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감상문, 관람후기

연극 <그 남자, 보이첵>을 보고

道雨 2008. 7. 11. 18:54

 

 

 

               연극 <그 남자, 보이첵>을 보고

 

                           -  사회의 암울한 현실이 낳은 비극적 주인공 보이첵 - 

 

 

 

 

 

 

 

* 어제(2008. 7. 10) 저녁, 집사람과 함께 남천동의 '사랑과 혁명' 소극장 개관 기념 공연 작품인 <그 남자, 보이첵>을 관람했다.

연극에 대해 문외한인데다가,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그저 작품성이 좋은 연극이더라는 소개말을 읽어보고, 문화메신저에서 단체관람(단체관람할 경우 관람요금이 많이 할인된다)한다기에, 이틀 전에 예매신청을 하고 소극장을 찾았다.

 

소극장의 이름에서부터 상당히 개성적이고 도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아동극 위주의 극장이었는데, 재 개관하면서 성인극까지 올릴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 교회처럼 보이는 건물의 지하에 자리잡고 있는데, 지하의 로비에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전시회를 겸한 공간이 되었다. 기다리기에 지루하지는 않을 듯하며, 직원들이 상당히 반갑게 맞아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너무 늦게 도착하여(공연 시작 10분전에 도착)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공연장 내부의 객석은 정원이 70석이 채 되지 않을 듯한 좁은 공간이었는데, 그래도 무대는 제법 넓은 공간을 할애하여 다양한 연극을 소화시킬수 있도록 배려한 듯 보였다.

어제의 관객은 객석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20여 명 뿐이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남자는 4-5명 뿐이고 대부분은 젊은 여성들이다.

그 중에서도 아마 우리 부부가 가장 고령의 관객인 듯 하여, 집사람과 나는 우리가 특이한 사람들(별종)인가 보다 하고 웃었다.

 

 

 

* 앞에서 얘기했듯이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관람하다 보니, 내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혼란 스러웠다. 더우기 주인공이 자기의 부인(동거녀)을 살해하기에 이르는 것을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

<염쟁이 유씨>를 보고 나올 때도 가슴이 먹먹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 남자, 보이첵>은 굉장이 우울하고 슬퍼지며 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내용에 대한 이해가 잘 되질 않았다. 아, 내가 연극에 대해 문외한이다보니, 아직 이런 깊이가 있어보이는(?) 작품을 보기에는 무리인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소극장에서 받은 팜플렛을 읽어보고, 해운대역에서 내려 집사랍과 함께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그 남자, 보이첵>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 이해가 되는 듯도 하였다. 

 

"아하, 이게 바로 '연극 속의 연극'이었구나" 

 

나는 처음에 주인공(단역배우인 '그 남자')이 자기 부인을 죽이는 것으로 잘 못 이해했던 것이다. 그래서 굉장히 우울한 느낌을 가졌었는데, 연극 속의 연극 <보이첵>에서, 보이첵이 동거녀인 마리를 살해하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소설 속의 소설'(액자 소설) 처럼, <그 남자, 보이첵>도 '연극 속의 연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해가 되고 나니, 마음이 훨씬 더 가벼워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경쾌한 음악이 나오고,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배우 '정태윤'의 모습은, 암울한 현실을 헤치고 내일에의 희망을 암시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느껴졌다.

아, 그러다보니 이 연극도 '참 잘 봤다, 참 좋았다'는 느낌이 그제서야 온다.

 

"아둔하고 모자란 이여! 

다음부터는 연극을 보기 전에 반드시 관련되는 사항들을 찾아보고 가자."

 

그렇게 또 하나의 교훈을 얻게 되었다.

 

 

 

 

 

***  연극 속의 연극 <보이첵>의 줄거리

프레드리히 요한 프란츠 보이첵. 육군 일등병 제 2연대 2대대 4중대 소총수.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마리'가 있다.

보이첵은 군대에서는 상사의 면도를 해 주며, 의사의 명령에 따라 매일 완두콩만 먹고, 소변량이나 감정의 상태를 점검당한다.

