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무상급식의 성공사례 (합천군)

道雨 2010. 3. 23. 18:32

 

 

 

              무상급식 : 합천군의 성공사례가 말하는 것

 

[경향신문]

 

경남 합천군에선 군내 초·중·고 37개 학교 4700여 학생 전원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한다고 한다.

 

군 재정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다. 한 해 가용예산이 2800억원이고 재정자립도는 12%에 불과하다.

군수가 사회주의자이거나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이어서도 아니다. 군수는 물론 군의원 10명 가운데 9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중앙 정치판에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해야 하니 마니하며 예산 문제만 놓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지만, 합천군은 고교생까지 부모의 소득을 묻지도 않고 공짜로 밥을 먹인다. 합천군이 무상급식에 예산 문제가 아니라 지역살리기로 접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합천군이 전면 무상급식을 위해 마련한 군 자체 예산은 한 해 17억여원이다. 이 돈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무상급식에 우선순위를 두자 불요불급한 예산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폭 8m짜리 2차선 도로 1㎞를 까는 돈이면 1년 무상급식 예산이 나오더라고 한다.

무상급식은 발상의 전환이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정책 의지의 문제라는 얘기다. 무상급식을 나라 곳간 거덜내는 일이라고 입에 거품을 무는 경제전문가들에 대해 합천군은 코웃음을 친다. 합천군은 무상급식이야말로 지역발전을 위한 경제정책이라는 것이다.

합천군에서 무상급식은 지역경제 선순환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군민이 급식재료를 농약 안 치고 화학비료 안 주고 길러서 판다. 급식 메뉴엔 한우 스테이크도 나온다. 학교엔 장독대도 있다.

친환경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농민이 늘고 소득도 커진다. 합천군이 예산에서 쪼갠 17억여원이 고스란히 지역 농민들에게 돌아간다.

지방경제를 빈곤의 악순환으로 몰아가는 부(富)의 외지 유출이 무상급식으로 차단된다. 이 덕분에 인구감소도 둔화되고 교육 여건도 좋아졌다. 이젠 타군에서 고교생들이 유학을 올 정도라고 한다.

합천군은 무상급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만으로 교육과 복지뿐 아니라 환경과 경제까지 네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정부가 즐겨쓰는 말을 빌리자면 ‘녹색 성장’의 실례로 합천군 무상급식만한 게 없다.

합천군의 사례를 농촌의 일개 지자체의 일로 치부해선 안된다. 무상급식을 놓고 예산타령만 하는 것은 정치적 무능을 보여줄 뿐이다.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정치다. 지방선거를 겨냥해 무상급식에 이념을 덧씌우고 돈 문제만 따지는 행태는 정치가 아니라 정치공학일 뿐이다.

 

 

 

 

 

 

           울진군, 모든 초등군위생에 무상급식

 

경북 군위군과 울진군이 올해부터 초등학교 재학생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한다.

 

군위군은 지역 10개 초등학교 재학생 803명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한다고 5일 밝혔다. 이는 경북도교육청이 올해부터 도내 100명 이하의 모든 소규모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며 군위군에는 학생 수 100명 이상 초등학교가 없다. 그동안은 면 단위 50명 이하 학교에서만 무상급식을 해왔다.

 

군은 올해 추경예산에 8900만원을 편성해 학생 모두에게 급식경비를 지원키로 했다. 무상급식은 지난달부터 소급 적용해 실시한다. 또 군은 1억7200만원을 들여 군내 모든 초·중·고 19곳에 후식용 친환경 제철 과일과 우수농산물 식재료, 쌀국수 등을 공급하고 로컬푸드 운동의 활성화에도 힘쓰기로 했다.

 

군위군 쪽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안전한 농산물을 성장기 학생들에게 공급해 학부모의 급식비 부담을 덜어 주고 학생들의 건강도 챙길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도교육청의 무상급식 확대 실시로 울진군 내 전체 10개 초등학교 2987명도 모두 무상급식 혜택을 받게 됐다. 경북도 전체로는 급식비를 전액 지급받는 무상급식 대상 초등학생이 지난해 7956명에서 올해 1만5400여명으로 늘어난다.

 

<2010. 4. 6 한겨레신문>

 

 

 

              너도 나도 밥맛 좋게 할 무료급식

 

 

 나는 시골 전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한다.

