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건설사들 잔칫상만 줄여도 무상급식 가능” | |
‘무상급식 반대’ 오세훈 서울시장의 파업, 그 진짜 의도는? “예산의 문제 아니라 합의 문제”라더니 조례안 통과되자 말바꿔 | |
지방자치 역사상 초유의 일이 서울시에서 벌어지고 있다. 무상급식 조례안이 지난 1일 서울시의회를 통과하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정 질문을 포함한 시정 협의를 전면 중단했다. “잠 못 자고 고민한” 결과였다.
서울시의회는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거부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서울시의회는 오 시장을 맹비난했고, 의회 출석을 요구한 일부 누리꾼은 오 시장을 “집 나간 5세, 훈”이라며 조롱했다. 그러나 오 시장의 태도는 꿋꿋하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의회와 타협해 무상급식 시행을 받아들였지만 오 시장은 흔들림 없다. “무상급식은 나라를 망하게 할 포퓰리즘”이라며 의회를 상대로 한 ‘오세훈의 파업’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오 시장의 ‘무상급식=포퓰리즘’ 주장은 여러 벽에 부딪혀 있다. ‘무상 급식지지 여론’을 뒤집기 위해 오 시장은 지난 3일 이후 세 차례 기자회견과 일간지 광고 등을 냈지만, 아직까지 ‘한방’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왜 그럴까?
# 쟁점 1. 재정여건상 시기상조다? 재정자립도 17.3% 전북도 하는데…
먼저, 서울시의 재정 여건을 살펴보면 오 시장이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면서 내세운 ‘시기상조론’이 힘을 잃는다. 오 시장은 지난 6일 서울시 학부모와의 대화 자리에서 “우리가 스웨덴 정도가 되면 무상급식을 하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는 2010년 기준으로 재정 자립도가 83.4%로 전국 1등이다. 2010년 현재 무상급식 비율이 62.8%에 달하는 전라북도의 재정자립도가 17.3%에 불과하다. 전북도 사례만 비교에도 시기상조론은 설득력을 잃는다.
다른 나라 사례를 살펴봐도 그렇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6월 조사한 ‘주요국 무상급식 현황’ 자료를 보면,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국가는 핀란드와 스웨덴이다. 이중 핀란드는 1948년 초등학교 무상급식 관련법을 제정했고 오 시장이 직접 언급한 스웨덴의 경우 1966~67년 사이 ‘학사년 급식학생’ 95만 명(전체 학생의 약 85%)을 상대로 무상급식을 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핀란드와 스웨덴 모두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한 때가 현재 우리의 경제 수준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무상급식 시기상조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했을 때 서울시가 부담하게 될 비용은 얼마일까? 내년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하면 서울시가 부담할 재정은 약 750억 원으로 추산된다. 서울시 내년 예산인 21조여 원의 0.3% 수준이다. 중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하면 약 1400억 원이 드는데 이 역시 전체 예산의 0.6% 수준에 불과하다. ‘무상급식으로 서울시가 망한다’고 말하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가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지 않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쟁점 2. 복지 포풀리즘인가? 토건 포퓰리즘인가? 수익성 떨어지는 서해 뱃길 사업비는 752억원
오 시장은 또 ‘무상급식은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했다.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야권이 들고 온 ‘달콤한 사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오 시장의 역점 시정인 ‘디자인 서울’이야말로 토건 포퓰리즘”이라는 역공에 휘말리고 있다. 서울시의회 민주당 의원들은 서울시의 디자인 거리사업 등 정책부터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렸다.
서울시는 현재 총 사업비 2천억 원을 들여 ‘디자인 거리’ 사업을 진행중이다. 서울시 50개 지역의 보도블록을 교체하고 간판을 교체하는 사업이다. 곳곳에서 벽돌 보도블록이 화강암 보도블록으로 화려하게 바뀌었다. 서윤기 서울시 의원은 “1미터 거리 디자인하는데 약 700만 원 정도 든다고 보면 된다”며 “멀쩡한 보도블록 갈아엎는 것 조금만 덜하면 무상급식 예산은 충분히 나온다”고 주장했다. 거리 디자인 10km만 포기하면 서울 시내 초등학생 60여만 명의 1년 급식 비용이 빠진다는 것이다.
‘서해 뱃길 사업’도 대표적인 토건 포퓰리즘으로 도마에 오른다. 이 사업은 김포 해안 터미널에서 여의도 서울항까지 15km 구간을 잇는 공사다. 크루즈 관광선이 다닐 수 있는 규모로 뱃길을 내는데 모두 2,300억 원이 든다. 내년 예산만 752억 원을 책정했다. 초등학교 무상급식 재원과 맞먹는다. 하지만, 크루즈 관광선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월 소득 500만 원 이상을 버는 서울 시민 15% 정도에 그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승록 서울시 의원은 “수익성 없는 ‘호화 크루즈선’만 띄우지 않아도 무상급식이 가능하다”며 “시기상조 정책은 무상급식이 아니라 서해 뱃길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 쟁점 3. ‘토건 예산’ 왜 못 줄이나? “턴키입찰방식만 고쳐도 3천억 아낄 수 있는데…”
오세훈 시장을 2007년 7월부터 1년간 보좌했던 선대인 김광수연구소 부소장은 좀 더 세밀하게 오 시장을 비판한다. “무상급식 예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 시장이 토건 예산을 줄이고 싶지 않은 게 본심”이라는 것이다.
