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국회의원의 ‘인권’과 개그맨의 ‘표현의 자유’

道雨 2010. 12. 13. 12:05

 

 

 

국회의원의 ‘인권’과 개그맨의 ‘표현의 자유’

 
 
법원공무원으로, 2005년부터 인터넷신문과 블로그 등에 법조 관련 글을 써오고 있다. 언론에서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판결에 대한 분석, 판사 인터뷰, 사법 개혁과 관련된 글을 주로 발표했다. 어렵고 딱딱한 법률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글쓰기 능력으로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2010년 1월 <생활법률상식사전>(위즈덤하우스)을 펴냈으며 현재 일반 시민들을 위한 두 번째 법률서적을 준비중이다.[페이스북, 트위터, 전자우편(야후)은 jundorapa)

                                                                                                  김 용 국

 

 

 

 

개그맨 노정렬씨가 엊그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죄명은 모욕죄.

지난 5월 한 행사에서 조전혁 의원을 풍자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조 의원은 전교조 명단 공개를 강행하면서 여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서울남부지법은 노씨의 발언 중에서 “훼손될 명예가 있는 사람에게 명예훼손이 되는 거지 짐승한테는 안됩니다”라는 부분이 조 의원을 동물에 빗대어 비하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법원은 “일부 발언이 정당한 비판이나 풍자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 조의원을 모욕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개그맨은 풍자로 먹고 사는 사람이고 공인에 대한 풍자는 언론(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노씨의 주장이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대신 이렇게 답변했다.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자연인으로서 인격권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노씨의 발언은 공인이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섰다.’ 

 

 

형법에서 모욕이란 ‘추상적 판단이나 욕설 등 경멸적 표현으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구체적인 사실 적시를 수단으로 하는 명예훼손과는 구별된다).

사람을 모욕했다고 해서 전부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했더라도 그것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고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을 때’는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이런 잣대로 보면 정치인 등 공인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하는 과정에서 다소 모욕적인 표현을 썼다면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이 사건에서는 노씨의 개그가 ‘정당한 비판’을 넘어선 모욕이 된다고 본 셈이다.   

 

이 사건은 2심, 3심을 통해 공인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어디까지인를 둘러싸고 법정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서 1심 판결에 대한 당부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인에 대한 비판, 공적인 관심사에 대한 비판은 폭넓게 인정되는 추세이고 보면, 모욕이나 명예훼손의 적용도 더 엄격할 필요가 있다는 점만은 지적하고 싶다.

 

 

문득 2008년 신지호 의원(한나라당)의 사례가 생각난다.

그해 9월 그는 고교 역사교과서 수정 논란을 다룬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신 의원은 토론에서 모 교과서의 ‘좌편향’을 지적하며 교과서 도입부에 실린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를 문제삼기도 했다. 이날 신의원의 언행은 많은 네티즌들 사이에 논란을 불렀다.

 

이 토론회를 지켜본 한 교사는 신 의원의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올렸다.

그는 ‘신지호 의원! 껍데기는 누구? 신지*? 억울하세요?’ ‘뇌와 귀없이 입만 가지고 토론에 임하는 신지호!’ 등의 제목으로 신 의원이 토론에서 보여준 언행에 대해 비판하였다. 그는 8차례에 걸쳐 글을 올렸고 신 의원은 이 글들이 자신을 모욕했다고 판단하여 그를 고소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는데 무죄가 확정되는 바람에 신 의원은 체면을 구겼다. 작년 이 사건의 항소심인 서울북부지법은 판결을 통해 의미심장한 지적을 했다.

 

 

-국회의원은 헌법상 부여된 지위에 비추어 국가적 사회적 영향력이 막중하므로 언행, 능력, 도덕성 등 자질에 대한 비판의 자유가 보장될 필요가 있다.

-정치인이나 정치적 활동에 대한 비판의 경우 비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다소 풍자적인 표현이나 희화적인 표현이 흔히 사용되는 것이어서 그러한 속성을 어느 정도 감안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판결 내용을 따지기 전에 살펴볼 게 있다. 나랏일에 바쁜 국회의원이 수사기관에 권리구제를 호소하는 일은 바람직한가.

일개 개그맨의 발언에 대해 고소장을 접수하고, 법정에서 유무죄를 따지는 현실이 왠지 달갑지는 않다. 여론에서 절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이 자기를 비판하는 일개 국민을 고소하는 것은 어쩐지 격에 맞지 않다. 뭐, 그것도 국회의원으로서 권리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모욕죄는 친고죄이다. 즉 피해자가 문제 삼지 않는다면 수사를 하거나 재판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회의원들이 일반인들의 말과 글을 상대로 한 고소를 자제하는 아량을 베풀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공인이란 대신 욕먹어주는 존재 아닌가.

그렇잖아도 웃을 일 없는 세상, 남 웃기는 일을 업으로 삼는 개그맨을 법정에 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나만의 생각인가.

국회의원은 ‘자연인’이기도 하지만 헌법에서 인정하는 권력기관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이 말 몇마디로 글 몇줄로 흔들릴만큼 허약하지는 않으니까.

 

 

이 사건과 직접 관계는 없지만, 최근 인터넷상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이 늘고 있다.

인터넷상의 장점 중 하나가 자유로운 비판과 수평적인 토론문화이다. 여론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네티즌들이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방법이 댓글이나 블로그, 그밖의 ‘소셜미디어’다. 일반인들이 주류 언론에 접근이 쉬운 소수자에 맞서 여론의 균형을 갖추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론에서 우위를 점하는 있는 이들이 자기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의견이나 비판, 풍자를 가로막는 수단으로 쉽사리 형사처벌을 떠올리지는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국회의원의 인권, 물론 중요하다. 공인도 인격이 있고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관심사에 대한 논쟁과 토론 과정에서 나온 거친 말과 글은 판결로 결판을 내기보다 그에 대응하는 말과 글로 맞서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국회의원의 ‘인권’과 개그맨의 ‘표현의 자유’ 사이의 조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국회의원 개인의 인권을 강조할수록 표현의 자유는 영역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개그맨이 형사 처벌을 각오하고 정치인 풍자를 해야 하는 세상, 어쩐지 슬퍼보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