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거대한 세 개의 나침반

道雨 2010. 12. 8. 16:43

 

 

 

          거대한 세 개의 나침반

 

 

자전거는 멈춰 서 있었다. 향리로 내려간 노무현이 타던 자전거는 전시 유리판 너머에서 약간 왼쪽으로 방향을 튼 채 방문객들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었다. 아직 바퀴고무도 다 닳지 않은지라 끄집어내서 페달을 밟으면 달려 나갈 듯했다.

자전거는 멈추면 넘어진다. 민주 또한 마찬가지다.

까마귀도 울고 가는 헐벗은 동네에서 태어난 그는 세상을 배불리고자 만들어가던 방앗간이 문을 여는 걸 보지 못했다.

 

 

읽던 책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주사기, 그리고 익지 않은 모과를 마당에 둔 채 김대중은 돌아갔다.

거실에는 동네 목욕탕에서 쓰는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쟁반을 놓고 김대중, 이희호 두 사람은 커피를 마셨다.

의자 옆 쌀바가지에는 방금인 듯 손자국이 선명했다. 마당에 찾아오는 새들에게 뿌려주던 공생의 식량이다.

 

 

리영희는 짬을 내 나무걸상을 만들곤 했다.

손과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스스로를 한량없이 부끄럽게 여겼다. 딸에게 스케이트 날을 가는 숫돌 틀을 만들어주던 그다.

신문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쫓겨난 신산스런 세월에 월부책장수로 살아가던 지성의 스승이 쓴 책 뒤에는 한결같이 ‘비매품’이란 딱지가 붙어 있었다. 판금된 정의를 그나마 돌려 읽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는 병들 무렵에야 따뜻한 물이 나오는 집에 살면서도 늘 따뜻함에 감사해했다.

 

 

온몸으로 시대 양심을 살던 세 사람은 그 퇴행을 꾸짖다가 한날한시인 듯 떠나갔다.

이제 누가 그 페달을 돌릴 것인가.

누가 다시 새를 부를 것인가.

누가 진실과 정의가 와서 앉을 의자를 새로 만들 것인가.

 

 

자석이 가리키는 방향(자북)으로만 가면 진짜 극점에 도달할 수 없다. 지도에 나온 표시(도북)대로만 따라가면 참된 정의에 발 디딜 수 없다.

스스로 나침반이 되어 행동과 실천으로 수정해나가야만 거기(진북) 이를 수 있다는 걸 세 사람은 증거한다.

 

제 가슴에 나침반이 아직 없거나 벌써 망가졌다면, 오늘 나침반 하나씩을 품에 들이자.

 

우리가 나침반이 되자.

 

<서해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