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고령 지역 답사 사진 - 첫째 (2008. 6. 1)

道雨 2008. 6. 3. 12:12

 

 

 

                          고령 지역 답사 사진 - 첫째 (2008. 6. 1)

                                   - 대가야의 숨결, 그리고 가야금과 우륵의 고장

 

 

 

 

 * 이 사진은 2002년도에 찍은 것입니다. 이번에는 산에 올라가지 않아서 ...

 

 

* 지산동 고분으로 대표되는 대가야의 터전인 고령지역은, 그 오랜 역사성에 비하여 개발시대의 손길이 비교적 덜 미친 곳이다. 그만큼 지금까지는 역사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이곳도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대가야박물관(대가야역사관, 왕릉전시관, 우륵박물관 등 3 개의 전시관이 있음)이 건립되었고,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가 조성되고 있다.

  구마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를 잇는 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가 성주에서 이어져 고령을 지나 현풍 윗 부분에서 연결되었다)가 완공된 덕분에 부산에서 승용차로 두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전기 가야연맹의 맹주는 금관가야(김해)였으며, 후기 가야연맹의 맹주가 바로 대가야였다. 전해지는 역사서에도 금관가야 중심의 서술(삼국유사 등)이 있고, 대가야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서도 있다.

  무오사화의 단초가 되었던, '조의제문'으로 인해 부관참시에 처해진 점필재 김종직의 후손이 고령의 개실마을에 들어와 숨어 살면서 일가를 이루었는데, 지금은 이곳이 농촌체험코스(팜스테이)로 조성되었다. 

   2002년에 합천, 고령 지역을 답사하였고, 이번이 두번째 고령지역 답사가 된다. 예전에 간 곳도 있고, 이번에 처음 간 곳도 여러곳이다.

 

 

* 지산동 당간지주.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물 제54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령 읍내 작은 교차로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늘씬하게 쭉 뻗은 날렵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얇게 세로로 새김을 하여 상승감을 더하고 있다. 

* 숨어있는 듯, 쉽게 드러나지 않게 장식된, 지주의 끝부분에 새긴 날개 모양이 이채롭다.

 

 

 

* 고령 향교. 문을 잠가 놓아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진입로가 향교의 뒷쪽으로 되어있어서 어색하다.

  향교를 포함한 근처 일대가 대가야의 왕궁터라고한다.  

 

 

 

* 대가야 왕궁(성)터라는 표지석. 왼쪽으로 향교의 담장이 보인다.

  이곳의 뒤쪽으로 주산(성)이 이어져 있으며, 지산동 고분군과도 연결된다. 

 

 

* 향교의 뒷쪽, 향교로 들어가는 진입로 주변에 있는 독립투사 남형우 순국기념비.

  내 군대 동기생 중에 이름이 똑같은 사람이 있어서, 우연의 일치라며 웃었다. 남형우 동기생은 이곳에 꼭 와보아야 되겠군...

 

**  남형우

  1875(고종 12)∼1943.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고령 출신. 호는 수석(瘦石). 190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하고, 다음 해인 1909년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에 가입, 고향에서 지하운동을 하였다. 1911년 이후 보성전문학교 법률학 교수가 되어 후진 육성에 힘을 쏟았다.

  1915년 2월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에서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며, 그 해 3월에는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를 조직, 민족의식을 알리고 실력을 키우는 데 전력하였다. 1919년 3월 1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수립된 대한국민의회에서 산업총장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4월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와 군자금 5천원을 지참하고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대표해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법무차장에 선임되었다. 4월 25일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임된 뒤 의원자격심사위원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해 5월 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에 선임되어 활약하였으며, 1920년 11월에는 교통총장에 보임되어 교통국 등을 운영하였다. 1921년 6월 6일 국민대표회의 준비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활약하였고, 1922년 4월 친일분자 및 밀정 총살과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다물단(多勿團)’을 조직해 활동하였다.

  1923년 1월 서동일(徐東日)을 국내에 잠입시켜 경상북도 청도·경산 등지에서 군자금 1,400여 원을 모집하여 송금하게 하였으며, 1924년 5월 30일 재입국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붙잡혔다. 1928년 동삼성 하얼빈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흑룡강(黑龍江)에서 사설 학교를 경영하였다.

  1930년 한국인 의사 부인이 밀고하여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고 공안부(公安部)에 잡혔다가 주민들의 진정으로 석방되었다. 1931년 수토병(水土病)으로 귀국, 고향에서 요양을 하였다. 1943년 3월 13일 혹독한 일제의 감시와 위협을 참을 수 없어 음독자살하였다고 한다. 1983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남형우 기념비 옆의 시비.