3월은 참 바빴다. 각종 학비감면서류 챙기기, 서류로 감면이 안 되는 학생의 담임추천서 쓰기, 무료급식, 무료우유에 필요한 담임추천서, 각종 기관에서 추천해 달라는 장학금 추천서 등등 이렇게 셀 수 없이 담임추천서를 쓰며, 한 해 동안 학급 아이들이 받아야 할 혜택을 3월에 모두 챙긴다.

이런 이유로 수업은 뒷전으로 밀리고, 선생님들은 주객이 전도된 3월을 보낸다. 갑자기 맡은 아이들의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서 퇴근 후 틈틈이 가정방문도 다녀야 하고, 면 단위 지역에 사는 장거리 가정방문은 아예 주말에 몰아서 하기도 한다.

이렇게 업무가 과중한 학교 현장에 전면적으로 무료급식이 지원된다면 학생도 좋겠지만 교사 업무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급식에 관한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학생들은 지루한 하루의 일과 중 점심시간을 무척 기다린다. 오늘 메뉴가 무엇인지 등교하자마자 챙기는 아이도 있고, 특식이 나오는 수요일을 기다리는 아이도 있다. 밥은 맛부터 기다림의 줄거움까지 참 소중하다. 그래서 온 국민의 충분한 관심사가 될 만하다.

 

일선에서 느끼는 무료급식은 물질적 지원만이 아니라 학생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감싸는 정신적 지원도 함께 이루어져야 완전한 복지혜택이라 본다. 복지 정책의 초점은 가진 자가 아니라 가지지 못한 자이다. 무료급식 아동이 사회로부터 낙인되었다는 느낌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일전에 텔레비전에서 어떤 이는 학급에 가난한 아이, 부자 아이 서로 다 아는 처지인데 그게 무슨 큰 문제이겠느냐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현장에 있어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적 빈부 정도는 학생들이 체감은 하지만 크게 드러나지 않는 문제이지만, ‘밥’이라는 것은 있는 사람 처지에서야 별것 아니지만 굶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생존의 문제다. 그만큼 중요하다.

 

이렇게 ‘소중한 밥’을 자신의 부모가 해결해주지 못하고, 정부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자라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선생님은 알고 있고, 학교 친구들은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최대한 친구들의 눈을 피해 상담을 해서 추천서를 작성하려고 애쓰고, 친구들은 친구들대로 모른 척해주려고 애쓴다. 이렇게 무료급식에 얽힌 복잡한 심사는 교사나 학생이나 고민덩이다.

 

아이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어깨동무하고 급식소로 달려가고 싶다. 이런 학교 현장을 어른들의 시선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학교 선생님의 힘든 업무도 경감하고, 아이들이 너나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급식소로 달려가도록 우리 모두는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선경진 경남 밀양 밀성제일고 교사>


 

 

 

           무상급식이 지역경제를 춤추게 한다 

[한겨레 21 특집] :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① 합천 무상급식 현장
- 교육청·군청·도청이 사이좋게 급식비 부담

    … 지역의 ‘친환경 농업 실험’이 급식으로 활로 뚫어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4대강 사업에 쏟을 돈으로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상씩 차려주자는 주장이 나온다. 다른 쪽에서는 우리 주머니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부잣집 아이들의 점심 비용까지 댈 이유가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르헨티나에서만 출몰하는 줄 알았던 포퓰리즘이 한국을 기웃거린다는 얘기도 돌고, 나라 살림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생산적인 논쟁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3곳의 무상급식 현장을 세밀하게 살펴본다. 편집자

 

지난 4월8일 오전 11시30분 경남 합천군 합천리 남정초등학교 식당. 이 학교 병설 유치원 어린이 69명이 길게 줄을 섰다. 3살 아이들이 모인 ‘다정반’의 성준이도 눈을 반짝이며 배식대 앞에 섰다. 오늘 메뉴는 국수. 밀국수에 애호박과 숙주·부추·양파·달걀 고명이 얹혔고, 멸치 국물이 인심 좋게 담겼다. 깍두기와 토마토, 쑥 절편이 따라붙었다.



» 남정초등학교 4월8일 점심 메뉴와 식재료 검수표

“아토피가 나았어요”

 

성준이가 이날 먹은 토마토는 성준이네 집이 있는 합천 읍내에서 남쪽으로 4km 남짓 떨어진 대양면 대목리 강재성씨 농장에서 자란 것이다. 친환경 농작물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유기인증’을 받은 상품이었다. 농약이나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양파도 인근 대양면 대목리 40여 개 가구가 함께 만든 ‘대양생명평화공동체’에서 생산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소량의 비료만 사용한 ‘무농약’ 등급 이상의 고급 농산물이다.

