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역사적 사실 판단을 왜 장관이 하나, 학계에 맡겨라

道雨 2011. 11. 5. 10:32

 

 

 

역사적 사실 판단을 왜 장관이 하나, 학계에 맡겨라

 

 

 

역사 교과서 교육과정 각론과 교과서 집필기준 문제로 역사학계가 들끓고 있다.

 

지난 1일엔 거의 모든 역사학 연구
모임을 망라한 역사학회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3일엔 학계 대표자들이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만나 항의했으며, 4~5일엔 역사학대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진다.

이제 논의는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의 차원을 넘어, 학문의 자유와 독립성 침해의 문제로 발전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을 정치권력이 좌우하려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엊그제 역사학회 대표자와 한 간담회에서 이 장관은 각론 재고시 문제와 관련해 “역사적 사실과 교육적 측면, 헌법 정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한발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판단은 장관인 자신이 하겠다는 것이니 본질적으로는 변한 게 없다.

 

역사적 사실에 과한 문제를, 교육적 측면 따위를 고려해 판단한다는 것 자체도 어불성설이다. 사실은 사실로서 존중해야지, 교육 운운하며 각색하고 뒤튼다면 학문은 성립할 수 없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이 장관은 어제 헌법학자들과도 면담했다. 헌법적 측면에서 의견을 구하겠다는 것이다. 대표격인 헌법학회 대표는 빼고 은퇴한 원로들만 만난 것도 문제지만, 이것 역시 학계에 맡길 일이지 장관이 할 일은 아니다. 정부는 학자들이 논의할 수 있는 장만 제공하면 된다. 여론 수렴의 모양새를 갖추려는 의도겠지만, 학계의 반발만 더 키우는 일이다.

 

지금의 사태는 역사 교과서를 정권이 멋대로 바꿀 수 있다는 독재적 발상에서 비롯됐다.

학자들로 구성된 교육과정개발 연구위원회가 개발하고, 심의위원회가 심의를 완료한 각론(안)을 이 장관이 제멋대로 바꿔버린 것이다.

얼치기 학자와 이념의 노예인 보수언론의 선동에 놀아난 것도 문제지만, 교과서를 정치화·이념화시켜버린 것이 더 큰 문제였다. 학문의 자유와 중립성에 치명상을 입힌 것이다.

 

사태는 심각하지만, 해결 방안은 간단하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과 해석은 학계에 맡기면 된다. 학문적 차원에서 보면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의 논란, 독재정권 문구 삭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 따위의 쟁점은 손쉽게 정리된다. 진보·보수, 좌우를 막론하고 학계의 의견도 대체로 하나로 모인다.

 

정치가 학문을 지배하려고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