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부끄러움

道雨 2010. 12. 17. 12:17

 

 

 

                           부끄러움
» 박병수 모바일 에디터

 

 

윤동주의 시 한 구절에서 가슴 떨리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나,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의 별 헤는 밤은 어떻고,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골이 남아있는 것은…”의 참회록은 또 어떤가?

 

그의 시가 몇십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가슴을 울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제 말 상처받은 영혼을 부여안고 가슴 시린 자기성찰을 노래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시에서 ‘부끄러움’의 미학을 발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부끄러움을 인간의 본성으로 파악한 이는 맹자이다.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측은지심(惻隱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함께 선천적인 네 가지 품성으로 설명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이 인간 본성을 부인하는 말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쩌면 윤동주의 시가 보편적 호소력을 갖는 것도 그의 시가 이처럼 인간 본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예산안 날치기 처리와 관련해 ‘형님 예산’과 ‘안주인 예산’이 논란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3년 동안 1조원이 넘는 지역구(포항남·울릉) 예산을 챙겼다.

한나라당은 또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가 주도하는 ‘한식 세계화’ 지원 사업으로 미국 뉴욕에 한식당을 차리기 위한 예산 50억원을 처리했다.

 

편법과 억지도 난무했다.

형님 예산에는 감사원이 ‘사업 타당성 재조사’를 요구한 사업도 들어갔고, 안주인 예산은 국회 예결위 심의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까지 반대해 사실상 백지화됐으나 슬그머니 되살아났다.

국회가 아수라장이 된 와중에도 결식아동 급식지원, 영유아 예방접종, 대학등록금 등 ‘서민 예산’은 전액 또는 뭉텅이로 삭감됐으나, 이 대통령 가족 관련 예산은 ‘알뜰하게’ 챙긴 것이다.

 

그래도 당당하다.

이 대통령은 ‘괴력’을 발휘해 날치기의 공을 세운 김성회 의원에게 전화해 “애썼다”며 격려했다고 한다.

이상득 의원은 들끓는 여론에 대해 오히려 “형님예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나왔었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디 청와대 분들만 그런가?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인권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면전에서 “현 위원장이 주는 상은 받을 수 없다”며 상을 거부해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앞서 조희문 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또 어떤가? 그는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물론 감독기관인 문화부의 사퇴 요구에도 6개월이나 꿋꿋이 버텼다.

 

기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공직인사 때마다 봐오지 않았는가?

하나같이 능력을 갖춘 적임자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나, 국회 청문회장은 비리와 탈법 의혹의 경연장이 되곤 한다. 그래도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이는 별로 없었다.

 

 

우리말 ‘부끄러움’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하나는 ‘일을 잘 못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거나 매우 떳떳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스스러움을 느끼어 매우 수줍다’는 뜻이다.(네이버 국어사전) 도덕적 함의와 정서적 함의가 한 낱말에 어우러져 있다. 그건 우리네 말글살이에서 두 뜻의 발생 뿌리가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해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에서 부끄러움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연구 결과 뇌신경작용 조절 단백질인 ‘X11L’ 유전자가 없는 생쥐가 먹이 경쟁에서 다른 생쥐에게 굴복하는 특이한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이 연구가 ‘부끄러움’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치료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부끄러움은 둘째 의미의 부끄러움이다.

그러나 혹 두 현상이, 우리의 말글살이에서처럼, 같은 뿌리의 다른 현상이라면, 도덕적 함의의 부끄러움 치료에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도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박병수 모바일 에디터 suh@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