달걀은 읍내에서 남쪽으로 17km는 더 떨어진 삼가면 박명진씨네 닭이 낳은 것이다. 이곳에서는 닭을 풀어 키운다. 유정란이다.

 

합천에서 생산되지 않는 농작물은 이웃 지역에서 공수해온다. 부추는 창녕군에서 왔고, 호박은 김해군에서 자랐다. 물론 무농약 등급 이상이다. 가까운 생산자에게서도 살 수 없는 물품은 식품 유통업체를 통해 들여온다. 국수와 다시마, 멸치, 쑥절편 등이다. 모두 국산이다.

이 학교의 민근숙 영양교사는 “지역에서 나온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지역산 상품이 없는 공산품이나 해산물 등은 대형 유통업체를 통해 들여온다”고 말했다. 식판에 머리를 박고 정신없이 국수를 먹던 성준이는 맛을 물어보자 “맛있어요”라며 웃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1·2학년의 식사가 끝나자 3~6학년 학생이 몰려왔다. 192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은 학생들로 웅성거렸다. 메뉴는 같았다.

친구들과 함께 국수를 먹던 6학년 여학생 재원이는 “4학년 때까지 아토피가 얼굴과 몸까지 심했는데, 학교 급식 덕인지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같은 반 친구인 아람이도 “공짜로 밥을 먹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3학년 민배는 “채소는 잘 안 먹고 고기만 먹었는데, 선생님이 급식 시간에 채소를 먹으라고 해서 이제는 잘 먹는다”고 말했다.

 

다른 날 메뉴도 살펴봤다. 이틀 전인 4월6일 찹쌀밥과 잡채 메뉴에 들어간 재료 15가지 가운데 7가지는 합천이나 주변 지역에서 생산된 무농약 등급 이상의 농산물이었다. 느타리버섯, 당근, 시금치, 양파, 오이, 찹쌀, 팥 등이었다.

유통업체에서 들여온 품목은 말린 다시마, 당면, 들나물, 미역, 백합, 어묵 등 8개 품목이었다. 4월12일 점심 재료 16가지 가운데서는 11가지가 합천이나 주변 지역에서 생산된다. 쇠고기는 합천축산협동조합에서 1등급만 공수된 것이 눈에 띄었다. 쌀은 모두 합천 지역에서 생산된 것만을 썼다.

 

» 어린이는 채소를 먹기 싫어한다. 이럴 때는 선생님이 직접 나서서 식생활을 바꿔줘야 한다.

군내 고등학교 진학률 68.2% → 86%

 

이 학교의 명물은 식당 뒤 공터에 마련된 장독대다. 1m 남짓한 높이의 장독 9개에는 고추장과 된장, 간장, 매실 농축액, 멸치 액젓 등이 담겼다. 된장독에는 2009년 6월26일에 만들었다고 기록됐고, 유통기한도 같이 찍혀 있었다. 간장독 속에는 메주가 부직포에 쌓여 고추·숯과 함께 소금물에 잠겨 있었다.

민근숙 교사는 “초등학교 특별 활동 시간에 장 담그기 실습을 하고, 그렇게 만든 장을 아이들이 나중에 직접 맛보게 된다”며 “아이들이 음식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 급식비 학부모 부담 현황(2008년 기준)

 

이렇게 남정초등학교 학생 1명이 먹는 점심 재료값은 평균 2350원이다. 이 비용은 모두 합천군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한다. 지방 교육청에서 1천원을 내고, 합천군청에서 1260원을 부담한다. 나머지 90원은 경상남도에서 채운다. 학부모가 부담하는 비용은 없다. 이런 식으로 합천군은 군내 37개 초·중·고등학교 학생 4769명에 대한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37개 학교 가운데 조리실을 가진 곳은 29곳이다. 학교 규모가 작은 8곳 가운데 묘산중학교에는 가까운 학교에서 음식이 배달된다. 나머지 일곱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가까운 학교 식당으로 이동해 점심을 해결한다.

