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는 최근 제 기능을 못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지만 이 문제만큼은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방통심의위는 그동안 스스로를 민간 기구라고 주장해왔다. 행정기관이라고 인정하면 ‘정부가 인터넷을 검열한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권위는 방통심의위가 행정기관이라고 못박았다. 또 시정을 거부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대신 행정명령을 할 수 있고 이마저 어기면 형사처벌도 가능하기에, 시정 요구는 행정명령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방통심의위의 성격은 구성과 운영 측면에서 봐도 명백하다. 심의위원은 국회 추천 등을 통해 대통령이 위촉하고 경비는 국가로부터 보조받는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며 막강한 권한까지 휘두르는 민간 기구는 어디에도 없다.
인터넷 심의 과정과 절차도 문제가 많다. 방통심의위는 게시물 삭제 등 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게시물을 쓴 당사자가 아니라 게시물을 관리하는 사업자 등한테 시정을 요구한다. 당사자는 사전에 의견을 제시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게시물이 삭제된 뒤에야 삭제 사실을 알 수 있다. 최소한의 항변 기회조차 주지 않는 일방적인 조처인 것이다.
구체적인 심의 활동을 따져보면, 방통심의위가 정부의 인터넷 검열을 대신한다는 의구심은 더 커진다. 지난해 심의 신청의 44.4%는 공공기관이 제출한 것이고, 신청 사유를 보면 전체의 23.2%가 ‘사회질서 위반’이었다. 이는 ‘사행심 조장’에 이어 둘째로 많다. 게다가 포털 등 사업자들은 시정 요구를 거의 군말 없이 따르고 있다.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심의는 당장 폐지돼야 한다. 심의를 폐지하면 악성 댓글 같은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할지 모르지만, 포털 사업자 등 민간 기구가 자율적 기준에 따라 처리하면 충분하다. 또 위법적인 게시물은 법에 따라 조처하면 된다. 악성 게시물도 허용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정부의 검열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인권위 권고 따라 방통심의위 ‘인터넷 심의’ 폐지해야
<한겨레 2010. 10. 20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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