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십자가에 못 박힌 이슬람 | |
노무현 정부 시절 보수진영이 사학법 개정 반대 시위를 할 때였다. 십자가를 멘 예수의 고난을 재현하는 시위를 벌이던 보수 개신교 목사들이 멘 십자가에 바퀴가 달려 있었다. 그들의 어깨에 닿는 십자가 교차 부분에는 붕대가 둘둘 말려 있었다. 그들은 십자가를 빈 수레처럼 태연히 끌고 갔다.
바퀴 달린 십자가. 알고 보니 한국의 보수적 개신교의 유구한 전통이었다. 부활절을 앞둔 2004년 4월3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국민화합 기도회’에서 길자연(왕성교회), 엄신형(중흥교회), 조용기(여의도 순복음교회) 등 원로목사들도 십자가에 바퀴를 달고 예수의 고난을 흉내냈다. 기독교 온라인신문 <뉴스앤조이>는 목사들이 바퀴십자가를 태연히 메고 가다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고 전했다.
직장을 핑계로 한달에 한번도 교회에 안 나가는 나이롱 기독교 신자지만, 기독교에서 십자가의 의미 정도는 안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에 올라,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이는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못 박혀 죽었다는 기독교 교리의 시작이자 끝이다. 십자가는 예수가 죽으면서 흘린 그 보혈로 인류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한 대속의 상징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십자가를 메며 예수의 고난에 다가가려 한다.
한국의 보수 개신교 목회자들은 눈앞에 죽음이 기다리는 예수의 고난은 고사하고, 한순간의 하찮은 육체적 고통도 짊어지기 싫은 모양이다. 그들의 교회에 걸린 십자가는 바퀴와 붕대로 치장됐을 것이 틀림없다. <뉴스앤조이>는 “예수의 십자가 행진 뒤에는 죽음이 기다렸지만, 이들의 퍼포먼스 뒤에는 화려한 고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탄했다.
이 바퀴십자가 목사들이 요즘 목소리를 높인다. 조용기 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정부의 이슬람채권(수쿠크) 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이명박 대통령 하야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해 사실상 무산시켰다. 정교분리 원칙을 어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나는 종교도 정치적 견해를 표명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 목사가 ‘정교분리’ 원칙을 어겼는지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 법안이 다른 종교를 차별하고 이익을 침해한다면 반대 견해를 밝힐 수도 있다. 문제는 보수적 개신교가 이슬람에 보이는 증오와 막가파식 논리이다. 조 목사는 “궁극적으로 보아 이슬람 자금의 유입이 국가와 사회에 큰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해 말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슬람=악’이라는 논리이다.
3000여명의 목회자와 기독교 지도자로 구성됐다는 ‘대통령을 위한 기도 시민연대’(PUP)의 성명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이슬람의 국내 진출을 도와주는 결과가 될 수쿠크법은 테러단체에 자금을 대주는 격… 이슬람권이 세계 2위 선교대국인 한국의 이슬람화를 통해 세계 기독교계의 선교활동을 방해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국내 이슬람 세력의 팽창은 한국도 테러위험과 유럽국가들이 앓는 병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렇다면 한국이 이슬람국가들과 교역하는 것은 테러단체에 자금을 대주는 격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이번에 수쿠크법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과 관련이 있다는 말도 있다. 원전을 수출하면서 특혜금융도 제공해 수쿠크법으로 그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보수적 개신교 진영은 먼저 그 원전 수출부터 반대해야 한다. 그 특혜금융으로 테러단체에 자금이 흘러들어갈 수도 있지 않은가? 인명진 목사는 “근본주의 개신교가 이 정도로 (공격적으로) 하는데도 그동안 종교갈등이 그나마 심각하게 표출되지 않은 것은 이웃 종교의 너그러움 덕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은 모범적인 종교다원주의 국가이다. 이제 그 토대가 무너진다는 느낌이 든다.개신교 보수 목회자들이 우려하는 테러위협과 유럽국가들이 앓고 있는 병을 그들 스스로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정의길 : 오피니언넷부문 편집장 Egil@hani.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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