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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의 도보여행가 황경화씨

道雨 2009. 4. 24. 10:43

 

 

 

         칠순의 도보여행가 황경화씨

 

"자유는 용기있는 자의 몫
일상을 벗어나 걸어서 떠나보세요"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있다. 환갑 이후는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활기찬 삶을 꾸려가는 이들도 많다. 도보여행가 황경화씨는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다. 블로그 닉네임인 '안나'로 널리 알려진 황씨는 칠순의 나이에도 틈만나면 배낭을 둘러 메고 전국으로 도보여행을 떠난다.

그는 이달 초 칠순을 맞았다. 그러나 칠순잔치 대신 남편과 함께 제주도로 도보여행을 다녀왔다. 지난달 31일부터 8일 동안 제주올레 13개(7-1코스 포함) 전 코스 215㎞를 걸었다. 자식들이 잔치 해준다는 걸 마다하고 다녀온 것이다. 제주에서 돌아온 뒤 11∼12일에는 ㈔우리땅걷기 회원들과 함께 전북 무주·진안의 아름다운 길을 걸었다. 18∼19일에는 대한걷기연맹이 원주에서 개최한 한국100㎞걷기에 참가해 완주했다. 19시간 만에 들어와 참가자 261명중 15등이었다. 황씨에게 도보여행은 생활 그 자체이다.

지난 주 초 인천 부평역 근처에 있는 그의 아파트로 찾아갔다. "나이도 많으신데 대단하신 거 같다"고 말문을 떼자 그는 손사레를 쳤다.

"저 '철인할머니' 아니에요. 제 나이만큼 아파요. 허리가 이상해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척추 3, 4, 5번 마디가 내려앉아 신경을 누르고 있고, 척추도 어긋나 있다고 하던데요."

황씨는 "헬스클럽에서 9년째 매일 2시간 가량 근력운동 등을 해서인지 걷는 데 큰 무리는 없다"고 말했다.

"철근은 삭았는데 둘러싸고 있는 시멘트가 단단해서 기둥이 버티고 있는 꼴이죠.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지만 걸으면 신통하게도 아픈 구석이 없어져요."

황씨는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그러나 정년을 앞둔 1998년 깨달은 바가 있어 39년6개월의 교사 생활을 접었다.

"58세 생일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2년만 있으면 이제 60이구나.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는데…. 더 늦기 전에 남은 날을 나를 위해 살아보자,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해 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었죠."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유인'이 된 황씨는 문화센터에도 다니고 공연도 보고 하면서 새로운 생활을 만끽했다. 무엇보다도 매일 새벽 동네에서 약간 떨어진 만월산까지 걸어가 등산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면서 걷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 올라온 지리산 종주기들을 보았고, 그 해 11월 초 폭설이 내린 지리산 종주를 감행한 것이 본격적인 걷기의 시작이었다. 이후 황씨는 틈만 나면 전국으로 싸돌아 다녔다. 전국의 이름있는 산이란 산은 다 찾아 다녔다.

자신감을 갖게 된 황씨는 2004년 64세의 나이에 혼자서 국토종단에 도전했다. 한반도 최남단인 전남 해남 땅끝마을을 출발, 23일 동안 800㎞를 걸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도착하는 긴 여정이었다. 2006년에는 108일 동안 우리나라 동·남·서해안을 일주했다. 강원도 고성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해안선을 따라 4000㎞를 걸었다. 이듬해에는 큰아들 내외를 꼬드겨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800여㎞)을 걸었다. 섬진강(2006년), 한강(2007년), 금강(2008년) 등 강을 따라 구간별로 나눠 걷는 답사길도 다녀왔고, 올해는 낙동강 길을 걷고 있다.

황씨에게 걷기는 무엇일까. 그토록 빠져드는 이유가 뭘까.

"60세가 넘으면 아무래도 죽음을 생각하게 되죠. 죽기 전에 우리 땅을 걸어보고 싶었죠. 걸어보니 좋아서 계속 걷고 있는 겁니다."