 

합천군이 무상급식을 위해 1년에 쓰는 예산은 17억원이다. 여기에 교육청 특별회계 예산 16억원이 얹혀져 33억원이 무상급식 재원이 되고 있다. 한 해 예산이 3200억원 수준인 합천군에 17억원은 거금이다. 합천군의 재정자립도는 12.7% 수준으로, 경남 10개군의 평균(15%)보다 낮다.

그런데도 무상급식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배경은 뭘까?

합천군청 관계자는 “교육 문제 때문에 가까운 거창이나 대구 등으로 인구가 계속 유출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사의 대책으로 나온 것이 무상급식”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무상급식을 도입한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합천군의 자료를 보면, 합천군의 중학생이 군 안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이 2005년에 68.2%였지만, 올해에는 86%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합천군청 관계자는 “무상급식 실시 효과가 큰 것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도 평가가 후하다.

노현석 남정초등학교 교장은 “무상급식을 하고 나니 절대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다”며 “이전에는 급식비를 체납하는 학생을 담임교사가 채근해야 했는데, 이런 상황은 대단히 비교육적이었다”고 말했다.

노 교장은 “특히 예민한 시기를 거치는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에게는 정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전영희 교사도 “과거에 급식비를 내지 못한 가정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전화를 자꾸 거니까 학생 부모님이 나중에는 전화를 피하더라”며 “학생도 선생님의 눈치를 보면서 주눅이 드는 상황이 벌어져 안쓰러웠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무상급식제가 실시되기 이전인 지난 2008년 이 학교의 학생은 매달 2만4천원 정도의 급식비를 내야 했다. 기초생활수급권자는 급식비 보조를 받았다.

김유진 교사는 “급식비 지원을 받은 빈곤층 학생은 공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풀이 죽은 부분이 보였다. 식사 자리에서 그런 모습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좋다”고 말했다.

 

» 남정초등학교의 조리사들이 군내 강재성씨가 재배한 토마토를 다듬고 있다(왼쪽). 민근숙 영양교사가 학생들과 직접 담근 된장·고추장은 학교 뒤쪽 장독 속에서 익어간다.

가격이 폭락해도 농가 소득 보장

 

지역 생산자에게도 무상급식은 ‘복음’이었다.

합천군에서는 무상급식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대양면·가회면·가야면 일대에서 친환경 농업의 실험이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수요처가 없다는 점이었다. 친환경 농업으로 지은 쌀을 농협에서 수매했지만, 판로가 확보되지 않아 일반 쌀과 섞여서 싼값에 팔리는 상황도 벌어졌다. 농민들은 부산 일대에서 친환경 농작물의 수요를 찾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지역발전사업을 찾던 합천군과 농민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2008년 11월 합천군에서 무상급식 시범사업을 벌이자 50개 농가가 이 사업에 참여했다. 이듬해 무상급식 사업이 전면적으로 실시되면서 70여 농가는 4월 ‘안전한 학교 급식을 위한 합천생산자영농조합 법인’을 만들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암초가 기다렸다. 농민 법인이 대기업 식품 유통망이 깔아놓은 학교 급식 네트워크에 끼어들기 쉽지 않았다. 친환경 농작물로는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다. 합천군청이 도와줬다. 합천군 공무원들은 학교 영양사들에게 지역 생산자 조직의 상품을 사주라고 옆구리를 찔렀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아이에게 양질의 급식을 먹여야 한다는 것이 근거였다.

합천군에서는 학교 영양사 29명이 팀을 나눠 공동으로 점심 메뉴를 짜고 재료를 구매했다. 이들이 움직이자 판로가 열렸다. 이들의 구매 목록에 농민 법인 이름이 올라가는 일도 잦아졌다.

법인에 참여하는 농가 수도 불어났다. 올해 들어 400가구가 넘어섰다. 법인의 상근자도 3명이나 생겼다. 농가 수입도 늘었다. 법인은 무상급식이 도입된 이후 농가 수입이 15~30% 정도 올랐을 것으로 추정한다.

