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육 무상화와 무상급식
*** 일본이 새학기부터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고교과정까지 전면적으로 무상의무교육을 시행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서민들에게는 고등학교 수업료도 매우 부담이 된다. 따라서 요즘 이슈화된 무상급식과 아울러 함께 추진해봄직한 일이다.
급식비나 수업료를 제 때에 내지 못해 선생님이나 학교, 동급생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어린 학생들을 생각해보라. 어찌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겠는가?
그런 것을 바라보면서도 수업료나 급식비를 재촉해야 하는 선생님들의 마음 또한 편치않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아이들에게 평등한 교육을 보장해주고 선생님들의 마음의 부담도 덜어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현재 정부와 여당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라면 몰라도 부유한 집 학생들까지 혜택을 줄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그에 상당한 재원은 그만큼 부유한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어들이면 될 것이 아닌가?
어린 학생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지우지 말고, 어른들이 해결해주는 것이 올바른 도리일 것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전문계(실업계) 고교 학생들에게는 무상교육 외에 특별장학금을 지급하여 기술인력 양성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동수당, 학생수당을 주고, 대학등록금까지 무료(또는 거의 무료에 가까운 정도로 저렴한)로 하는 나라들이 있다고 들었다. 심지어는 대학생들의 생활비까지 일정 부분 정부가 보조해주기도 한다.
이제는 우리도 이들을 벤치마킹해서 어린 학생들이 보다 평등한 교육을 받고, 학비(급식비 포함) 걱정없이 공부를 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이제는 무상급식에서 더 나아가 영유아들의 무상보육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 참고로 덴마크의 경우를 보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교육비가 없고, 특히 대학생에게는 생활보조금을 매달 지급한다.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 논란은 일본의 수치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논란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일본 정치인들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보편적 권리로서 교육에 대한 인식 부족은 물론이거니와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여지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고교 교육 무상화 정책은 ‘모든 아동의 평등한 학습권 보장’이란 기치를 내건 하토야마 정권의 핵심 공약으로,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고등학생에게 공립학교 수준의 수업료를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지원 대상에는 재일동포들이 다니는 조선학교처럼 각종학교로 분류된 외국인학교까지 포함돼, 당연히 조선학교도 대상이 되는 것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지난달 나카이 히로시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이 조선학교는 북한 학교라며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선학교를 무상화 대상에 포함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하토야마 총리도 조선학교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고 거들고 나섰다.
외교관계를 이유로 한 학습권 차별 행위는 유엔 차별금지협약 위반이다. 더군다나 조선학교는 일본 식민통치의 유산이다. 해방된 뒤 일본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재일동포들이 독자적인 민족교육을 위해 설립한 학교가 조선학교다.
이들 학교가 북한 쪽과 관계를 맺게 된 데는 민족교육을 외면한 남한 정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 최근에는 북한 쪽의 경제사정 악화로 북한의 지원도 시늉에 그칠 뿐이다. 교육내용 역시 일본 문부성 지침에 따른다. 그런데도 북한 학교 운운하며 지원 거부를 거론하는 것은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책임 회피와 궤를 같이하는 일이다.
조선학교 논란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하토야마 정부의 진전된 주장조차 과연 진실한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우애에 바탕한 동아시아공동체란 하토야마 총리의 꿈이 나라 안팎에서 울림을 가지려면,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수업료 지원은 물론이고 식민지배의 현실적 유산으로 남아있는 재일동포에 대한 각종 차별부터 철폐해야 한다.
<2010. 3. 12 한겨레신문 사설>
조센징에겐 교육비 지원도 아깝다?