  씌여진지 100 년이 채 안되는 데 마치 고전을 읽는 듯 하다. 나름대로 해석해보세요... 

 

 

 

* 주산의 입구, 향교 근처에 세워진, 고령 출신의 시인 이하석의 시비.

  시비에 새겨진 그의 싯귀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아득한 시간 속으로의 귀향
                                                             - 이하석 -

 



무덤을 찾아가는 게 귀향임을 늘 실감한다. 나만 그런 건 아니리라. 누구에게나 고향이란, 특히 농촌 지역일 경우, 자신에게 큰 무게를 기대오는 과거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다. 그 쌓아놓은 것들 가운데 하나가 무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덤,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무덤들이 거기 있고, 그들의 무덤 앞에 우리는 각자 늘 바랜 표정으로 서기 마련이다. 그게 고향 가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린 듯하다.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해서 귀향길이 음산하다거나 어두운 느낌을 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안온한 기분에 휩싸이고 마음이 그지없이 안정되는 느낌을 갖는다. 무덤의 그 유연한 곡선, 둥근 봉분의 선이 덮고 있는 세계는 그지없이 평온하면서 푸근하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범함을 인식시키는 지표가 된다는 생각도 든다. 누가 말했던가? “우리의 심장은 강하고 용감하지만, 여전히 보에 싸인 드럼처럼 무덤을 향한 장송곡을 두들기고 있다”(롱펠로우, 「인생의 찬가」)라는 말. 그 장송곡이 향하는 곳은 절망 쪽이기보다는 마음이 절로 향하게 되는 고향 쪽일 거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한다.

내가 묻힐 곳은 고향의 선산 자락이라는 생각이 늘 우리의 뇌리 한 구석에는 남아 있다. 그 생각은 우리를 얼마나 겸손하게 하고, 반성하게 만드는가? 영국 속담 “영예의 길도 무덤에 통할 따름이다”라는 말 속에는 겸손과 자기 한계에 대한 소박한 인정의 마음결이 드러나는데, 그런 마음의 귀결처가 고향 이외에 어디 마땅한 데가 있겠는가?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포르투갈의 시인 루이스 바스데 카모에스(1524~1580)는 불우한 가운데 죽어서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르게 됐다. 그를 기리는 이들은 훗날 그가 돌아다닌 곳의 먼지를 모아 훌륭한 무덤을 만들어 기념했다. 먼지 속에는 시인의 몸에서 떨어진 머리카락이나 비듬이라도 섞여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삶은 대부분 낯선 타향에서 떠도는 것에 불과하지만, 마음은 늘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먼지 같은 삶이기에 시인이 떠돌았던 곳의 먼지를 모아보면 거기 시인의 숨결도 있으리라 여겨질 터. 그걸 모아 무덤을 만드는 것은 먼지 같은 삶의 귀결처로는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인가.

나의 고향엔 유난히 무덤들이 많아서 해보는 생각이다. 집안 어른들의 무덤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고령은 무덤의 고장이라 할 만큼 유별나게 무덤들이 많다. 대구에서 고령은 백리 남짓한 거리인데, 고속도로를 타고 가든 국도로 가든 산굽이를 돌거나 고갯마루의 고령읍이 보이는 곳에 이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산을 이룬 거대한 무덤들이다. 고령읍 위로 솟은 무덤군들. 고대왕국이었던 대가야의 왕들과 사람들이 묻혀 있는 수백 기의 크고 작은 무덤들이 고령의 진산으로 꼽히는 주산의 능선 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대가야는 6세기 중엽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신비한 나라다. 아직도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나라다. 그래서 그런가? 이 무덤들 아래의 왕릉 전시관과 그 곁에 최근 건립된 대가야 박물관의 유물들은 내겐 내 고향의 아득한 과거시간을 환기시켜주는 열쇠처럼 여겨진다.

