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용이 무능을 감출 순 없다 | |
북쪽이 공언하던 맞대응은 없었다. ‘괴뢰의 남쪽 본거지를 청산하겠다’는 따위의 말대포로 그쳤다. 그러면 이로써 북의 기세는 우리 군과 정부의 단호함에 한풀 꺾이고, 도발 의지는 무력화된 걸까.
사소한 일에도 일쑤 뻐기던 정부지만, 이번엔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청와대 표정은 그저 ‘담담했다’고 한다. “국론이 분열됐을 때 북은 우리를 넘본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탄착점에서 상당히 빗나간 말씀이 있긴 했지만, 허장성세는 아니었다. 북의 도발을 국민 탓으로 돌리는 것이 짜증스러웠지만, 기고만장한 것보다는 낫다.
이번 포사격 훈련은 목적이 불분명했다. 우리 군이 쏜 것은 대부분 벌컨포였고, 실질적 위협인 K-9 자주포는 몇 발 쏘지 않았다. 탄착점의 방향도, 훈련의 성격도 슬그머니 바뀌었다. 맞고만 있지 않는다는 의지만 돋보이는 훈련이었다. 북한의 허무한 말장난이 아니더라도, 앞에서 걷어차이고, 돌아서 허공에 종주먹질을 해대는 장면이 떠오른 건 그런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런 허세로 말미암아 감수해야 할 손실은 계량하기 힘들다. 이 대통령 자신부터 ‘화약통에 올라탄 대통령’이라는, 돈키호테나 다름없는 별칭을 중국 언론으로부터 얻었다. 누르면 무엇이든 내준다는 뜻의 ‘자판기’란 별명보다 더 심하다.
국가적으로는 한반도를 국제적 분쟁지역으로 못박아 버렸다. 투자자와 바이어들의 발길을 돌리게 했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나라라는 이미지는 이제 국제적으로 분란만 일으키는 짜증나는 곳으로 찍혔다. 게다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열쇠가 우리 손을 떠나 주변 열강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일본마저 유사시 한국에 출병하겠다는 말까지 했을까. 2002년 2차 서해교전 직후, 정부가 보이지 않는 그러나 단호한 태도로 북쪽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그리고 관계자 문책 등을 얻어냈던 것과 상반되는 대차대조표다.
그러면 왜 이런 서투른 만용을 부렸을까. 그건 이 정권의 무능과 관련이 깊다. 사실 이 정부만큼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무능 낙인이 찍힌 경우는 별로 없다. 무엇보다 보수 정권의 자존심인 안보 문제에서 치명적인 무능을 드러냈다. 지난 3년간 한반도는 분쟁의 수렁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천안함 폭침(정부 주장)이나 연평도 피격은 그 결과였다. 이제 수도권 2000여만 주민들은 북의 장사정포를 걱정하며 산다. 그런데도 이 정권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걸고, 잃을 게 하나 없는 북한과 치킨게임을 벌인다. 이보다 더 무능할 수 있을까.
그뿐 아니다.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이제 경기 양주·파주·연천·가평·고양까지 확산됐다. 항간에선 이 정권이 쇠고기 시장을 미국에 완전 개방하기 위해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돈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국가안보의 핵심은 국민의 단합이다. 그러나 노사, 종교, 지역, 이념, 세대, 빈부 갈등은 인화점에 이르렀다. 특히 종교적 편향은 다종교 사회에서 치명적인 종교적 갈등까지 부채질한다. 지역적 편향성은 지역감정이라는 악령을 부활시키고 있다. 우리 국군이 국민의 군대가 아니라 ‘영남 군벌’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군 수뇌부는 특정 지역 출신으로 채워졌다. 권력기구도 그렇고, 정부기관이나 재계도 지역색이 뚜렷하다.
만용은 바로 이런 무능을 숨기거나 호도하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민간인·정치인·공직자 등에 대한 무차별적 사찰이나 국회의 예산·법안 심의·의결권을 강탈한 날치기도 숨겨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만용은 무능을 숨기지 못한다. 그동안 쌓아올린 무능의 탑에 옥개석을 올릴 뿐이다. 맹견을 통제하려면 고삐를 더욱 튼튼하게 틀어쥐어야지, 고삐를 놓고 으르렁거리며 맞짱 뜨는 것은 무능의 극치다.
엊그제는 이 대통령이 당선된 지 3주년 되는 날이었다. 사실상 임기의 60%가 지났다.
이젠 개념을 찾을 때도 됐다.
<곽병찬 편집인 chankb@hani.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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