- 일 ‘고교 수업료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는 제외 움직임…
- 유엔 차별철폐협약 위배 불구 일본 정부는 궁색한 핑계만
일본에서 이른바 ‘고교 무상화’ 방침은 ‘모든 아동의 평등한 학습권 보장’이라는 교육 이념을 기치로 내세운 하토야마 정권의 핵심 공약으로, 국적에 상관없이 국공립·사립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을 둔 가정에 수업료를 전액 또는 일부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조선학교에 다닐 경우 연간 약 12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조선학교 학부모들은 학비가 경감된다는 이 뉴스를 환영하면서도, 줄곧 조선학교를 차별해온 일본 정부가 과연 이번 정책을 현실화할지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조선학교는 사립학교와 달리 정부 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데다, 다른 외국인학교와 달리 학교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도 적용받지 못하는 차별을 받아왔다.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거의 학부모에 의존해왔고 교사들은 월급을 거르기도 했다. 조선인에게 동화를 강요하는 일본의 자세는 식민지 시대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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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단체 습격 이어 일 각료가 딴죽
아니나 다를까.
지난 2월20일 나카이 히로시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이 올 4월부터 시행하는 고교무상화법안에서 조선학교는 제외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요컨대 일본인 납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조선학교는 북한의 학교라는 주장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은 연일 사실 보도와 함께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우선 외교 문제를 이유로 아동의 학습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국제법에 근거한 비판이다.
또한 ‘조선학교는 곧 북한의 학교’라는 등식화는 조선학교의 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한 일간지는 사설을 통해 나카이 납치문제담당상과 가와바타 다쓰오 문부과학상에게 조선학교 시찰을 권유하기도 했다.
“우리에 대한 일본의 차별 의식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유엔에서도 이번 일을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큰 힘이다. 우익의 습격과 일본 정부의 차별에 맞서 학교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일본이 과거 우리 민족에게 저질렀던 죄를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이런 시대를 후손에게 계속 남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
최근 일본 극우단체의 잇따른 조선학교 습격 사건과 이번 고교무상화법안 사태를 바라보는 한 재일조선인 학부모의 비장한 심정이다.
조선학교의 수난과 긍지의 역사는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자발적으로 생겨난 약 600개의 조선인 학교에서 시작된다. 해방을 맞이한 조선인들은 고향에 돌아간다는 기대 속에서 그동안 빼앗겼던 우리말과 역사, 문화를 아이들에게 되찾아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남과 북의 구분 같은 것은 없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조선인 자녀도 일본 학교에 다니며 일본식 의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그리고 1948년 ‘한신교육투쟁’이 일어났다. 조선인 학교를 모두 폐쇄하라는 명령에 수만 명의 동포가 격렬히 저항한 조선학교 탄압의 상징적 사건이다. 이 와중에 김태일이라는 16살 소년이 일본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남북 분단의 민족적 불행은 재일조선인 사회를 요동치게 했다. 남쪽 독재정권은 이들이 곧 일본인으로 귀화할 것으로 보고 ‘기민정책’을 폈다. 북쪽은 원조금을 보냈다. 조선학교가 북쪽의 영향을 받으며 사상교육을 강조한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조선학교에는 한국적을 포함해 다양한 국적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재일동포는 대부분 조선학교를 나온 사람들이다.
우리말 하는 재일동포, 대부분 조선학교 출신
조선학교는 여전히 미용학원이나 운전학원과 같은 ‘각종 학교’로 분류돼 차별적 취급을 받고 있으나, 일본 정부가 정한 학습지도 요령에 맞춰 수업 커리큘럼을 짜고 학교 인가를 결정하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커리큘럼 등 관련 정보가 공개돼 있다. 또한 일본 국공립 대학 대부분이 조선고급학교 졸업생의 입학을 인정하고 있다.
민족적 차별과 하층민으로서의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만은 떳떳한 조선 사람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동포들의 강한 신념과 교육열이 지금의 조선학교를 있게 했다.
조선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학습이라는 일차적 교육의 차원을 넘어 아직도 과거 식민주의 역사 청산을 꺼리는 일본 땅에서 민족의 긍지를 지키고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분투와 다름없다.
“최근 북-일 관계가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들었다. 외교관계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적 폭언과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어떤 처벌을 하고 있는가?”