가난하기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는, 시키는 대로 밖에 할 수 없는, 삶의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나약한 인간 보이첵.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정신착란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 한 가설무대에서 악대장은 보이첵과 함께 온 '마리'에게 눈독을 들이고… 의사들과 중대장은 나약하기만 한 보이첵을 향해 인간으로서 가치없음을 놀리기만 한다.

돈 때문에 악대장과 놀아날 수밖에 없는 '마리', 결국 보이첵은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 '마리'를 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택하게 된다.

 

 

 

 

 

***  참고로 '보이첵'에 관련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모아 보았다. 

 

#  <그 남자, 보이첵> 연극을 보고 난 이후, 나는 연극의 관람시간 보다 더 오래 생각을 하고, 더 많은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 연극이 서양 연극의 고전으로 대우받으며, 여러 국가의 수많은 극단이 <보이첵>을 공연하였으며, 또 공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지난 5월의 '제7회 의정부 음악극 축제'처럼, 하나의 축제에서 두 극단(아이슬란드의 '베스투르포트 극단'과, 한국의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이 각각 다른 <보이첵>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또한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보이첵>은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헤럴드엔젤어워드’와 ‘토탈씨어터어워드’ 최고 신체 연극상 등, 2관왕을 차지한 공연이며, 지난  6월에 있었던 통영연극예술축제에서 개막작으로 공연되었다고 한다. 

 

 

 

#  원작 <보이첵>의 배경이 된 실존인물 보이첵에 관하여.

 

약 180년 전, 독일의 실제 인물 보이첵은 자신의 동거녀인 마리를 살해하였다. 당시 보이첵의 정신감정을 맡았던 궁중의사 클라루스 박사는 한 사회부적응자의 단순한 치정살인이라는 소견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보이첵은 라이프찌히 광장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 원작 <보이첵>과  작가의 시선

 

그러나 동거녀 살인이라는 이 끔찍한 범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하여 냉혹하고 오만한 입장의 클라루스 박사가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해 냉철하고도 따뜻한 연민과 관심을 지닌 다른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했다. 그것은 작가 뷔히너의 시선이다.

 

# 원작 <보이첵>의 작자  G. 뷔히너에 대하여

   @ 뷔히너

  * 독일 극작가 (1813-1837)

  * 생전에는 희곡 <당통의 죽음> 만이 출간되었고, 24세에 요절하였지만, 20세기에 들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독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의 희곡은 계속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냉철한 사실주의, 섬뜩한 비전과 리드미컬한 극작법, 그로테스크, 니힐리즘, 부조리, 소외 등, 모든 요소를 내포한 그의 희곡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내려져 있으며, 그는 현대 연극의 여러 과제를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먼저 다룬 극작가로 불린다.

G. 뷔히너는 당시의 봉건체제에 대항하여 민중의 고통에 찬 삶을 변혁하고자 직접 투쟁에 나서 <인권협회>를 조직한다.

민중계급을 대변하는 민중작가이면서도 편협한 이데올로기에 빠져들지 않고, 인간의 영원한 과제인 '사랑'을 인간의 참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1837년 2월, 작가는 <보이첵>을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보이첵>의 초연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1913년에 이르러 독일 뮌헨의 레지텐트테아터 극장에서 이루어진다.

그 외, 그의 희곡으로,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당동의 죽음>(1835)과, 귀족주의에 대한 저항정신을 담고 있는 <레옹세와 레나>(1836)가 있다.

그 외 정치 팜플렛 <헤센급전>(1834), 중편소설 <렌쯔>가 있다.

 

 

 

 

# '사랑과 혁명' 소극장, 그리고 연극 <그 남자, 보이첵>에서 얘기하는 작가와 작품이야기 : 팜플렛 내용.

<그 남자, 보이첵>은 G. 뷔히너의 <보이첵>을 중심으로 A-B-A’ 로 재구성된 작품이다.


