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글

[스크랩] 감동의 글-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

道雨 2007. 6. 23. 18:32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

 

   저는 이동통신회사에서 민원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혜영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수 많은 고객들과 통화를 하면서
   아직까지도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어요.
   그날따라 불만고객들이 유난히 많아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사정이기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에 제 기분은 뒤로 숨긴 채
   인사멘트를 했죠.

   

   목소리로 보아 어린 꼬마여자였어요.

   이혜영 :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텔레콤 이혜영입니다.
   고  객 : 비밀번호 좀 가르쳐주세요.
             (목소리가 무척 맹랑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혜영 : 고객 분 사용하시는 번호 좀 불러 주시겠어요?
   고  객 : 1234-5678 이요.
   이혜영 : 명의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고  객 : 난데요.. 빨리 불러 주세요.
   이혜영 : 가입자가 남자 분으로 되어 있으신데요?
               본인 아니시죠?
   고  객 : 제 동생이예요. 제가 누나니까 빨리 말씀해주세요.
   이혜영 : 죄송한데 고객 분 비밀번호는 명의자 본인이
               단말기 소지 후에만 가능하십니다.
               저희 밤 열시까지 근무하니 다시 전화 주시겠어요?
   고  객 : 제 동생 죽었어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해요?

   
가끔 타인이 다른 사람의 비밀번호를 알려고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전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혜영 : 그럼 명의변경을 하셔야 하니까요..
               사망진단서와 전화주신 분 신분증
               또 미성년자이시니까 부모님동의서
               팩스로 좀 넣어 주십시오.
   고   객 : 뭐가 그렇게 불편해요. 그냥 알려주세요.

   
너무 막무가내였기 때문에 전 전화한 그 꼬마애의
   부모님을 좀 바꿔 달라고 했죠.
   그 꼬마 애의 뒤로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여자아이의
   말소리가 들리더군요.


   아  빠 : 여보세요.
   이혜영 : 안녕하세요. **텔레콤인데요.
               비밀번호 열람 때문에 그런데요..
               명의자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아  빠 : 제 아들이요?
               6개월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혜영 : ....

   
그 때부터 미안해지더군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아빠가
   딸에게 묻더군요.


   아   빠 : 얘야 비밀번호는 왜 알려고 전화했니?
   딸아이 : 엄마가 자꾸 혁이 호출번호로 인사말 들으면서
               계속 울기만 하잖아.
               그거 비밀번호 알아야만 지운단 말이야.

   
전 그때 가슴이 꽉 막혀왔습니다..

   아  빠 : 비밀번호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혜영 : 아? 예.. 비밀번호는 명의자만 가능하기 때문에
               명의변경 하셔야 합니다.
               의료보험증과 보호자 신분증 넣어 주셔도 가능합니다.
   아  빠 : 알겠습니다.
   이혜영 : 죄송합니다. 확인 후 전화 주십시오.
   아  빠 : 고맙습니다.
   이혜영 : 아..예....

   
그렇게 전화는 끊겼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과
   가슴 아픔에 어쩔 줄 몰랐죠
   전 통화종료 후 조심스레 호출번호를 눌러봤죠.


   
"안녕하세요. 저 혁인데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멘트가 녹음되어 있더군요.
   전 조심스레 그 사람의 사서함을 확인해 봤죠.
   좀 전에 통화한 혁이라는 꼬마애의 아빠였습니다.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혁아.. 아빠다.. 이렇게 음성을 남겨도 네가 들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오늘은 네가 보고 싶어 어쩔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혁아, 아빠가 오늘 네 생각이 나서 술을 마셨다.
   네가 아빠 술 마시는 거 그렇게 싫어했는데..
   

   안 춥니? 혁아... 아빠 안 보고 싶어??"

   
가슴이 미어지는 거 같았습니다.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낸 건지
   

   아마도 그 혁이의 엄마는 사용하지도 않는 호출기
   임에도 불구하고 앞에 녹음되어 있는 자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을 울었나 봅니다.
   

   그걸 보다 못한 딸이 인사말을 지우려 전화를 한거구요.
   정말 가슴이 많이 아프더군요.
   

   몇 년이 훨씬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가끔씩 생각나는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 이 혜 영 -

'사랑밭 새벽편지'글  -옮김-

 

출처 : 수원 직뺀 EQ - 직장인 밴드 모임
글쓴이 : 아라리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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