풀 아래 제 모든 무덤 묻어놔야
더 센 풀 솟는다고
아버진 성묘적마다 어린 내게 말씀하셨다

…(중략)…

무덤 무덤 무덤 무덤
풀 아래 많은 저 무덤들
저마다 문 닫아걸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해와 비와 바람과 푸나무들이 새로 짜올려
봉분들 가야산 새싹 꽃봉오리로 솟아
비로소 산 사람이든 짐승이든 나비든 돌이든
그 많은 이들의 고령읍내라도 지켜내는 것이다
――  졸시 「주산」 부분

이 무덤들은 부분적으로 관리가 잘 된 데다 잔디가 고루 입혀져 있다. 그 울멍줄멍한 능선들이 겹쳐져 떠오르는 게 신비스럽고 아주 인상적이다. 무덤들이 거의 다 능선을 따라서 모여 있어서 무덤 사이로 구불구불하니 돌아가는 소롯길에 서면 사방의 전망도 탁 틔어서 좋다. 그래서 고령인들은 예부터 이곳을 쉼터로 자주 오르내렸다.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전국에서 구경꾼들이 몰려온다. 특히 능선 중턱의 거대 고분인 44, 45호분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순장묘로 유명하다. 왕과 함께 묻힌 순장자의 석곽들이 44호분에는 32기가, 45호분에는 11기나 발견돼 학계를 놀라게 했다. 산 아래 왕릉전시관은 44호분의 발굴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대가야 고분군은 주로 평지나 낮은 산지에 묘를 쓴 신라와 백제, 고구려와 달리 도읍지가 잘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의 능선 위에 쓴 것이 특징이며, 그 점에서 다른 가야국들과도 구별되는 독창성을 지닌다. 무덤들이 높은 능선 위에 위치해 있어서 멀리서 봐도 고분들이 도읍지를 호위하는 듯한 장엄한 광경을 보여준다.

나의 고향길은 옛 무덤들을 보면서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자연히 그 무덤들 있는 곳에 오르는 일도 잦다. 그곳에 서면 서쪽으로는 가야산의 푸른 산등성이가 굽이치고 동쪽으로는 대가천과 안림천이 만나 이루는 회천이 낙동강으로 휘어드는 게 보인다. 회천이 시작되는 어귀, 고령읍과 마주 보는 금산 자락의 강변에는 청동기 시대에 만들었다는 유명한 알터 암각화가 있다. 무덤이 있는 주산의 북편 아래는 악성樂聖 우륵의 출생지다.

고령은 경주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신비한 나라 대가야의 문화유산이 아주 풍부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그 문화유산의 관문이 주산의 무덤들인 셈이다. 아울러 고령을 고향으로 둔 이들은 대부분 귀향의 마지막 이정표가 바로 주산의 무덤들이 되는 것처럼 늘 느낀다. 그래서 고령 사람들의 귀향길은 흡사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들처럼 자신들의 과거가 집적된 무덤들의 거대한 시간을 거슬러오르는 듯한 감동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나서 자란 고향마을(고령군 운수면 화암리 꽃질마을)은 대가천을 거슬러올라 고령읍에서 2십리쯤 들어가 있다. 마을 앞에 화암들이 펼쳐지고 들판 너머 대가천이 굽이치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언젠가 화암벌을 소재로 시를 쓴 적이 있다.

눈 내리고 달개비 뿌리의 멀리 가까이 땅 속으로 난 물길은 내 마음 아래 그대로 흐르고, 그 흐르는 물에 봄빛이 그리움으로 아롱져 있다 지난 가을 달개비가 닫은 들녘의, 모든 것들이 얽힌 풀뿌리 아래 내 그림자의 뿌리도 얽혀 있다
                        ――  졸시 「화암벌 1 」




* 이하석 : 1948년 경북 고령 출생. 1971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투명한 속』 『김씨의 옆얼굴』 『우리 낯선 사람들』 『측백나무 울타리』 『녹』 등이 있음.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영남일보 논설실장.

 
 

 

 

 

 

 

 

* 우륵기념탑.

  고령읍의 북쪽에서 읍내를 내려다보는 곳에 공원처럼 조성된 언덕 정상에 있다.

  기록을 보니 1977년도에 건립된 것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성역화 작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것일 것으로 짐작된다.

  디자인은 괜찮아 보이는데, 예산이 부족했는지 재질이 콘크리트로 만들어서 겉에 회칠을 한 듯 보인다. 회칠한 곳이 군데군데 부풀고 떨어져서 보기에 좋지 않으며, 동판도 일부 떨어져 있다.

  '우륵기념탑'이라는 글씨는 없는게 더 나을 듯한데...

  아무튼 재질을 바꿔 새로 건립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은 그대로 두고... 

 

 

 

* 우륵기념탑 옆에 있는 영정각.

