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이념적 소비, 착한 소비?

道雨 2010. 9. 27. 12:02

 

 

       “이념적 소비?”

          -국가와 시민이 정용진에게 답하라

1965년 부산 생.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로스쿨 졸업(법학박사). 울산대 및 동국대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역임.
현재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및 국가인권위원.
국문학술서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형사법의 성편향』,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등을 저술했고, 영문학술서로 『Litigation in Korea』를 책임 편집했으며, 역서로 『인권의 좌표』를, 시론집으로 『성찰하는 진보』,『보노보 찬가』를 발간했다.
 

‘파워 트위테리안’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개인적 관심이나 회사경영 전략 등을 수시로 트위터에 올리며 수많은 ‘팔로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필자는 젊은 CEO의 이러한 ‘소통경영’의 모습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최근 트위터상 ‘이마트 피자’를 둘러싼 정 부회장을 발언을 두고 논쟁이 벌여져 화제를 모았다.

 

 

‘이마트 피자’ 설전

이마트가 시중의 피자보다 크기는 크면서 가격은 저렴한 즉석 피자를 판매하여 폭발적 매출을 올리는데 대하여, 네티즌들이 이러한 행위는 중소 피자가게의 몰락을 초래한다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 비판을 제기하자, 이 ‘시장 강자’는 냉정하게 반박했다.

즉,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나? 많은 분들이 재래시장 이용하면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되고 어차피 고객의 선택이다.” “님이 걱정하는 만큼 재래시장은 님을 걱정할까요?”라는 조소와 함께.

 

이마트는 롯데슈퍼나 홈플러스처럼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을 직접 벌이지는 않고 있다. 대신 이마트는 동네상점에 물품을 공급하는 도매유통업에 진출하고, 이마트 내에서 판매 품목을 확장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사회적 쟁점이 된 SSM 문제에 직접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실속은 SSM 진출 대기업과 똑같이 챙기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정 부회장의 트위터 답변은 대기업과 중소상인과의 관계에 대한 대표적 대기업 CEO의 직설적 반응이었기에 대응이 필요하다.

 

먼저 중소상인의 생태계를 살리는 윤리경영을 하라는 호소는 정 부회장에게 먹히지 않을 것 같다.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나온 정 부회장이 ‘대기업 프렌드리’가 제도적으로 고착화된 현재의 경제 질서 속에서는 대기업과 중소상인 사이에 공정경쟁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이 때 소비자의 선택은 사실상 시장 강자에 의해 조종된다는 점을 모를 리 없다.

그가 현행법상 허용되는 이윤추구를 그만 둘리도 없다. 이제 공은 국가와 시민에게 와있다.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이다”

 

정 부회장이 ‘이념’을 말하니 헌법의 경제이념부터 보자.

헌법 제119조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헌법은 자유경쟁의 이름 아래 시장 약자를 몰락시키는 경제질서를 상정하지 않는다.

일찍이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이다”라고 갈파하였다. 사자와 소를 한 울타리에 넣어 놓고 자유롭게 경쟁하라고 하는 것은 사자보고 소를 잡아먹으라는 얘기와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칸막이를 만드는 국가의 역할이 긴요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칸막이를 만드는 시늉만 하고 있다. 예컨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전국적으로 급증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청을 통한 사업조정권고는 1년에 5건 정도만 이루어지고 있다.

6.2 지방선거를 앞 둔 지난 4월, 재래시장의 경계로부터 500m 이내는 SSM 입점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대기업 직영 SSM과 프랜차이즈형 체인점포를 사업조정대상에 포함시키는 대중소기업상생촉진법 개정안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선거 후 한나라당은 입장을 바꾸어 대중소기업상생촉진법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 당내에서 SSM 규제시 WTO 제소가 우려된다 또는 FTA 체결에 지장을 준다 등의 주장이 나온다.

도대체 어떠한 법적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미 OECD 다수 국가는 지자체 조례를 통하여 중소상인의 매출영향 평가, 지역 주민의 동의를 대형 상가점포 신설의 조건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생각건대, 헌법 경제조항의 이념이 구현되려면, SSM 규제 법률을 반대하는 정치인 낙선 운동을 벌이는 등 주권자 시민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념적 소비’, ‘착한 소비’를 하자

 

한편 시민은 정 부회장이 비웃는 ‘이념적 소비’를 보란 듯이 실천해야 한다. 

가격과 편리함만을 기준으로 구매를 판단하는 소비행태에서 한 걸음을 벗어나 보자. 시민은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대기업이 ‘문어발’을 뻗으면 화를 내면서, 다른 분야에 진출한 대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는 “싸고 질 좋다”며 애용하는 모순을 종종 드러낸다.

 

시민이 재래시장, 동네 상점, 동네 카페, 지역생산자조합이 만든 ‘로컬 푸드’ 등을 외면하고, 대기업 백화점, SSM, 대기업 소유 프랜차이즈 카페, 대기업 생산 음식 등을 향해서만 달려갈 경우 그 결과는 무엇일까(참조로 신세계는 스타벅스 코리아 지분의 50%를 갖고 있다).

대기업은 영역확장을 위한 ‘무한도전’을 계속할 것이고, 자본력과 유통망에서 비교할 수 없는 중소상인과 생산자조합은 계속 몰락할 것이다. 시민 사이의 ‘연대’는 붕괴하고 시장 강자에 대한 자발적 복종만이 남을 것이다. ‘소비자 주권’은 사라지고 시장 강자의 군림만이 남을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구조조정의 여파로 2010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전체 인구 대비 자영업자의 비율은 25%를 넘는다. 이 수치는 다른 OECD 나라의 약 10%에 비하여 매우 높다.

