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수의 영어 스나이퍼는 도요새를 뜻하는 스나이프(snipe)에서 나왔다. 물가에 사는 예민한 도요새를 잡으려면 사냥꾼이 위장복을 걸치고 오랜 시간 잠복해야 한다. 그리고 단 한 발에 떨어뜨려야 한다. 저격수는 제1차 세계대전 말 영국군이 처음으로 공식 편제를 만들었다.
저격수 한 명은 1개 중대(100명)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1차대전 때 적 1명을 제거하는 데 들어간 탄약이 7000발, 2차대전 때 2만5000발, 베트남전쟁 때 5만발이었던 데 비해, 베트남전에서 저격수들은 고작 1.7발을 사용했다는 통계가 있다.
2차대전 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 병사 바실리 자이체프는 독일군 400명을 없앴다. 장자크 아노 감독은 이를 소재로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를 제작했다.
당연히 저격수는 아무나 할 수 없다.
특등 사격술 말고도 전장의 첩보 수집을 위한 지역 수색 능력과 엄폐와 은폐, 전장 소음 식별 능력, 각종 통신장비 사용 기술, 은밀한 이동 능력, 장시간 꼼짝 않고 매복할 수 있는 고도의 인내심과 체력이 필요하다. 양쪽 시력은 2.0 이상이어야 하며 손이 떨리지 않도록 금주·금연이 요구된다.
국내 유일의 저격수 전문가로 꼽히는 황광한 예비역 준장이 제시한 조건들이다.
국방부가 예비군 저격수 3만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특수전 부대와 시가지 전투를 벌일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예비군 훈련 기간에 향방 및 타격소대별로 1명씩 선발해 4시간씩 사격연습을 시키겠다고 한다.
북한군이 듣고 코웃음칠 일이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뭐든 주워섬기면 안보대책으로 통하는 풍조가 이런 코미디까지 만들어냈다. <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
예비군 저격수 양병론
예비군 저격수 삼만 명 양성정책의 허구
요즘 정부 계획이라는 걸 보면 황당함을 금할 수 없는 헛소리처럼 들리는 계획들이 많다. 도대체 그 계획을 작성하기 위해 얼마나 연구했는지, 전문가 자문은 구해봤는지, 그럴만한 자원은 있는지, 등등에 관한 사전조사가 선행됐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계획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계획이 국방부에서 내놓았다는 ‘예비군부대 저격수 양성계획’이다.
국방부는 ‘2011년부터 달라지는 예비군훈련’ 자료를 통해 “북한의 특수전부대와 시가지 전투에 대비한 예비군부대 저격수 양성 훈련을 하기로 했다”며 “타격소대별로 1명씩 선발해 훈련기간 동안 4시간을 사격연습에 투입하도록 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예비군 저격수는 확대경이 장착된 M16 A1 소총으로 사격 연습을 하며, 군은 3만여 명의 저격수를 지속적으로 양성, 유지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말로야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도대체 저격수가 무엇인데 예비군 중에서 삼만 명씩이나 양성하겠다는 건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뭐? 그것도 소대별로 1명씩 선발해서 양성을 해?
과연 저격수란 어떤 사람일까.
총 잘 쏘는 사람? 그렇다면 사격선수들에게 좋은 저격수 자질이 있는 걸까? 천만의 말씀이다. 조준경만 있으면 총을 잘 쏠 수 있을까? 이 역시 천만의 말씀이다. 총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사격선수라고 총을 잘 쏴? 조준경이 있으니까 예비군 훈련 정도로도 삼만쯤은 양성할 수 있어?
실전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적이 쓰러지고 전우가 죽어가는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움직이는 적, 즉 사람을 조준해서 발사하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르는 자들이 책상머리에서 굴려대는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나의 분명한 판단이다.
저격수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국방부에서 말하는 저격수란 전투 중에 써먹을 저격수를 말하는 것일 터이니 내 생각을 말해보기로 하자.
사격을 잘하려면 체력이 강건해야 한다. 고도의 중노동에 지치지 않아야 하며 폐활량이 커야한다. 정신적으로도 체력 못지않은 강건한 집중력을 지녀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적보다 먼저 유리한 저격지점을 선점할 수 있는 민첩한 시야와 냉정한 성품이 필요하다.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조준하고 사살해야하는 상대가 사람임을 자각해야 하며 살인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이겨낼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하다. 만일 이 강박관념에서 이길 수 있는 정신력이 없는 자라면 아무리 세계 제일의 사격선수일지라도 저격수는 될 수 없다.
이런 저격수를 현역병도 아닌, 예비군 중에서, 그것도 훈련기간 중 4시간의 사격연습을 통해 양성한다고? 그야말로 정신 나간 아마추어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간들의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하다못해 사냥꾼도 처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사냥감을 빗나가게 발사를 하게 된다고 한다. 그게 정상적인 인간의 심리라는 거다. 그런 현상을 지칭하는 심리학용어가 있는데 기억을 못하겠다. 사냥감을 상대로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사람을 조준해야하는 저격수가 몇 시간의 사격연습으로 만들어지리라 생각했다니 어찌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이 계획을 장기복무자들이 많은 공수특전단 같은 부대 장병들을 대상으로 시행하겠다고 했으면 그러려니 하겠다. 장기복무자들이라면 저격수를 양성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정신무장을 갖출 수 있는 기본은 만들어진 셈이기에 하는 말이다.
2차 대전에 참전했던 미국군인들 중 정신장애를 앓는 장병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베트남전 참전 병사들 대부분이 정신적 장애를 앓았다고 한다. 반면, 6.25 참전 장병들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에 참전했던 우리 병사들은 미국 병사들과 달리 정신장애를 앓는 자가 거의 없었었다.
왜 그랬을까? 2차 대전이 발발하기까지 미국에도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넘긴 프런티어정신이 남아있었다. 6.25까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와 풍요에 길들여진 세대들이 베트남에 참전했을 때, 전쟁의 참혹한 실상은 마약에 찌들지 않고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정신력의 차이였을 것이다.
당시 우리 사회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훈련효과를 얻을 수 있을 만큼 가혹했었다. 사회자체가 너무나 가난하여 희망이 없었으니 전쟁터라고 달랐겠는가.
저격수라는 건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전투를 하는 일반병사들은 사살된 적이 누구 총에 죽었는지 구분할 수 없다. 살인했다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거다. 그러나 저격수는 다르다. 자신이 사살한 적의 숫자를 분명히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저격수가 정신훈련부터 받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찌하여 우리 정부는 갈수록 아마추어리즘만 더해 가는가.
이명박 정부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날랜 문민의 칼솜씨’라며 무차별 군부를 숙청하여 전투불능군대를 만들더니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은 아예 당나라군대로 만들어 버렸다.
민주팔이 정권과 종북반역정권에는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제도도 없는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어떤 사안이든 계획이 확정되기 전에 해당분야 전문가들에게 충분히 자문을 받고 정책을 입안했었는데 민주팔이, 종북정권들의 정책은 어찌하여 이리도 하나 같이 전문성이 결여되느냐는 거다.
제발 민주주의를 팔아먹지만 말고 진정한 민주주의 좀 해봐라. 직선으로 대통령을 뽑았다고 민주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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