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진퇴양난의 원전

道雨 2011. 4. 4. 13:45

 

 

 

                진퇴양난의 원전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세계가 공포에 빠져 있다.

이 사고로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의 6기 원자로가 멈춰 섰고, 그 가운데 일부는 최악의 사태인 노심 용융의 위험성마저 있다고 한다.

사고 수습은 요원하고 근원적 해결에 어쩌면 몇 십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에 대한 세계인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있다. 독일이 낡은 원전의 운행을 멈추고 점검에 들어갔으며 중국도 신규 원전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섬과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원전에 대한 세계 여론을 결정적으로 나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원전 산업은 20년간 꽁꽁 얼어붙었는데, 21세기에 들어오자 슬슬 훈풍이 불더니 최근에는 ‘원전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활에 성공했다. 원전 공포는 자취를 감추고 거꾸로 원전은 값싸고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석유 가격의 인상이다. 유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니 대체 에너지로 원전의 매력이 커진 것이다.

둘째는 지구온난화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주범이 이산화탄소 배출이고, 이것을 줄이는 것이 지구를 지키는 일이 됨에 따라 온실가스를 일으키지 않는 원전과 수력발전이 각광을 받게 됐다. 그러나 수력발전은 한계가 있으므로 자연히 원전 붐이 불게 됐다.

 

현재 세계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4%를 원전이 담당하고 있다. 일본은 원전 의존도가 매우 높아 30%이고, 한국은 한술 더 떠 31%나 된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이 비율을 2030년까지 59%로 높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 5위의 원전 국가다. 그러나 후쿠시마 이전 세상과 이후 세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원전에 대한 재검토가 필수적이다.

 

후쿠시마 이후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세계의 각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데, 문제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환경 근본주의자들은 차제에 원전 자체를 포기할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지나친 이상론이다. 원전을 폐기하려면 대체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태양은 그렇게 뜨겁지 않고 바람도 그리 강하게 불지 않는다. 대체 에너지 개발에 주마가편하되, 당분간은 원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원전에 대한 철저한 감독이 필요하다.

도쿄전력은 전에도 여러 번 사고를 은폐한 적이 있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도쿄전력에 대한 정부의 감독 부실이 원인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감독이 부실한 이유는 일본의 고질적인 ‘아마쿠다리’(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관행 때문이다. 감독을 해야 할 관료들이 퇴직 뒤 피감독 기업에 중역으로 내려가는 잘못된 관행이 감독을 느슨하게 만든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 교수의 ‘포획’ 가설, 즉 기업이 감독 관청을 포획하여 규제를 무력화시킨다는 가설이 딱 들어맞는다.

일본과 비슷한 전관예우 관행과 높은 원전 의존도를 가진 한국은 후쿠시마가 주는 경고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 이정우 : 경북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