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섀클턴의 비스킷과 리더십

道雨 2011. 10. 28. 12:55

 

 

 

               섀클턴의 비스킷과 리더십 

 

시간은 미래로부터 오지 않으며, 과거의 강물이 흘러 미래로 간다는 현실인식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 정영무 논설위원
얼마 전 영국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비스킷 한 개가 1250파운드(230만원)에 팔렸다.

영국의 전설적인 탐험가인 어니스트 섀클턴이 1907~09년 남극탐사 때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겪던 대원에게 내줬던 비스킷이다.

 

비스킷은 영국의 헌틀리 앤드 파머스사가 당시 극지탐험대용으로 제조한 고단백 에너지 대용식이다.

 

로알 아문센, 로버트 팰컨 스콧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탐험가 중 한 명인 섀클턴은, 그로부터 5년 뒤인 1914년 인듀어런스호 남극탐사 때 빙하에 갇혀, 대원 27명과 634일 동안이나 사투를 벌이면서도 전원 무사귀환의 기적을 이뤄낸 인물로 유명하다.

 

1909년 섀클턴은 남극점을 160㎞ 앞두고 기상악화 때문에 베이스캠프로 철수해야만 했다. 캠프로 돌아오는 과정은 추위와 굶주림과의 전쟁이었다.

 

어느 날 섀클턴은 배고파 지쳐 있는 대원 프랭크 와일드에게 자신은 아직 버틸 만하다며 자기 몫의 비스킷을 내줬다. 와일드는 그 비스킷을 먹지 않았다.

그는 일기에 “수천 파운드를 준다 해도 이 비스킷을 팔지 않겠다. 섀클턴의 희생정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적었다.

 

극한 상황에서 리더의 역할은 막중하다. 인듀어런스호의 기적은 섀클턴의 남다른 소통능력과 자기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섀클턴과 비슷한 시기에 탐험에 나섰던 다른 배들은 적지 않게 선상반란 등의 참혹상을 겪었다.

섀클턴은 비록 위대한 실패를 했지만 ‘섀클턴 리더십’은 위기 때마다 재조명받고 있다.

 

히말라야에서 조난당한 박영석 대장도 도전정신 못지않게 탁월한 리더십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산에서는 극한의 용기와 인내력을 발휘했지만 동료들에게는 한없이 베푸는 사람이었다. 원정등반 비용을 마련하느라 결혼 예물을 팔기도 하고 아파트 전세금을 빼낸 적도 여러 번이었다.

아끼는 후배들을 전셋집에 데리고 살았던 그는 “무조건 내 거 안 챙기면 된다”는 게 등반대장으로서의 철학이었다.

 

그는 “산악인의 기본자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를 하나 고르라면 나는 지체없이 헬프(help)를 선택하겠다. 도전, 진취적 기상, 고난 극복 같은 남성적인 어휘들도 여성적인 힘이 담겨 있는 이 단어 앞에서는 빛을 잃고 만다”고 했다. 이런 그였기에 국내의 내로라하는 산악인들이 구조대를 자청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삶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사람들은 위기상황 자체보다도 위기관리 능력에 심각한 회의를 품고 있다. 월가 시위는 그것이 비등점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시위대는 승자독식 체제의 제도적 전환을 요구한다. 그와 함께 지도자들의 탐욕과 무능에 분노하고 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가 <슈퍼자본주의>에서 말한 대로, 기업들은 규제완화, 감세 등 자신들을 우대하는 정치적 성과를 얻기 위해 점점 더 집요하게 파고든다. 세계화와 기술의 발전 등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정치인들은 그런 소란 속에서 귀를 기울일 수가 없다. 곧 슈퍼자본주의가 정치로 흘러들어와 민주주의를 익사시키려 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더 무책임해진 게 아니라 균형을 잡기가 그만큼 어려워진 탓도 크다.


이러한 위기가 탐험대장에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그 그림자만큼이라도 따라올 진정성의 리더십을 절박하게 요청하게끔 만든다.

 

이제 사람들은 가꿔진 이미지와 장밋빛 미래를 믿지 않는다. 무엇을 하겠다는 화려한 언사보다도 어떻게 해왔는지를 중요한 잣대로 삼는다.

시간은 미래로부터 오지 않으며 과거의 강물이 흘러 미래로 간다는 현실인식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시민들이 정치를 점거해가고 있다.

 

[ 정영무, 한겨레 논설위원, you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