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려라

道雨 2010. 6. 11. 18:24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려라

- 1인당 한 달 1만원 더 내면 기업·정부 부담금 합쳐 12조원 추가 확보…
- MRI·틀니 등 적용 대상 확대, 민간 보험 필요 없어져

 

 

 * 한국백혈병환우회,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008년 10월27일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요구는 오는 6월9일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거듭나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국민건강보험료(건보료)를 인상하라!”

 

정부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의 주장이 아니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 준비위원회가 6월9일 발족식을 열어 공개적으로 제기할 이야기다.

시민회의 준비위원회엔 김연명 중앙대 교수,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조국 서울대 교수,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등 진보 인사 3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아까운 ‘내 돈’을 내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내고 있는 건보료를, 그것도 진보 진영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나서서 올리라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이성임(40)씨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다. 2001년 11월 날벼락 같은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부터 시작하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과 달리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골수 이식을 해야 했다. 이씨에게 적합한 골수를 찾기까지는 1년이 걸렸다. 그동안 한 달에 한두 번은 암세포가 얼마나 퍼졌는지 골수 검사를 했는데, 한 번에 40만원이 넘는 검사 비용은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고스란히 이씨가 부담해야 했다.

 

현행 보장률 62%는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쳐

 

2002년 10월 골수이식 수술을 받고 병은 나았지만, 병원비가 문제였다. 총진료비 3300만원 가운데 건강보험 적용을 받은 건 1700만원뿐이었고, 나머지 1600만원은 ‘본인 부담금’이었다. 병을 앓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었던 민간 암보험에선 300여만원밖에 안 나왔다. 결국 전셋집을 줄여 병원비를 냈다.

그래도 지금 그가 기댈 수 있는 건 건강보험뿐이다. 민간 보험은 백혈병 이력 때문에 가입조차 거절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7년 병이 재발해 치료약인 글리벡을 먹고 있는데, 건강보험에서 한 달 약값 280만원의 95%를 지급하기 때문에 이씨는 14만원만 내면 된다. 이씨는 “건강보험 재정이 계속 부족하다는데, 글리벡이 언제 비급여가 될지 몰라 불안하다”고 한다. 비급여 항목이 되면,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가 100% 돈을 내야 한다.

 

이씨의 사례는 의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을 적용해 건보공단이 돈을 내는 폭, 즉 건강보험 보장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시민회의 준비위원회의 문제의식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6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83.5%)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를 끌어올리려면 당연히 돈이 든다. 올해 건보공단 재정 36조2천억원을 기준으로 할 때, 건강보험 적용률을 OECD 회원국 평균치까지 확대하려면 12조4천억원이 더 필요하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건보료를 올리면 된다. ‘허무개그’로 느껴질 수 있다. 서민·중산층의 허리를 더욱 휘게 하려는 것이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건보 재정 구조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건보 재정은 △직장 가입자 △기업 △지역 가입자 등이 내는 건보료와 정부 지원금으로 구성된다. 직장·지역 가입자는 소득의 5.33%를 건보료로 내고, 기업은 임직원이 내는 건보료 총액만큼을 부담한다. 정부는 이 세 건보료 총액의 20%를 지원금으로 건보공단에 준다. 직장·지역 가입자의 건보료를 올리면, 기업과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건보 재정도 덩달아 올라가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건보료 인상 주장의 ‘비밀’이 숨어 있다.

 

 

 

100원당 건강보험 240원, 민간보험 75원의 혜택

 

건보료를 소득의 7.13%로 올리면 가입자가 내는 돈은 6조2천억원 더 늘어난다. 이 가운데 직장 가입자가 약 58%(3조6천억원)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기업도 3조6천억원의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국고지원금은 2조7천억원 더 늘어난다. 전체 건보 재정 12조5천억원이 추가로 확보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 적용률을 80%대 중반까지 대폭 확대할 수 있다. △MRI·초음파·선택진료비 등 주요 비급여 항목 △간병인 서비스 △노인 틀니·치석 제거 등까지 건강보험을 확대 적용하고, 기존 급여 항목에서도 본인 부담률을 대폭 낮출 수 있다.

또한 연간 의료비 본인 부담액이 100만원을 넘으면 100만원을 초과하는 비용은 모두 건강보험이 부담할 수 있게 된다.

