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사의 안과 밖 | |
<시에스아이>(CSI) 등 미국의 텔레비전 범죄수사 드라마가 셜록 홈스, 에르퀼 푸아로 등 불세출의 명탐정들을 초라하게 만들어버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정확한 과학적 증거로 범인을 추적해 꼼짝 못하게 하는 능력이 추리소설의 명탐정들을 훨씬 능가한다는 것이다.
이런 범죄수사극 때문에 배심원들이 재판에서 더욱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게 됐다는 것이 이른바 ‘시에스아이 효과’(CSI effect)다. 배심원들이 드라마에 나오는 가상의 스토리와 현실을 혼돈해 살인사건 재판 등에서 지금의 과학수사 능력을 벗어나는 증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 미시간주 와슈티노카운티의 도널드 셸턴 판사는 배심원 200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범죄수사극 시청과 과학적 증거에 대한 기대치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범죄수사극보다는 오히려 배심원들의 호주머니 속에 든 스마트폰 등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며 “최첨단 기기를 가진 사람일수록 훨씬 더 과학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런 실증적 연구결과와 관계없이 검사·변호사·판사들은 여전히 시에스아이 효과가 실재하는 것으로 믿고 행동하고 있다고 셸턴 판사는 설명했다.
서울 마포경찰서가 만삭의 부인을 살해한 용의자로 의사 남편을 구속하면서 내세운 것도 혈흔, 디엔에이(DNA) 등 과학적 증거들이다. 그러나 범죄를 입증할 직접적 증거는 찾지 못해 남편이 진짜 범인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런데 증거가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범인을 못 가려내는 사건이 있다. 바로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사건이다. 지문을 못 찾았네, 폐쇄회로텔레비전 화면이 흐릿하네 하는 따위의 변명을 듣노라면 역시 중요한 것은 수사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수사 의지라는 생각이 든다.
<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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