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KBS는 ‘도청사건’의 본질을 호도하지 말라

道雨 2011. 7. 2. 12:32

 

 

 

   KBS는 ‘도청사건’의 본질을 호도하지 말라
 

 

민주당의 수신료 대책회의 도청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방송(KBS)은 엊그제 공식 입장을 발표해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방송은 “민주당 관계자 등의 이름을 빌려 케이비에스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제기가 증폭되고 있다”며 “회사와 기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즉각 법적 대응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에게 쏠리는 도청 의혹을 공세적으로 방어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한국방송의 발표문은 의혹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키웠을 뿐이다.

한국방송이 진정으로 떳떳하다면 “도청을 한 적도, 녹취록을 한나라당에 전달한 적도 없다”고 간명히 밝히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 따위의 복잡한 표현을 동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당이 주장하는 대로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 무선 마이크를 놓고 나간 뒤 밖에서 몰래 녹음한 방식은 아니지만, 다른 부적절한 방식을 동원해 비공개 회의 내용을 엿들었음을 시인하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거기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마저 어제 “한국방송 행태에 유감을 표시한다”고 공개적으로 한국방송을 지목하고 나섰다.

한국방송의 발표문대로라면 손 대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법적 대응을 하는 게 옳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한국방송이 민주당의 회의 내용을 부적절한 방식으로 취득해 한나라당에 넘겼느냐의 여부다. 그런데 한국방송은 이런 본질을 은근슬쩍 건너뛴 채 쟁점을 다른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기자들이 벽치기(바깥벽에 귀를 대고 취재하는 방식)를 했다”는 따위의 말도 마찬가지다.

벽치기 취재를 통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녹취록을 작성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적극적인 취재’의 결과물을 어떻게 활용했느냐다.

이 대목에 대해 한국방송은 뚜렷한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다.

 

한국방송은 지금이라도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도청 의혹 연루 여부를 명백히 규명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 결백을 자신한다면 “도청사건 연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김인규 사장이 옷을 벗겠다”는 선언을 해야 옳다.

 

이런 명쾌한 길을 놓아두고 계속 딴소리를 하는 것은 의혹만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한국방송은 이번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런 기대는 착각임을 알았으면 한다.

 

 

[ 2011. 7. 2  한겨레 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