‘꿈’처럼 들리지만 실은 OECD 국가의 평균적인 의료보장 수준을 우리 국민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누리기 위해 개인이 매달 더 내야 하는 건보료는 평균 1만1천원에 불과하다.

 

물론 그 돈도 벅찰 수 있다. 시민회의 준비위원회는 최하위 소득 5%의 건보료를 전액 면제하고, 하위 소득 구간 5~15%에 해당하는 사람에겐 정부가 건보료를 대출해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 15%는 상대 빈곤층까지 포함한 우리나라 전체 빈곤층 비율과 같다. 현재 최하위 3%에 그치는 건보료 지원 대상을 빈곤층 전체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준비위원회는 건보료 면제에 필요한 3500억원, 대출에 드는 1조7100억원은 추가로 확보한 건보 재정 12조5천억원으로 충당하면 된다고 본다.

 

평소 병원에 잘 가지 않기 때문에 건보료를 더 내더라도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확대되면 별도의 민간 의료보험에 굳이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가계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3월 발표한 ‘보험소비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개인별로는 성인의 69.8%, 가구별로는 전체 가구의 81.4%가 민간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온다.

2008년 1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한 ‘국민건강보험과 개인의료보험의 역할에 관한 연구’는 민간 보험 가입자가 내는 월평균 보험료가 10만원이 넘는다고 밝혔다. 당시 기준으로 1인당 월평균 건보료 3만2천원의 세 배가 넘는 액수다.

건보료보다 많은 돈을 내지만, 민간 보험에서 전체 가입자가 돌려받을 수 있는 혜택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총 보험료의 70%대 중반 수준이다. 쉽게 말해 국민건강보험에 100원을 내면 기업과 정부 부담을 포함해 240원이 되지만, 민간 보험에 같은 돈을 내면 75원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다수 국민이 언제 큰 병에 걸려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민간 보험에 들고 있지만, 실은 자신이 낸 보험료도 다 되돌려받지 못한 채 보험사의 영리 추구 활동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돈 낼 테니 복지를 달라” 시민운동 점화

 

시민회의는 6월9일 준비위원회를 발족한 뒤 시민 발기인 1천여 명을 모집해 7월14일 본격적으로 시민회의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이후엔 온·오프라인 광고, 언론 홍보, 시민설명회, 제주 올레 걷기 등을 통해 시민회의를 알리는 한편, 회원을 모집해 서명을 받는다. 시민이 주도하는 풀뿌리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를 내년도 건강보험료율 등을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전달한다. 올해 당장 이런 요구가 수용될 것이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시민회의는 이 운동을 ‘될 때까지’ 계속한다는 각오다. 경우에 따라선 2012년 대선에 나서는 이들에게 공약으로 요구해 더 큰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 수도 있다.

시민회의 준비위원회 공동 집행위원장인 이상이 제주대 교수(의료관리학)는 “보편적 복지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능력에 따라 비용을 부담하고, 필요에 따라 혜택을 누리는 것”이라며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의료 분야에서 이 보편적 복지를 완성해보자는 시도”라고 말했다.

그는 “평범한 시민이 주체가 돼 ‘돈 낼 테니 복지를 달라’고 요구하는 이 운동이 성공하면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보육, 교육, 노후소득, 주거 등 서민·중산층이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양극화 시대의 ‘불안’을 보편적 복지로 해소하자는 시민정치운동이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

 

 

 

 

            건보 강화해 모든 치료비 감당하게 하자
민간의보 확대땐 저소득층 불리
진료량 따른 수가지급제 바꾸고
총액예산제·주치의제 도입해야
사회복지세 신설 재정확충 가능
한겨레
» 연도별 건강보험 보험급여비 지출 추이
[싱크탱크 맞대면]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어떻게

우리나라 건강보험 지출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의 방향은 건강보험 규모를 줄이는 데 있지 않고, 현재보다 더욱 확대하는 쪽으로 두어야 한다.

