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멜라민만 걱정하는가(화학물질 첨가물의 문제)

道雨 2008. 10. 18. 14:45

 

 

 

멜라민만 걱정하는가 

[안병수의 바르게 먹자]

다른 물질과 화학작용 일으키는 첨가물은 끝도 없어…   무첨가·무농약 식품이 해결책

이 정도라면 우는 아이도 그치게 하는 ‘현대판 곶감’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멜라민 말이다. 지난달 중순께 중국에서 첫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강 건너 불이려니 했다. 그러나 그 불이 서해바다를 건너더니 우리나라도 활활 불태우고 있다.

이제 멜라민 얘기 없이는 대화가 안 될 지경이다. 유치원생조차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멜라민은 안다.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짧은 시간에 악명을 떨치게 됐을까?

 

 
» 지난 9월29일 오전 해태 직원들이 서울의 한 슈퍼마켓에서 멜라민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진 제품들을 수거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독성 자료를 찾아봤다. ‘반수 치사량(LD50) 3296mg/kg.’ 이 말은 체중이 1kg인 실험동물에게 멜라민 약 3.3g을 먹였을 때 절반이 숨진다는 뜻이다. 몸무게가 60kg인 사람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거의 200g 가까이 되는 양이다. 고개가 갸웃해진다. 200g이라면 어느 정도 양인가. 라면 한 봉지가 보통 120g이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양 아닌가.

그렇다. 멜라민은 독성이 거의 없는 물질이다. 굳이 독성으로 치면 우리 식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금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서는 피해자가 수만 명이나 발생하지 않았는가. 그중에는 이미 숨진 아기들도 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물론 과학자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너무 기대를 하지는 마시라. 혼란스러워하기로는 과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도 아직 정확한 내막을 모른다. 단지 가설의 형태로 몇몇 이론을 보고하고 있을 뿐이다.

그중에 가장 타당한 주장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이른바 화학물질의 ‘칵테일 효과’(cocktail effect)다. 칵테일 효과란 말 그대로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을 섞을 때 예상치 못한 어떤 유해성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멜라민을 중심으로 이 이론을 설명해보자. 멜라민이란 놈은 우리 몸속에 들어가면 절에 간 색시처럼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다른 화학물질들과 자주 밀회를 즐긴다.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물질이 있으면 불륜관계도 맺는다. 화학반응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당연히 ‘사생아’가 만들어질 터. 이렇게 만들어진 사생아가 문제다. 인체의 어느 부위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흉기를 휴대하는 경우가 많다.

‘멜라민 사생아’는 주로 우리 몸의 신장을 공격한다. 중국의 피해자들이 모두 신장 장해를 일으킨 것이 그래서다. 멜라민 혼자서는 결코 쓸 수 없는 불행의 시나리오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칵테일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 멜라민뿐일까. 그렇지 않다. 식품을 통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는 화학물질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보자. 식품의 변질을 막으려고 사용하는 보존료나 산화방지제, 색깔을 예쁘게 하려고 쓰는 색소, 맛을 좋게 하기 위한 조미료나 향료, 기타 유화제, 표백제, 감미료, 산미료 등으로부터 제초제나 살균·살충제 따위의 농약에 이르기까지, 가짓수로 세자면 수천 가지에 달한다. 이 많은 물질들 중에는 적지 않은 것들이 제2의 멜라민이 되어 또 다른 칵테일 효과를 음모하고 있을 것이다. 극비리에 말이다. 개중에는 용케 발각된 녀석도 있다. 인기 높은 보존료인 안식향산나트륨이 그것이다. 이 물질은 비타민C와 불륜을 맺어 발암 의심물질인 벤젠으로 변한다.

 

멜라민과 안식향산나트륨, 무엇이 다른가? 똑같은 화학물질이다. 전자는 식품에 불법으로 넣고 후자는 합법으로 넣는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참,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멜라민의 칵테일 효과는 급성독성을 나타내지만, 안식향산나트륨은 만성독성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실은 만성독성이 더 무섭다. 폐해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멜라민이라는 한 무명 화학물질에서 촉발된 중국발 공포는 우리에게 큰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식품케미컬’ 전반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그래서 식탁 안전의 새로운 교훈이 되어준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결론은 무첨가·무농약 식품을 먹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식품은 되도록 피하고.

■ 초동 대처 실패한 학계

멜라민이 처음 말썽을 부린 것은 2004년이다. 타이에서 생산된 애완동물 사료를 먹고 아시아 지역의 개와 고양이 수천 마리가 신장질환 증상을 보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시 전문가들은 멜라민을 놓치는 우를 범했다. 사료에 피어 있던 곰팡이가 원인인 것으로 잘못 진단했다.

약 3년 뒤인 2007년 봄, 이번엔 북미 지역의 애완동물들이 똑같은 증상을 보이며 집단 폐사했다. 멜라민의 마각이 드러난 것은 이때다. 동물들의 신장에서 멜라민 유도체(melamine cyanurate)가 과량 발견된 것이다.

중국산 사료에 멜라민이 첨가된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때도 학자들은 또 한 가지 실수를 범했다. 멜라민이 식품에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초동 대처 미흡’이라는 비난은 학계도 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멜라민은 양의 탈을 쓴 이리다. 그 음흉한 탈은 아직도 완전히 벗겨지지 않았다.

 

 

*** 벤젠
공업적으로 널리 쓰이는 가장 간단한 방향족(芳香族) 탄화수소.
화학식은 C6H6이다. 1825년 마이클 패러데이가 고래기름으로 만든 조명용 가스에서 발견한 뒤, 1845년 독일의 화학자 A. W. 폰 호프만이 콜타르에서 검출해 벤젠이라 이름지었다. 주로 코크스로 가스에서 얻으며, 이 방법으로 가장 많이 시판되는 여러 등급의 순도(純度)가 높은 벤졸을 만든다. 1950년부터는 석유에서도 만들기 시작했다. 매우 유독하며 오랫동안 노출되면 백혈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
고무, 지방, 수지 등의 용매로 많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