필자는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던 지난 2월24~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UNCERD)의 일본 정부 보고 심사회의에 참가했다. 인종차별철폐협약 비준 국가는 원칙적으로 2년마다 보고 의무가 있으나 일본은 9년 만에야 두 번째 심사에 응했다.
위원들은 교육·취업·연금·참정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일조선인이 겪는 정책적·사회적 차별에 대해 추궁했다. 한 위원은 지난번 보고 때에 견줘 전혀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으며, 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조선학교 배제 논란과 관련해서는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27조가 보장하는 마이너리티의 학습권 침해이자, 인종차별철폐협약 5조가 규정하는 학습권의 평등한 보장에 위반된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에 대해 회의에 참석한 문부과학상 관료는 “국회에서의 심의를 지켜보며 신중히 대응하겠다”는 상투적인 답변으로 비껴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 여론의 파장을 의식해서인지 일본 정부는 납치 문제가 이번 문제의 판단 근거는 아니라는 수정된 견해를 피력했고, 대신에 조선학교가 무엇을 가르치는 학교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궁색한 구실을 새롭게 내세우고 있다.
유엔 인종차별위, 학습권 침해 지적했건만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3월 중순께 최종 견해를 발표할 예정이고, 일본 정부는 이에 앞서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번 문제로 16년 만의 비자민당 정권이자 1945년 이후 처음으로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며 정권 교체를 실현한 하토야마 정권의 역사 인식과 인권 수준이 국내외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한겨레 21>
무상급식 논쟁
지난해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추진한 초등학교 무상급식 예산을 경기도 의회가 전액 삭감하는 데서 처음 불붙은 무상급식 논쟁이 점차 가열되고 있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이 무상급식을 하면 ‘부잣집 아이들만 득을 본다’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하더니 최근 한나라당의 정몽준 대표, 안상수 원내대표, 홍준표 의원은 연일 반대에 나서고 있다.
반대 이유는 사회주의, 좌파 포퓰리즘, 예산 부족, 혹은 나라가 거덜나기 때문이란다.
반대파들의 주장은 저소득층 아이들만 무상급식을 하자는 것인데, 이를 가리켜 선별주의라 한다. 그 반대, 즉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하자는 야당의 주장을 보편주의라고 한다.
복지에는 선별주의와 보편주의가 있다. 선별주의는 복지가 덜 발달된 영국, 미국, 일본 등에서 많이 발견된다. 한국은 이 집단의 꽁무니에 위치해 있다. 그 반면 복지가 가장 발달한 북유럽에는 보편주의 복지가 있다.
선별주의는 얼핏 보면 비용이 적게 들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선별주의에는 필연적으로 소득, 재산에 대한 엄격한 조사가 필요하며, 비용이 든다.
뿐만 아니라 이런 조사를 거쳐서 소수의 빈곤층만 복지 혜택을 받게 될 때 대상자들은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낙인효과라 한다.
또한 대상자들은 일을 열심히 할수록 복지수혜가 줄어들므로 오히려 게으름을 조장하는 소위 ‘빈곤의 함정’ 문제도 생긴다. 이런 문제가 없는 이상적 복지제도가 보편주의이며, 복지국가일수록 보편주의가 보급돼 있는 이유를 알 만하다.
이번 논쟁은 우리나라 보수파의 의식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첫째, 그들은 오랫동안 한국이 취해온 인색한 선별주의 복지에 눈과 귀가 익어 더 좋은 세상을 모른다.
둘째, 우리나라 보수파는 너무나 오른쪽 끝으로 편향되어 있어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즉각 좌파, 빨갱이라 공격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이런 공격이 맞을 때보다는 공격자의 무지, 몰인정을 폭로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번 논쟁도 예외가 아니다.
도대체 학교 무상급식에 얼마의 예산이 들기에 나라가 거덜난단 말인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무상급식을 하려면 대략 1조2000억~1조6000억원이 든다. 이는 얼마든지 실현가능한 숫자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부자 감세액이 100조원에 가깝고, 각계의 반대가 많은 4대강 사업만 해도 22조원이 아닌가.
