詩)가 등장하기도 한다.


 임상옥은 평안도 의주 출신의 상인으로서 인삼교역권을 갖고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조선 최고의 대부호가 되었고, 상인으로서는 드물게 곽산군수를 역임하기도 하였으며, 자신의 재물을 풀어 고을의 어려운 백성들을 구제하기도 하였다. 상인으로서 여러차례의 위기를 잘 넘기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으나, 말년에는 평생 자신이 모은 재물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작은 채소밭을 가꾸며 여생을 보냈으며, 호를 가포(稼圃 : 채소밭을 가꾼다는 뜻)라 하였고, 자신의 시를 모은 가포집(稼圃集)을 남겼다.


 소설의 전개 내용도 흥미진진하지만, 특히 소설 전편에 수시로 등장하는 한문 글귀 두 가지가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마음 속에 남아 있다.

 회장이 죽을 때까지 지갑 속에 넣어다니면서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은, 임상옥의 재물과 인간에 대한 평생의 신념이었고, 깨어진 술잔에 새겨진 글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余爾同死 :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며, 너와 함께 죽기를 기원한다)는, 임상옥의 스승인 석숭스님이 도공으로서 그 잔을 만들 당시의 그의 바램이었지만, 임상옥이 환속하는 자리에서 그에게 전해주면서 상인으로서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한편, 그의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는 비기(秘器)로써 작용하게 된다.

 위의 두 글귀는 부의 세습을 일삼고, 권력과 재물 등 과욕을 부리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겠으며, 특히 경제인과 정치인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 하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 안에는 역사적 사실과 작자의 창작에 의한 허구가 함께 섞여 있는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잘 몰라, 독자로 하여금 자료를 찾아보게 하는 부지런함을 선사하니 작가에게 또 다른 고마움(?)을 느껴야 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