서울시는 ‘한강 르네상스’와 관련한 예산으로 향후 23년간 26조 4천5백억 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1년에 1조 천오백억 원씩 든다. 이 돈에서 700억을 못 빼온다고 주장하는 것은 “째째하다”는 게 선 부소장의 생각이다.
선 부소장은 오 시장을 보좌했던 당시, 낭비되는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보고해도 “오 시장이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08년 턴키방식(일괄수주방식)으로 추진하는 토목 사업에서 기업들의 담합을 막으면 1년에 3천억 원을 아낄 수 있다고 보고했는데, 오 시장은 이후에도 턴키 방식의 토목 사업 관행을 고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선대인 인터뷰 기사’ 참조)
선 부소장은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면서 급식비 700억 원을 마련 못하겠다고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며, “재벌 건설사들의 잔칫상 규모만 줄여도 충분히 무상급식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 쟁점 4. ‘전면무상 학습 준비물 사업’은 어쩌고?
오 시장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데는 그 스스로 모순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자신이 하는 말과 정책이 따로 놀거나 했던 말을 뒤집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연간 380억 원을 들여 초등학생 전원에게 학습 준비물을 무상으로 지급한다. 오 시장의 지난 지방선거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학습 준비물 지급에는 학생 가정의 소득수준을 구분하지 않는다. 오 시장의 ‘부자 무상급식’ 논리 대로라면, 이 정책도 ‘부자 무상준비물 지급’이라는 비판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오 시장은 오직 급식만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한다.
오 시장의 말 바꾸기도 비판의 대상에 오른다. 오 시장은 지난 8월 서울시 의회에 출석해 “무상급식 추진은 예산의 문제라기보다는 합의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종욱 서울시의회 친환경 무상급식 특별위원장(민주당 시의원)과의 질의응답 시간에서 김 의원이 “다른 부문의 예산을 줄여 무상급식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막상 무상급식 조례안이 통과하자 오 시장은 말을 바꿨다.
김 의원은 “협의의 문제였던 무상급식은 어느 순간 시기상조, 망국적 포퓰리즘으로 둔갑했다”며 “오 시장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논리도 없는 것 같다. 무상급식이 자신이 아닌 야당이 들고 나온 정책이라 그냥 싫어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서울시 반론 “0.3%의 예산도 큰돈이다”
서울시는 뭐라고 해명할까? 우선, 서울시는 예산의 0.3%(700억 원)라 하더라도 매우 큰돈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 세부 사업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한 사업에 700억 원을 쓰는 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창학 서울시 교육협력국장은 21일 <하니티브이> 인터뷰에서“서울시의 세부사업이 2600개나 되는데 모두 700억 원씩 쓴다고 가정해보라. 서울시 예산 20조 원으로 부족하다”며 “야당이 제기하는 0.3% 예산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오세훈 시장도 지난 6일 서울시 학부모 간담회에서 “무상급식에 연간 5천억을 쓸 경우 10년이면 5조 원”이라며 “이것이 교육환경 개선에 쓰이지 못하고 모두 먹는 데 쓰이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먹는 것보다는 교육환경 개선이 더 시급하고 학부모들도 그것을 원한다는 주장을 편다.
서울시는 주장의 근거로 학부모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댄다. 서울시는 여론조사 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학부모 278명에 대해 교육지원 최우선 순위를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학부모들이 학교안전 강화(31.7%), 사교육 줄이기(19.9%), 학교시설 개선(13.9%), 친환경 무상급식(13.6%)의 순으로 응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서울시의 주장은 곧바로 반박에 직면했다. 김 의원은 “학교 시설 개선과 무상급식 둘을 놓고 선호도 조사를 하면 당연히 학교 시설 개선이 시급하다는 결과가 나오겠지만, 그것은 어떤 것 하나를 포기하라는 주문이 아니다”고 말한다.
또 시민단체는 무상급식 예산이 없어지는 돈이 아니라 가정 경제와 지역 경제로 환원되는 간접 효과를 강조한다. 배옥병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면 아이들의 질병을 관리해 의료비를 줄일 수 있고, 아이 1명당 연간 45만 원을 아껴 가계 소득 증대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크다”며 “무상급식의 간접 효과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치인 오세훈’의 진짜 의도는?
오 시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면 무상급식 시행에 대한 여론은 좋은 편이다. 서울시 의회가 지난 7일 시행한 친환경 무상급식 관련 여론조사 결과(만 19세 이상 서울시민 700명 대상)를 보면,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입장이 66.0%, 반대 입장이 29.6% 수준이다. 시민들의 여론뿐 아니라 여러 가지 주변 정황을 살펴보더라도 무상급식에 강경 드라이브를 거는 오 시장의 태도가 석연찮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정치인 오세훈’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나라당과 보수층을 겨냥한 일종의 ‘구애 작전’이라는 것이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대선 출마를 결심한 오 시장이 한나라당 내 잠재 후보들과의 예선 경쟁에서 승기를 잡아야 한다”며 “무상급식 반대 투쟁을 통해 보수층에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김씨는 “2007년 대선과 달리 복지가 화두가 될 가능성이 큰 2012년 대선에서 오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투쟁은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오 시장의 패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창학 서울시 교육협력국장은 “아이들의 교육복지를 어떻게 하면 두텁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교육 복지의 관점에서 고민하고 있다”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김도성 피디 catalunia@hani.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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