도처에 호화청사는 지으면서, 무상급식은 안 된다는 건 무슨 논리인가?
지금 전국에서 무상급식을 제일 잘하는 지방이 전북, 경남인데, 이들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16개 시도에서 각각 15위, 9위에 불과하다. 재정자립도 1위인 서울은 멀쩡한 보도블록은 노상 교체하면서도 무상급식 예산은 0이다.
문제는 철학이다. 점심시간이면 슬그머니 밖에 나가서 수돗물을 마시는 애들이 아직도 많다. 자라는 애들 가슴에 낙인을 찍는 점심이 아니라 즐거운 연대의 점심이 되게 하는 데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철학이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 >
일 ‘조선학교 제외’ 고교무상화법 통과 | |
- 4월 이후 포함여부 재판단 |
참의원이 19일부터 심의를 시작할 예정인 고교 무상화 법안에는 야당 가운데 공명당과 공산당이 찬성하고 자민당만 반대하고 있어 참의원에서도 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법안이 참의원을 통과하면, 4월부터 공립학교의 고교 수업료가 사실상 면제되고, 사립학교 학생에 대해서는 가계소득에 따라 연 11만8800엔에서 23만7600엔을 지원한다.
그러나 조선학교는 일단 대상에서 제외한 뒤, 교육내용을 검정할 제3기관을 4월에 만들어 일본 고등학교과 유사한 내용을 교육하고 있는지를 보고 대상에 포함시킬지를 판단하기로 결정했다.
하토야마 내각은 “문부과학상 책임 아래 판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등학교 과정 조선학교는 모두 11곳(1곳은 휴교중)이며, 학생수는 2000명 가량이다.
문부과학성은 조선학교 포함 여부 결정시한은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하토야마 정부가 조선학교를 대상에서 제외한 채 결론을 미루고 시간을 끌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일본 교직원노동조합은 15일 임시대회를 열고 “고교 수업료 실질 무상화 법안의 대상에 조선학교를 제외하는 것은 법안의 이념이나 취지에 어긋난다”며 “모두를 대상으로 해야한다”는 내용의 특별결의를 채택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
‘밥의 정치’는 역동적 복지의 시작
<김호기 : 연세대 교수>
세종시 논란에 가렸던 6·2지방선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변화의 핵심에는 무상급식 논쟁이 놓여 있다. 야권은 무상급식을 이번 선거의 핵심 의제로 제시했고, 여권 역시 저소득층을 위한 무상급식안을 제출했다.
무상급식을 일찍이 제안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6일 2110여 단체가 참여한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를 출범시켰다. 이른바 ‘식판 전쟁’, ‘밥의 정치’가 돌연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누구는 무상급식이 사소한 이슈라고 할지도 모른다.
결코 그렇지 않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의료개혁안이나 2009년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의 얀바댐 건설 중단안에서 볼 수 있듯이, 선거에서 쟁점 정책은 중대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얀바댐 건설 백지화는 자민당 장기집권의 기반인 ‘일본열도 개조론’의 전면적 거부이자, 토건국가에서 복지국가로의 대전환을 요구한 것이었다.
무상급식 논쟁에는 세 가지 코드가 담겨 있다.
첫째, 철학적 의미다.
보수세력은 무상급식을 ‘부자급식’,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지만, 현재 시행중인 저소득층 무료급식 지원은 학생들에게 눈칫밥이라는 ‘낙인효과’를 가져옴으로써 인권과 교육권 침해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 헌법 31조는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생이 아침에 교문을 들어서서 오후에 학교를 떠날 때까지 그 모든 게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교육을 단지 지식전달 과정으로만 생각해온 철학의 빈곤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최대 병폐가 아니었던가.
둘째, 경제적 의미다.
바람직한 경제운영의 목표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요청된다. 그 효과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국민 60% 이상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에는 22조의 예산을 투여하면서도 정작 3조의 예산이 요구되는 무상급식에 인색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불어 ‘친환경 직거래 무상급식’은 지역순환경제 활성화는 물론 일자리 창출이라는 또다른 경제적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셋째, 정치적 의미다.