 

 

** 우륵기념탑과 가까운 곳에 우륵박물관이 있는데, 우리는 미처 몰라서 가 보질 못했다. 우륵박물관은 박물관 건물 모양이 특이한데, 가야금을 형상화해서 만들었다고한다.

 

 

 

* 대가야박물관.  2년 전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박물관 전시에 대한 것은 답사사진 두번째에서 올릴 예정입니다. 

 

 

 

* 대가야왕릉전시관. 지산동 44호고분의 발굴상황을 실물크기로 전시하고 있다. 

 

 

** 고령 지역의 답사 하이라이트는 뭐라해도 지산동 고분군이다. 천년을 넘게 고령 땅을 지켜온 대형 고분군이다.

  왕릉전시관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지산동 고분군이다.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대형고분들이 장관을 이룬다.

  이하석 시인의 싯귀대로, 이 문을 닫아 걸어두었던 무덤들이 천년 이상의 긴 세월동안 고령읍내를 지켜주고 있다. 그리고 고령의 온갖 것들을 키우고 있다.

 

 

*** 지산동 고분군 : 사적 제79호.

  고령은 삼국시대에 대가야(大伽耶)가 위치했던 지역으로서 당시의 무덤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 지산동고분군이 무덤의 입지나 규모 면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가야 최고지배자들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큰 무덤들은 주산(主山)의 능선을 따라, 작은 무덤들은 경사면을 따라 분포하고 있다. 1977~78년에 걸쳐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 발굴단에 의해 44호분과 45호분이 발굴·조사되었고, 이어서 1978년에 다시 계명대 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32~35호분과 여기에 포함된 다수의 유구들이 조사되었다.

  무덤 구조는 판석으로 된 돌덧널무덤[石槨墓], 깬돌[割石]로 된 돌방무덤[石室墳], 대형돌방무덤 등으로 구분된다. 판석으로 된 돌덧널무덤은 4장의 큰 판석으로 돌덧널을 짜 맞추고 바닥에는 1, 2장의 판석을 깔았으며 돌덧널 내부에는 별도의 부장공간을 갖춘 것들도 있다. 이 유형의 돌덧널무덤 중에는 어린이가 묻힌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깬돌을 이용하여 만든 돌방무덤은 대체로 판석으로 된 돌덧널무덤보다 대형이며 둘레돌[護石]을 갖춘 것들도 있다. 바닥에는 자갈이나 깬돌을 깔았다.

  32호분의 경우 둘레돌을 갖춘 지름 13m 이상의 원형봉토 내부에 구덩식돌방[竪穴式石室] 1기와 여기에 딸린 돌덧널[石槨] 1기가 배치된 형태로서 돌방 내부에는 주피장자와 그의 발치 쪽에 피순장자 1명이 매장되어 있었고 딸린 돌덧널에도 역시 1명의 피순장자가 매장되어 있었다.

  무덤 안에서는 신라의 출자형금동관(出字形金銅冠)과는 형태가 다른 금동관 1점과 투구 2점, 비늘갑옷[札甲] 1벌과 판갑옷[橫長板釘結板甲]·목가리개[頸甲]·어깨가리개[肩甲] 등의 갑주류, 대도(大刀)·쇠투겁창[鐵鉾]·쇠살촉[鐵鏃] 등의 무기류, 발걸이[鐙子]·재갈[轡]·청동말방울[靑銅馬鈴]·띠고리[鉸具] 등의 마구류와 함께 다양한 토기류가 발견되었다. 한편 32NE-1호분에서는 고리[環頭部] 부분에 은실[銀絲]로 당초무늬가 상감된 단룡문환두대도(單龍紋環頭大刀)가 발견되었다.
  지산동유적에서 최대형급에 속하는 44호분과 45호분은 대형의 구덩식돌방무덤과 다수의 돌덧널을 매장주체로 하는 고분이다. 44호분의 경우 지름 25~27m 가량의 원형에 가까운 대형봉토 내부의 중앙에 으뜸돌방[主石室]이 위치하고, 이 돌방의 장벽과 단벽 쪽에 각기 1개씩의 딸린돌방[副石室]이 배치되어 모두 3개의 돌방이 있다. 이를 중심으로 다시 32개의 작은 돌덧널들이 배치되어 있다. 주피장자는 장신구·무기·투구·마구·토기류 등과 함께 으뜸돌방에 매장되어 있으며 나머지 돌방과 돌덧널에는 피순장자들과 껴묻거리가 묻혀 있었다.
  45호분도 44호분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2기의 돌방과 이를 중심으로 하는 11개의 돌덧널로 구성되어 있다. 으뜸돌방에서는 초화형금동관(草花形金銅冠)·금제귀걸이[金製耳飾]·목걸이[頸飾] 등의 장신구류, 삼엽문환두대도(三葉紋環頭大刀)·쇠투겁창·쇠살촉 등의 무기류, 비늘갑옷편, 안장꾸미개[鞍金具]·발걸이·재갈·말띠드리개[杏葉] 등의 마구류가 출토되었다.
  44호분과 45호분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순장했다. 지산동고분군의 중심 연대는 대략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있으며, 이 시기는 대가야의 전성기에 해당된다.
 