정미영 법인 사무국장은 이유가 세 가지라고 했다. 그는“학교에서 안정적 수요처를 마련해줬고, 친환경 상품의 가치를 인정해서 그만큼 값을 쳐줬고, 직거래로 유통마진을 대폭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인이 운영되는 방식은 독특하다. 사무국은 회원 생산자 및 학교 영양사와 협의해 매매 가격을 정한다. 일반 농산품의 시장가격과 경상남도 친환경 농산물 조사가격 등을 참고한다. 이렇게 결정된 가격은 새로운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유지된다. 특정 작물의 가격이 폭락해도 농가의 소득이 보장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매달 이사회에서 전반적인 상황을 점검한다. 사무국은 매출의 13% 정도를 운영 비용으로 사용한다. 이 액수는 보통 유통을 위해 쓰인다. 사무국에서는 아침마다 차량 두 대가 농산물을 싣고 29개 학교로 이동한다. 전날 사무국으로 모인 농산물은 다듬는 과정을 거친 뒤 배달된다. 그날 배달된 음식 재료는 그날 소비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재료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다른 지역도 참여하면 ‘규모의 경제’

 

아쉬움도 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에는 합천의 무상급식 시장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법인이 학교 수요를 맞추기 위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해야 하는 한계도 있다. 여전히 외부에서 들여오는 품목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법인 대표인 진각 스님(합천군 연호사 주지)은 “대도시나 근처 다른 지역에서도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게 되면 생산 품종도 늘리는 등 친환경 농업도 한 단계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합천군에서 농사를 짓는 강재성씨는 “정부가 1조9천억원의 예산을 무상급식에 투자하면 아이들의 건강에도 도움되고, 거대한 친환경 녹색농업 시장을 만들어 우리 땅도 살리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정부의 친환경 녹색성장 기조에 꼭 맞는 정책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무상급식을 하면 교육 현장에서 급식 비용을 누가 냈느냐를 두고 생기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사라진다”며 “현재 학교 급식 시장에 영세업체를 중심으로 리베이트 등 문제가 많은데, 공공 영역이 이를 책임지면 시장을 투명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허남혁 로컬푸드시스템연구회 간사는 “무상급식과 친환경 농업이 직접적인 논리적 연관성은 없다”고 전제한 뒤,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무상급식을 하면 학교에 급식을 맡길 때보다 아이들 건강을 증진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합천=글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합천군 생산자영농조합법인 대표 진각 스님

“의무교육에선 무상급식”

» 합천군 생산자영농조합법인 대표 진각 스님

경남 합천군 합천읍에 자리잡은 연호사 주지 진각 스님은 이 지역 무상급식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 지역 농민 70여 가구가 결성한 ‘안전한 학교 급식을 위한 합천 생산자영농조합 법인’ 대표를 1년째 맡고 있다. 군청과 교육청, 학교, 농민 사이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합천을 가로질러 흐르는 황강변 연호사에서 4월8일 오후 그를 만났다.

- 법인을 결성하게 된 이유는.

= 많은 농민이 친환경 농업 판로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대규모 유통업체와도 경쟁이 되지 않았다. 생산자 모임을 통해야 생산과 유통을 규모 있게 감당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농민 사이에 있었다. 농민이 주도적으로 나섰고, 내 역할은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 무상급식 1년을 평가하자면.

= 생산자 역할이 눈에 띄게 커졌다. 학교가 적극적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하면서 친환경 농산물 생산자가 활기를 찾게 됐다. 학생·교사·학부모와 생산자가 만족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 한계나 아쉬움은.

= 전국적으로 무상급식이 확대된다면 친환경으로 제공할 수 있는 농산물 품목도 훨씬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아직까지는 법인이 공급할 수 있는 품목에 한계가 있다.

- 무상급식이 필요한 이유는.

= 농촌 지역에서 특히 필요하다. 한부모 가정 학생이 많다. 이런 아이들이 경제적·정서적으로 차별받지 않고 학교를 다니려면 무상급식이 필요하다.

- 학교와 생산자 직거래 방식에서 담합하면 급식의 질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지 않나.

=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생산자가 상업적 동기를 가질 때 그럴 수 있다. 법인의 목표는 생산자에게 정당한 이익을 돌려주고, 아이들에게 유기농 음식을 먹게 하겠다는 것이다. 법인은 이윤이 생기면 지역사회에 환원한다. 그래도 생길 수 있는 담합의 가능성을 막기 위해 매달 이사회를 여는 등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 생산자 외에 나 같은 사람이 법인에 참여하는 것도 이런 취지다.

- 부유층 학생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줘야 하는지에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 기초생활수급권자뿐 아니라 차상위계층 학생도 점심값을 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들을 가려내기 위해 일일이 행정조사를 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고 행정 비용이 소모된다. 의무교육을 하면서 부유층 어린이에게 별도의 수업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밥 먹는 문제에도 보편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