무상급식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는 ‘살림의 정치’다.
뉴타운 개발과 특목고 유치로 대변되는 보수세력의 ‘욕망의 정치’에 맞서서 무상급식은 중산층과 서민의 구체적인 가계 및 생활을 해결하려는 살림의 정치를 목표로 한다. 더욱이 무상급식은 친환경을 지향함으로써 ‘생활로서의 살림’(housekeeping)을 넘어서서 ‘생명으로서의 살림’(living)을 포괄하는 생태정치의 비전을 담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새로운 발전전략에 대한 토론이 진행돼 왔다. 보수세력이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유효성을 강조한다면, 진보개혁세력은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국가비전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화의 충격과 양극화의 심화라는 안팎의 조건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복지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보편적 복지의 강화와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복지의 강화가 그것이다. 무상급식은 바로 전자의 과제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거시적으로 무상급식 논쟁은 우리 민주화가 둘째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권위주의 정치를 넘어서는 게 제1차 민주화의 목표였다면, 국가는 과연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모색하는 게 제2차 민주화의 과제다.
무상급식 논쟁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이제 역동적 복지사회로 가는 문턱에 올라선 셈이다. 더욱 치열하고 생산적인 토론과 논쟁을 기대한다.
무상급식 : 합천군의 성공 사례가 말하는 것
[경향신문]
경남 합천군에선 군내 초·중·고 37개 학교 4700여 학생 전원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한다고 한다.
군 재정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다. 한 해 가용예산이 2800억원이고 재정자립도는 12%에 불과하다.
군수가 사회주의자이거나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이어서도 아니다. 군수는 물론 군의원 10명 가운데 9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중앙 정치판에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해야 하니 마니하며 예산 문제만 놓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지만, 합천군은 고교생까지 부모의 소득을 묻지도 않고 공짜로 밥을 먹인다. 합천군이 무상급식에 예산 문제가 아니라 지역살리기로 접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합천군이 전면 무상급식을 위해 마련한 군 자체 예산은 한 해 17억여원이다. 이 돈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무상급식에 우선순위를 두자 불요불급한 예산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폭 8m짜리 2차선 도로 1㎞를 까는 돈이면 1년 무상급식 예산이 나오더라고 한다.
무상급식은 발상의 전환이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정책 의지의 문제라는 얘기다. 무상급식을 나라 곳간 거덜내는 일이라고 입에 거품을 무는 경제전문가들에 대해 합천군은 코웃음을 친다. 합천군은 무상급식이야말로 지역발전을 위한 경제정책이라는 것이다.
합천군에서 무상급식은 지역경제 선순환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군민이 급식재료를 농약 안 치고 화학비료 안 주고 길러서 판다. 급식 메뉴엔 한우 스테이크도 나온다. 학교엔 장독대도 있다.
친환경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농민이 늘고 소득도 커진다. 합천군이 예산에서 쪼갠 17억여원이 고스란히 지역 농민들에게 돌아간다.
지방경제를 빈곤의 악순환으로 몰아가는 부(富)의 외지 유출이 무상급식으로 차단된다. 이 덕분에 인구감소도 둔화되고 교육 여건도 좋아졌다. 이젠 타군에서 고교생들이 유학을 올 정도라고 한다.
합천군은 무상급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만으로 교육과 복지뿐 아니라 환경과 경제까지 네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정부가 즐겨쓰는 말을 빌리자면 ‘녹색 성장’의 실례로 합천군 무상급식만한 게 없다.
합천군의 사례를 농촌의 일개 지자체의 일로 치부해선 안된다. 무상급식을 놓고 예산타령만 하는 것은 정치적 무능을 보여줄 뿐이다.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정치다. 지방선거를 겨냥해 무상급식에 이념을 덧씌우고 돈 문제만 따지는 행태는 정치가 아니라 정치공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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