주변을 둘러보면 저금과 퇴직금을 가지고 자영업에 나섰다가 다 날리고 가족 전체가 무너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시민은 눈물을 머금고 가게 문 닫는 이웃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미래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실 첨단 기술제품도 아닌 피자, 어묵, 떡볶이, 순대, 튀김까지 대기업의 것을 소비할 필요성이 어디 있는가.

정 부회장은 조소했지만, 시민은 위세부리는 이익과 힘의 논리 앞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배려해야 한다. 정 부회장의 말대로 재래시장이 소비자를 걱정하지는 않을 지 모르지만, 이마트처럼 위세를 부리지는 않는다.

 

가격과 편리함을 유일 잣대로 사용하지 않는 ‘착한 소비’, 공정과 연대의 가치, 인간의 체온이 스며든 소비가 필요한 시간이다. 

게다가 정 부회장도 당당히 재래시장을 이용하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의 말대로 하자. 보란 듯이!

 

 

“문둥이 콧구멍의 마늘 빼먹을 놈아!”

 

오래 전 돌아가신 할머니는 야박하게 이익을 챙기고 돈을 밝히는 사람을 보시면 경상도 사투리로, “에라이, 문둥이 콧구멍의 마늘 빼먹을 놈아!”이라고 쏘아주셨다. 

자본은 그 본성상, 한센병 환자가 치료를 소망하며 콧구멍에 넣어 놓은 마늘까지 빼먹는다. 

 

국가의 개입과 시민의 각성이 없을 때 자본은 고삐풀린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시민이 주권자로서 헌법의 경제이념을 구현하는 법규 제정을 국가에 요구하고 동시에 ‘이념적 소비’를 실천할 때, 정용진은 피자팔기를 그만둘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2010.09.27)에 게재된 시론의 원본이다.

 

 

 

 

 

 

          ‘착한 소비’와 진보정치
» 김규항〈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소비를 이념으로 하는가”라는 정용진씨의 방자한 말에 대해 몇몇 지식인들의 비판과 논평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서울대 교수 조국씨가 <한겨레>에 쓴 ‘국가와 시민이 정용진에게 답하라’라는 글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중앙 일간지에서 ‘국가와 시민이 자본을 견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보는 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글은 정용진에 대한 ‘정서적 응징’으로 그쳐버린 느낌이다.
 
우선, 조국씨는 국가의 역할을 말하면서 시장 자유를 무작정 옹호하는 이명박 정권을 비판한다. 그러나 지금 그 정권과 대립하는 민주당이나 참여당 역시 시장자유 옹호자들이라는 더 중요한 사실은 생략한다.

 

자본주의 사회엔 두 가지 자유가 있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유.

전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후자는 많을수록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지옥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통해 대통령을 ‘쥐’라고 골려도 잡혀죽지 않게 되었지만, 무한정한 시장의 자유를 통해 자본의 천국(속칭 ‘삼성공화국’)에서 살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라 부르는, 무한정한 시장의 자유를 본격화하고 구조화한 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자본에 대한 국가의 견제’를 말하는 건 기만이 된다.

 

 

조국씨는 또한 시민의 역할을 말하면서 ‘가격과 편리함을 유일 잣대로 삼지 않는 착한 소비’를 촉구한다. 좋은 말이고 얼마간의 실효성도 있겠지만 먼저 세 정권 내내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 사람들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살펴야 한다.

진보적인 사람들조차도 아이를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키우는 재난영화적 현실에서 ‘착한 소비 캠페인’은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생존 자체가 숙제인 비정규 노동자들이 ‘착한 소비’를 촉구받는 건 공정한 일일까?

 

 

시민에게 촉구해야 할 것은 ‘착한 소비’가 아니라 ‘시장 자유에 대한 경계심’이다.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이명박과 싸우듯, 나는 물론 내 아이들이 영원히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게 하려면 민주당이나 참여당 같은 또다른 시장자유 옹호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촉구하는 것이다.

정치가 우리 삶에 눈곱만큼이라도 소용이 닿으려면 이런저런 시장자유 옹호자들에 대한 헛된 기대를 접고 진보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진보정치가 세력이 미미하지 않으냐고?

그게 바로 자본의 체제가 우리를 쳇바퀴 속의 다람쥐로 만들기 위해 심어준 어리석은 생각이다. 정용진의 방자한 말에 반감을 느끼면서, 눈은 여전히 유시민의 ‘노무현 정신 계승’과 문성근의 ‘국민의 명령’에 가 있게 만드는 어리석음 말이다.

진보정치가 세력이 미미해서 지지할 가치가 적은가, 마땅히 지지할 사람들부터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세력이 미미한가?

진보정치의 세력과 가치는 남이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주권을 가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제아무리 시민이 각성한다 해도, 지금처럼 진보정당들이 만날 이명박 반대만 외치며 ‘이명박 프레임’ 안에서 맴돈다면 다 소용없는 일일 게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이제라도 정신줄 바짝 잡고 자신들이 민주당이나 참여당과 뭐가 다른지, 시장 자유에 맞서는 진보정치가 뭔지 시민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마트 피자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착한 사람들에게, 세상엔 프랑스처럼 대형마트는 아예 시내에 못 들어오게 하는 정치도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차근차근.

 

 

<김규항〈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