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제국의 전사’가 '평화의 기수' 된 까닭은

道雨 2010. 12. 11. 13:00

 

 

 

    ‘제국의 전사’가 '평화의 기수' 된 까닭은
 
» 한승동의 동서횡단

 

 

아프간 탈레반은 빌 클린턴 정권 때 바쿠 등 카스피해 유전지대 석유들을 걸프만 쪽으로 빼내는 아프간 통과 송유관을 건설하기 위해 미국이 만들고 키운 조직이다.

아프간 안정을 앞세운 미국의 진짜 목적은 캘리포니아 유니언석유회사(유노칼)의 이익 확보였던 셈이다.

 

그러면, 서방 석유업체의 이익을 위해 이번엔 탈레반을 잔학무비의 반군집단으로 몰아 아프간을 침공한 미군에, 취업 또는 대학 등록금 때문에 입대한 숱한 병사들은 무엇인가?

“용병”이라고 잘라말한 사람은 미국 정치학자 찰머스 존슨이다.

그렇다면 미국 때문에 아무런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아프간에 파병당하는 한국군 병사들은 뭐가 되나?

 

 

캘리포니아대 정치학 교수 존슨은 원래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제정세 분석 자문관 노릇도 한 자칭 “냉전의 전사”였다.

그런 그가 만년에 미국을 제국주의국가규정하고 전면적인 비판을 감행한다. “제국의 기수”였던 그가 반제반전 평화의 기수가 된 것이다.

이 극적인 전환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존슨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건 만년의 저작들이다. <오키나와-냉전의 섬>(1999), <역풍-미 제국이 치른 비용과 그 귀결>(2000), <제국의 슬픔-군국주의, 비밀주의, 공화국의 종말>(2004), <네메시스-공화국 미국 최후의 날들>(2006) 등인데, 특히 ‘역풍 3부작’이라 불린 뒤의 3권이다.

 

존슨을 돌아버리게 만든 건 냉전붕괴 뒤 군비해체가 아니라 오히려 군비강화로 치달리면서 자신들의 경제·정치적 욕구를 군국주의·비밀주의를 통해 달성하려 한 미국 지배세력의 제국주의적 야심과 그로 인한 비극, 그리고 1995년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원들의 12살 소녀 집단성폭행 사건 현지조사를 통해 깨달은 미 군사기지의 무참한 본질이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미국은 제국이되 영토적 식민지로 유지되는 전통적 제국이 아니라 해외 군사기지를 통해 지배하는 새로운 형태의 ‘군사기지 제국’이다.

전세계 737개(또는 1천여개)에 이르는 미군기지 설치 지역·국가는 사실상 미국 식민지다. 미군기지 사령관들은 로마 공화정 말기 이후의 지방총독과 같다. <진실에 눈을 뜨다>(이마고)에도 잘 요약돼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태가 이런 현실과 무관할까?

 

책 제목의 역풍(blowback)이나 네메시스(nemesis)란 말은 보복, 복수, 천벌의 의미다.

이는 미국이 자행한 범죄행각 때문에 보복당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 보복이 또다른 보복을 낳는 보복의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 그런 가운데 미국 자체가 민주주의 핵심가치들을 부정하는 군국주의·비밀주의로 자유 없는 군사 또는 민간 독재체제로 전락하면서 활력을 잠식당한 채 재정파산, 경제파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최근 세계를 들쑤시면서 보복의 연쇄를 부른 위키리크스 파문은 공화국 미국의 몰락과 제국의 파산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구원의 해법은 ‘제국의 해체’라고 존슨은 단언한다.

 

1931년생인 존슨이 2010년 11월20일 타계했다.

보름 뒤인 12월5일엔 군사기지 제국의 본질을 알리고 그 제국주의에 빌붙은 무리들과의 싸움에 평생을 바친, 1929년생 리영희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