장면 A에서 극장 정령은 보이첵을 간절히 하고 싶어하는 ‘그 남자’에게 점점 연민의 정을 느낀다.

장면 B에서는 원작 <보이첵>을, 마리와 보이첵을 중심으로 하여 재구성한 장면으로, 극장 정령의 기운으로 가상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극장 정령은 마리로 변신하며, ‘그 남자’는 보이첵을 연기한다.

장면 A'는 다시금 현실에 놓인 ‘그 남자’가 자신의 희망적 미래를 보며 막을 내린다.



원작 <보이첵>은 실존 인물 보이첵을 작가 G. 뷔히너가 마리를 등장시켜 시대를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는 작품으로 만들어 내었다.

여기 등장하는 마리는,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발등에 눈물을 흘리는 창녀 마리아의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는 매력적인 인물로 창작되었다.  

그리고 마리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보이첵은 하급군인의 모습으로 민중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빛나는 보석들 속의 진흙과도 같다.

이 작품은 세익스피어의 <맥베드>에 나오는 “아름다운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아름답다.”는 마녀의 대사처럼 신비롭다.


G. 뷔히너는 당시의 봉건체제에 대항하여 민중의 고통에 찬 삶을 변혁하고자 직접 투쟁에 나서 <인권협회>를 조직한다.

민중계급을 대변하는 민중작가이면서도 편협한 이데올로기에 빠져들지 않고, 인간의 영원한 과제인 “사랑‘을 인간의 참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1837년 2월, 작가는 <보이첵>을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참고로 본 공연은 원작의 마지막 장면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리고 <보이첵>의 초연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1913년에 이르러 독일 뮌헨의 레지텐트테아터 극장에서 이루어진다.

그 외, 그의 희곡으로,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당동의 죽음>(1835)과, 귀족주의에 대한 저항정신을 담고 있는 <레옹세와 레나>(1836)가 있다.

그 외 정치 팜플렛 <헤센급전>(1834), 중편소설 <렌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연극은 혁명적 행위이며, 공연은 혁명의 완성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혁명은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이 시대를 향한 투철한 예술정신의 부족이 그 원인이다. 이 극장에서 예술정신으로 가득 찬 작품과 작가, 배우와 연출자가 나올 수 있다면 물심양면으로 도울 것이다.

그것이 ‘사랑과 혁명’ 소극장의 정체성인 것이다.


                                                -  연출   정 태 윤 -

 

 

*** 사랑과 혁명 소극장에서 연극 <그 남자, 보이첵>을 감상한 후의 단상

 #  너무 통속적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관객이 적은데 어떻게 소극장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배우와 스텝들, 홍보, 그리고 건물과 무대에 관련된 비용까지 감당하려면...휴휴휴

#  3류 단역배우로 나오는 '그 남자'가 결국 오늘의 연극 배우의 실상이며, 곧 보이첵이라고 하면 과도한 연결이 되는 것일까? 

#  사랑과 혁명 소극장의 개관과 개관공연을 축하하는 축사를 읽어보니, 축사가 아니라 한탄인 듯 여겨지는 슬픔이... 

#  전단지를 보니, '문예진흥기금을 일부 지원받아 공연합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아마도 적지만 이것이 큰 힘이 되어주려니 생각한다. 문예진흥기금을 확대하여 더 나은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예산을 늘리거나 국민적 성금을 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렇게 어려울 것인데도 추첨하여 관객들에게 상품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영화초대권 받았어요...

#  공연을 마치고  문화메신저 단체관람 손님들과 기념사진을 찍어주셨어요. 관객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저희는 거기에 함께 끼지는 않았지만, 문화메신저 회원이랍니다. 아래에 제가 찍은 사진 올릴께요.

#  두 분 배우(연극배우 그 남자, 보이첵 역 : 정태윤,  극장 정령, 마리역 : 변지연) 의 열연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공연 많이많이 해주세요... 

#  '사랑과 혁명' 소극장, 배우와 스텝 여러분의 건강과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