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술, 물과 불의 상생

道雨 2009. 3. 21. 11:17

 

 

 

술, 물과 불의 상생 [2009.03.13 제751호]
[김학민의 주류인생]
성스러운 물과 인류 문명 그 자체인 불, 상생관계인 둘이 ‘불화’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 알코올 농도 40도의 술이 가장 맛이 좋다고 주장한 러시아 화학자 멘델레예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생명체를 구성하는 여러 물질 중에서도 생명체 중량의 70~80%를 물이 차지하고 있으니, 물은 곧 생명의 모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위성을 쏘아 달, 화성 등 태양계의 별들을 탐사할 때도 생명체의 가능성을 물의 존재 여부와 관련하여 분석·추론한다. 우리 민족은 고래로부터 물을 물리적·지리적 형상이 아니라 정신적·정서적 위상으로 받아들여왔다. 물의 원형성을 곧 세상의 창조력, 영원한 생명력, 풍요의 근원, 청정한 정화력 등으로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물은 농경생활의 실용성을 훨씬 뛰어넘어 약수나 정화수처럼 성스러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불은 산소와 물질이 화합하여 연소하는 현상이다. 불은 빛과 열을 내는 에너지로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른 존재로 이 세상에 군림할 수 있도록 인류 문명을 떠받쳐준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예로부터 물처럼 불도 생명력 또는 창조력의 상징으로 여겨왔으며, 제사에서의 소지나 향불, 정월 대보름의 쥐불놀이처럼 흔히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청정의 힘, 정화의 힘으로도 받아들였다. 불은 물질이 아니라 현상이기 때문에 물처럼 형상화하지는 못하지만, 화약·알코올·기름 등 화인성 물질을 통해 그 이미지를 연계할 수 있다.

흔히 물과 불을 상극관계로 생각하지만, 물과 불의 원형성은 동일하므로 오히려 상생관계라고 하는 것이 옳다. 다석 유영모 선생도 “물을 부리는 것이 불이다. 불을 다스리는 것이 물이다. 물과 불은 서로 작용한다. 우리는 물·불 없이는 살 수 없다. 또 우리 마음속에 평화를 일으키려면 푸른 것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물·불·풀이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였다. 물과 불은 서로 밀어내고 서로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조화하고 보완하는 신비가 있다. 물과 불의 조화는 푸른 열매인 벼(禾)로 변화한다. 평화(平和)는 밥(禾)을 먹는 것(口)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곧 물과 불의 조화로 만들어진 밥을 나누어 먹는 것이 평화다.

나는 물에 불(알코올)이 들어간, 곧 물과 불이 상생적으로 조화되어 만들어진 음식을 술이라고 생각한다. 막걸리처럼 불이 적게 들어가면 마실 때 ‘물처럼’ 시원하고, 보드카처럼 불이 많이 들어가면 속이 ‘불처럼’ 탄다. 술의 알코올 농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프루프(Proof)와 %가 있다. 프루프는 알코올의 비중을 측정하는 기술이 개발되지 못했을 때, 영미 계통에서 화약에 위스키를 부어 불이 붙지 않으면 언더(Under) 프루프, 불꽃이 꾸준히 붙어 있으면 프루프, 화약이 폭발하면 오버(Over) 프루프라 한 데서 온 주관적 측정 단위다. %는 19세기 정확한 주정 측정기가 발명된 뒤 상용되는 알코올 농도의 미터법 표시다. 미국은 100Proof를 50%로 정했다. 우리의 ‘도’는 %다.

당연히 발효주는 알코올 농도가 낮고 증류주는 높은데, 보통 막걸리 5~6%, 청주 7%, 배갈 40~50%, 맥주 8%, 와인 9~15%, 샴페인 15%, 브랜디 40%, 위스키 35~40%, 진 40%, 보드카 40~45%의 알코올 농도를 보인다. 그러면 왜 양주는 대개 40도일까?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 화학자 멘델레예프는 유명한 술꾼이었다. 그는 평생 보드카를 즐겨 마셨는데, 화학자답게 도수 높은 보드카에 물을 부어가며 어느 알코올 농도에서 가장 술맛이 좋은가, 내 식으로 이야기하면 물과 불의 조화를 수백 차례 실험한 끝에 40도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실험 결과’가 유럽의 위스키·브랜디 업계에도 전해진 것이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을 즈음해 숭례문이 불탔는가 하면, 2009년 들어 용산 철거민 화재 참사, 화왕산 산불 참사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왜 이명박 정부 들어 유난히 불로 인한 사건이 자주 벌어질까? 물과 불은 상생인데, 이명박 정부가 물을 갖고 너무 장난을 치자 불이 화를 낸 결과라고 나는 풀이한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막히면 돌아서 자연히 흐르는 것이 본성인데, 이를 운하로 맞창 뚫겠다고 기고만장하고, 생명을 살리는 물로 물대포를 만들어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마구 쏘고 있으니, 어찌 불이 화를 내지 않겠는가? 단언컨대 MB 정부가 속도전 운운하며 사회적 마찰을 계속 일으키면 불로 인한 참사는 계속 벌어질 것이다. ‘속도’가 빠르면 열이 나고, ‘마찰’하면 불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김학민 음식 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 윗 글은 '한겨레 21'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