2000년 7월1일, 전국적으로 수백개로 나뉘어 있던 건강보험이 통합하여 새롭게 출범했다. 건강보험 통합은 전국적으로 단일한 운영체계를 갖추어 재정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보장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등 건강보험 제도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는 전세계적으로 효율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또다른 어두운 모습이 있다. 건강보험 보장수준이 62%에 불과해 여전히 환자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너무 많다. 이러다보니 가난한 사람들은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계속되고 있다. 2008년의 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2%는 치료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 특히 건강보험 가입자 중에서 최저소득층의 경우 무려 26.9%나 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효율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도 있다. 자기공명영상진단(MRI), 양전자방사단층조영(PET)과 같은 첨단 진단장비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두번째로 많이 보유한 국가가 됐다. 수도권의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치료병상은 경쟁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건강보험 재정지출의 낭비적 요인을 키우고 있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과연 10년 뒤에도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가 효율적인 제도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건강보험 제도는 현재에 안주해서는 안 되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개혁을 추진해야만 한다.

개혁의 방향은 건강보험 규모를 줄이는 데 있지 않고, 현재보다 더욱 확대하는 쪽으로 두어야 한다. 노인인구는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의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치료 포기’가 나오지 않도록 건강보험 보장수준도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건강보험 재정은 더 커져야 한다.

문제가 있다. 수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지출구조 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지출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05~2009년 사이 연평균 13%씩 늘어나고 있다. 다른 산업분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속도이다.



최근 연세대 정형선 교수가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의사의 진료량’이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를 더 많이 병원에 오게 하고, 서비스나 치료항목을 늘리면 병원과 의사의 수입은 더 늘어나는 이른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건강보험 보장수준은 개선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 건강보험과 민간보험 비교
건강보험 재정을 좀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제도로 개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총액예산제’와 ‘주치의제’가 가장 먼저 추천되고 있다. 1년 동안 우리 국민이 의료이용을 해서 발생하는 전체 의료비를 병원이나 의사, 약국에 예산으로 할당해 운영하는 ‘총액예산제’는 이미 우리 사회에 익숙한 방식이다. 정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조직에서 이처럼 예산을 세워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모든 국민에 대하여 주치의를 정해두는 제도는 일상적으로 건강관리를 하도록 하고, 질병을 예방하며, 적절한 치료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비용에 비해 매우 효과적인 제도로 평가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이 무한정 늘어날 수 없다면, 재정을 좀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싫다고 회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셈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료는 직장인을 기준으로 할 때 수입의 5.33% 정도이다. 의료복지 선진국에서는 최저 8~9% 수준인 점과 비교한다면 낮은 수준이다. 이런 점에서 보험료는 인상될 여지가 있으며, 주요하게 고려할 수입확대 방안임은 틀림없다.

다른 방안들도 있다. 얼마 전 진보신당의 조승수 의원이 발의한 ‘사회복지세’ 도입도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으며,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 부담분을 현재의 20%에서 더 늘려가는 방안도 있다. 이처럼 ‘조세 방식’을 활용하는 것은 노동시장이 불안정하고 노인인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술·담배 등에 세금을 붙여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고, 환경을 파괴하는 대규모 토건사업을 멈추고 그 예산을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이런 수입확대 방안은 어떤 것 하나를 취사선택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몇개의 정책이 적절한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일부 시장주의자들은 건강보험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하여 국민건강보험을 현재의 규모로 놔두고 민간의료보험을 확대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저소득층이 보험 가입에 불리할 뿐만 아니라 민간보험 가입에 따른 차별과 의료비가 비싸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이미 ‘식코’(Sicko)의 나라 미국을 통해 알려져 있다.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뿐더러 대안을 위한 제대로 된 논의도 아니다. 질병과 치료로 인한 경제적 위험에서 보호받고자 하는 건강보험 제도의 취지와 목적을 실현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 오로지 ‘제도’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건강보험을 축소하려는 논의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논의인 것이다. 따라서 민간의료보험을 비롯한 영리화·시장화를 통해 해결할 것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을 더욱 튼튼히 하여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치료비를 담당할 수 있도록 개혁의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

문제는 어떤 계기로 이와 같은 개혁의 판을 만드는가이다. 최근 보험료를 올려 보장수준을 높이자는 시민운동도 이런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료계 또한 자신의 입장을 중심으로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논의의 판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판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이처럼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계기는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입장과 태도이다. 이익이 극대화되는 방향 이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경직된 자세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건강보험 혜택이 늘어난다면 건강보험료를 더 낼 용의가 있다’는 시민운동도 나온 마당에 좀더 전향적인 자세로 나와야 한다. 통합건강보험 10년, 이제 발전을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김창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