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검찰의 시계

道雨 2011. 11. 8. 16:59

 

 

                   검찰의 시계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법원의 잇따른 무죄 선고 뒤 검찰이 앙앙불락하는 이유

 

 

 

»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1990년대 초반의 어느 날이다. 친하게 지내던 특수부 검사와 한담하던 끝에 권력 주변 어떤 인사의 비리 소문을 전한 일이 있다. 그저 소문일 뿐인데도, 소파에 파묻혀 있던 이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열흘쯤 뒤 다시 만난 검사는, 알아보니 별것 없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별일 아니라는 듯, 주변 조사는 물론 미행에 감청까지 다 했는데 사소한 돈 문제 한둘에 부인의 외도 정도만 나와 내사를 접었다고 말했다.

전해주는 탐문 내용도 상세했다. 얼마나 샅샅이 뒤졌을까, 머리끝이 쭈뼛했다.

 

그 과정에서 영장 따위 법적 절차를 밟았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런 것이 굳이 필요하지 않던 때였다.

그렇게 그러모은 정보는 필요하면 별건 수사나, 밀실에서의 위협 혹은 거래의 자료로 쓰였을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느냐’며 검찰이 기세등등하던 시절이다.

 

 

비슷한 일이 지금 없으리라고 장담할 순 없다.

먼지털기식 수사나 별건 기소는 얼마 전까지도 문제됐던 일이다. 하지만 검찰의 위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검사 개개인의 수사력이 떨어졌다는 말도 있지만, 검찰 입장에서 보면 ‘원활한 수사를 막는’ 이런저런 제약이 많아졌다.

 

대표적인 게 구속 전 피의자신문(영장실질심사)이다.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불구속수사 원칙이 명문화되고 영장실질심사가 필수화되면서, 검찰이 청구한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는 일이 크게 늘었다.

구속의 최종 결정을 법원이 하게 되면서 검찰의 수사 환경도 달라졌다. 인신구속을 무기 삼아 수사 대상자를 압박하기도 힘들어졌고, 구속 피고인을 상대로 압도적 우위를 유지한 채 수사를 하기도 어려워졌다.

 

재판 양상은 더 크게 변했다.

2006년 이후 검찰 조서 대신 법정에서의 구술 심리를 중시하는 공판중심주의강력히 추진되면서, 이제 검찰은 적어도 원칙적으론 피고인과 대등한 당사자가 됐다.

공판중심주의 도입을 전후해 재판을 받은 한 사람은 “그 전과 그 뒤의 재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며 “천지개벽의 변화”라고 표현했다. 검찰의 주장이 더는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됐다는 얘기다. 검찰 입장에선 이런 상황을 ‘사법권력’을 뺏긴 탓이라고 여길 것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법원의 잇따른 무죄 선고 뒤 검찰이 앙앙불락하는 것도 그런 인식 때문이겠다. 검찰은 항소 등 법 절차를 밟기보다 보도자료 등을 통해 법정 밖에서 법원 판결을 비난하는 데 열심이다.

볼썽사납다.

법원의 무죄 선고는 “검찰이 형사소송법에서 요구하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혐의를 입증하는 데 실패한 때문”인데도, 정작 검찰은 옛날의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꼴이다.

검사가 긴가민가하며 기소한 사건까지 법원이 기계적으로 유죄를 선고하던 때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는데도 그렇다. 검찰의 시계만 유독 멈춰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지자면 지금의 일은 업보일 수 있다.

한 전 총리 사건을 두고선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 및 지휘 라인에서 수사를 제대로 아는 이가 몇이나 되느냐”라며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도 하지 못한 채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벌였다는 지적이다.

그렇게 된 데는, 권력의 주문을 잘 따른 이들이 승진과 보직으로 대우받아온 검찰 인사의 해묵은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일은 현 정부 들어 유독 심해졌다.

 

마침 검찰은 정권의 최고 실세로 연결될 수도 있는 수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정권 말이면 으레 그런 수사가 있었다. 가을이면 오동잎 떨어지듯 때가 온 셈이다.

물러가는 권력의 뒤꿈치만 무는 꼴이긴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나마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