* 지산동 고분군. 2002년도에 찍은 사진.  

 

 

 

 

* 고아동 벽화고분 아래쪽에 있는 '대가야조선소지'.

  낙동강의 지류인 회천과 가깝다. 이곳에서 대가야의 배를 만들었다고... 

 

 

 

* 고아동 벽화고분.  사적 제165호이며, 가야지역의 분묘 중 유일하게 벽화가 발견된 무덤이다. 지산동 고분군의 제일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6세기초 대가야시대에 축조된 가야지역 유일의 벽화고분으로, 현실과 연도를 갖춘 횡혈식 석실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현실은 동서로 터널형을 이루고 있고, 연도는 현실 남벽 동편에 나 있으며, 벽화의 대부분이 탈락되고 벽면과 천장에 회칠을 하고 적색, 녹색, 갈색을 이용하여 그린 연화문 12~13개가 남아 있다.

 

 

 

*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에 있는 ´개실마을´은, 점필재 김종직(金宗直) 선생 후손(선산 김씨)의 집성촌으로, 350여 년 간 전통을 이어오며, 옛 전통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마을로, 민속자료 제62호 점필재 종택, 문화재자료 제11호 도연재, 유형문화재 제209호 점필재의 문적유품 등, 유교문화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는 마을이다. 
   2001년도 행정자치부로부터 아름다운마을로 선정된 개실마을은, 같은해 12월 ´개실마을 가꾸기사업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삼성 에버랜드, 성서한샘아파트 부녀회 등과 자매결연을 맺는 등, 전국 최고의 체험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개실마을 주민들은 흙·돌담 등 전통담과 한옥, 종택 등을 보수·복원하여 사대부가의 옛 정취를 느끼도록 했으며, 생활편의시설을 확충하는 등 쾌적한 주거환경을 개선하여 도시민과 청소년, 외국인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개실마을은 마을이 지닌 여건과 다양한 유교문화를 활용해 체험프로그램(윷놀이, 굴렁쇠굴리기, 충·효 예절익히기, 전통혼례재현, 유기농산물 수확, 한과·엿만들기 등)을 개발하여 농촌체험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1만 3천여명('07년 10월말까지 )의 국내외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전국 최고의 농촌체험마을로 거듭나다

  개실마을은 2007년 농림부가 주최하는 ´제6회 전국 마을가꾸기 경진대회´에서 대상 마을로 선정돼, 1억원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이 대회는 전국 농·산·어촌체험마을 400개소(경북도 45개)중, 참가 희망하는 전국의 마을 60개(경북도 4개마을) 마을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지난해 10월부터 11월중 전국 심사위원회에서 개실마을은 서류심사와 현지심사를 거쳐 대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단다.

  전국 마을가꾸기 경진대회는 농림부가 아름다운 농촌만들기 차원에서 체험마을에 국한하지 않고 마을의 자연경관, 마을가꾸기사업 등을 통해 농촌체험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제정된 대회로서, ´개실마을´은 2006년 대회때는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체험거리

  * 체험거리 : 윷만들기, 연날리기, 엿만들기, 한과만들기, 딸기수확체험, 전통예절, 짚풀공예(계란꾸러미 만들기), 뗏목타기, 미꾸라지 잡기 등
  * 마을장터 : 개실딸기, 개실맛쌀, 개실마늘, 개실한과, 친환경딸기쨈

 

 

* 개실마을의 안내판.

 

 

   

* 점필재 종택 정면.

 

 

* 문충세가(文忠世家)라는 현판이 걸린 사랑채. 文忠公은 점필재 김종직의 시호이다.

 

 

 * 잘 가꾸어지고 정돈된 모습의 점필재 종택 안채. 현재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 개실마을 답사를 마치고는 해인사로 향했는데, 해인사 답사사진을 올리기 전에 대가야박물관의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