그는 "배낭을 메고 혼자 낯선 길을 걷다보면 가장 정직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며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들은 너무 바쁘게 사느라 잊고 지내는 게 많아요.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그저 걷고 자고 먹고 하다 보면 누군가와 경쟁을 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는 "정감있는 길만 보면 걷고 싶은 열정이 마구 샘솟는다"면서 "배낭을 메고 길에 서면 날개가 돋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씨는 도보여행모임인 ㈔우리땅걷기 창립 회원으로 참여해 임원까지 맡고 있다.

"회원들과 전국 곳곳을 걸으면서 친해졌어요. 저를 엄마, 고모, 이모, 누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족같이 친해진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이 보고 싶어 여행길에 나설 때도 많답니다."

황씨는 도보여행 말고도 하는 일들이 많다. 도보여행 경험을 비롯해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담아내는 그의 블로그 '맛있게 살기'(http://kr.blog.yahoo.com/ropa420kr)에는 하루 평균 5000명, 많을 때는 1만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북적거린다. 개설된 지 5년 만에 다녀간 이가 250만명이 넘는다. 야후코리아에 개설된 450만개 블로그 가운데 방문객 순위로 400위권에 드는 파워블로그다.

국토종단 이야기를 담은 '내 나이가 어때서?'(샨티·2005년), 생활 속의 웃음과 지혜들을 담은 '안나의 즐거운 인생비법'(샨티·2008) 등 2권의 책도 썼다. 각종 잡지에 도보여행기를 기고하기도 한다. 책을 내고 TV에도 가끔 출연하다 보니 어느새 유명인사가 돼 요즘에는 여성센터나 문화센터 강연도 자주 나간다. 황씨는 "활동적으로 지내면서 성격도 많이 활달해졌다"며 "인생 이모작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4일 밤 또 집을 나선다. ㈔우리땅걷기 회원들과 함께 25∼26일 이틀 동안 낙동강 1300리길 두번째 구간(임기∼삼동마을 약 50㎞)을 걷기 위해서다.

"많이 걸었지만 아직도 가볼 곳이 많아요. 영산강도 걸어야 하고, 올 가을에는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가는 코스로 국토종단을 또 할 생각입니다. DMZ를 따라 걷거나 북녘땅 걷기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지리산 주변 100여개 마을을 연결하는 지리산 둘레길(약 300㎞)도 걷고 싶고…."

그의 걷기 욕심은 끝이 없다.

"저처럼 살려면 건강, 시간, 경제력, 가족들의 이해(그는 이게 가장 중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가 필요한데 저는 다 갖췄어요. 운이 참 좋은 거 같아요."

황씨는 자신의 활동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보장해 주는 남편에게 특히 고마워했다.

"젊었을 때 사업에 실패해 빚을 갚느라 20여년 넘게 고생을 시킨 남편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를 배려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아내가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비우는데도 집에서 혼자 밥해 먹고 빨래하며 기다려 주는 남편이 얼마나 있겠어요."

황씨는 노인들에게 자기만의 취미활동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라고 권했다.

"나이가 들면 외로워지기 마련이지요. 자기만의 취미활동이 필요해요.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건강도 자연스레 따라오지요.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저지르고 보세요. '자유는 용기있는 자의 몫'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소중한 인생, 자기 자신을 감동시키면서 살아야죠."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

황경화는

1940년 개성출생. 춘천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에서 40년 가까이 아이들을 가르쳤다. 58세의 나이로 명예퇴임한 뒤 걷기에 취미를 붙여 도보여행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책도 펴내 어릴 때 품었던 작가의 꿈을 뒤늦게나마 이뤘다. 모시던 시어머니(94)가 올 초에 시누이 집으로 가셔서 지금은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다. 서울에 사는 친정어머니(94)도 거동이 불편해 매주 들러 살피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걷기 여행과 블로그 운영, 강연 등을 통해 활기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