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집중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역대 어느 군인도 누리지 못한 무소불위 권한을 한 지휘관에게 집중시키는 통합군제 도입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 무너뜨린다
군은 반드시 국민과 정치(정부와 국회)에 의해 문민통제되어야 한다. 이는 군 존립의 대전제다.
지난 30년간의 군부독재가 말해주듯이 무력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군이 자신의 집단이익을 위해 문민통제를 벗어나 그 총구를 국민과 정치로 돌렸을 때 국민의 안위와 민주주의가 결딴나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주의 국가는 예외 없이 문민통제 장치(법과 제도)를 두어 군을 안팎으로 견제하고 있다.
핵심은 한 지휘관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 쿠데타 가능성을 줄이고 민주주의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90년 이전에는 각 군 참모총장이 군정권(양병)과 군령권(용병)을 통합 행사하되 3군이 나눠 행사하도록 했으며(3군 병립제), 그 이후에는 합참의장이 군령권을 행사하고 3군 참모총장이 군정권을 나눠 행사하며(합동군제) 상호 견제하도록 해왔다.
그런데 국방부는 합참의장이 군령권은 물론 대부분의 군정권까지 함께 행사하고, 3군 참모총장을 지휘하는 이른바 통합군제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역대 어느 군인도 누리지 못한 막강한 권한을 단일 지휘관에게 집중시키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합동군제라고 강변하나, 단일 지휘관이 3군 참모총장을 지휘하고 군령권과 군정권을 통합 행사하는 합동군제는 그 어느 나라에도 없다.
이렇듯 군사에 관한 거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지휘관의 출현은 군 내부에서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군 밖으로도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군통수권을 위협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됨으로써 문민통제를 무너뜨리고, 1987년 6월항쟁 이후 더디게나마 성장해온 민주주의를 결정적으로 후퇴시키게 될 가능성이 크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 좌지우지하며 자국 최초의 이슬람 정권을 무너뜨리는 등 잦은 쿠데타로 국정을 농단해온 터키 군부, 지금 이 시간에도 무바라크 퇴진 이후 자국의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는 이집트 군부, 잦은 쿠데타로 역시 자국의 민주화를 가로막아온 타이 군부 등, 통합군제를 채택한 몇 안 되는 나라 대부분이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으로만 볼 수 없다.
국방부는 통합군제의 도입 명분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2015년 12월)에 대비하고 우리 군을 전투형 군대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데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거짓이다.
한·미 국방장관은 이미 2009년 10월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의에서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당시에는 2012년 4월) 후에 “한-미 연합방위를 주도할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승인하였으며, 국방부도 2010년 6월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재차 확인한 바 있다. 현재의 합동군제로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음을 한·미 국방장관이 공식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방부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비해 통합군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을 바꾸는 것은 군의 생명인 지휘구조를 놓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매우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한편 한국군이 한-미 연합방위를 주도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한·미 국방장관의 평가는 한국군이 전투형 군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군은 예나 지금이나 전투형 군대가 아닌 적이 없었다. 다만 한국전쟁 이래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행사하고 한-미 연합방위를 미군이 주도해온 탓에 한국군의 작전 기획·수행 능력이 미군에 상대적으로 뒤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통합군제 도입 명분으로 내세우기 위해 우리 군을 마치 전투도 못하는 바보 군대로 치부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통합군제를 밀어붙이는 육군과 이에 반대하는 해·공군 간에 골을 파 3군 합동성 강화를 저해하는 것이나, 지휘계선을 현행 ‘합참의장→작전사령관’에서 ‘합참의장→제1합참차장→3군 참모총장→3군 제1참모차장’으로 두 단계나 늘려 신속한 작전 대응을 지연시키는 것도 전투형 군대 육성에 역행하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제외한 역대 정권에서 군 안팎의 기득권을 확대하려는 육군 주도로 통합군제 도입을 꾀했으나 그때마다 국민과 국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런데도 군의 생명이자 민주주의 발전을 좌우할 군 지휘구조를 충분히 공론화하지도 않은 채 정권 말기에 졸속으로 결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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