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종편 개국, 언론과 민주주의의 대재앙 시작되다

道雨 2011. 12. 2. 11:07

 

 

 

 종편 개국, 언론과 민주주의의 대재앙 시작되다
 

 

 

조선·중앙·동아·매경의 종합편성채널(종편) 4곳이 오늘 합동 축하쇼를 열고 일제히 개국한다. 온갖 특혜와 반칙을 통해 태어난 보수언론의 종편사들이 언론시장을 황폐화시키는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이는 언론의 위기이자 우리 사회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기가 닥쳤음을 의미한다.

 

 

종편 4사의 개국은 단순히 방송채널이 몇 개 늘어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사건이다. 언론시장에서 보수 정치권력과 족벌언론이 동맹을 구축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는 공세에 나섰음을 뜻한다.

그 동맹의 지향점이 여론 장악을 통한 1% 수구 기득권층의 자기이익 보호와 보수정권 재창출에 있음은 여권과 종편이 그동안 보여준 행태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유례를 찾기 힘든 특혜 ‘괴물방송’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2009년 미디어법을 날치기 처리한 데 이어, 시청자 수요와 광고시장의 여건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지난해 말 종편 4개사를 허가했다. 그리고 최시중 위원장의 방송통신위원회가 총대를 메고 온갖 꼼수를 동원해 특혜를 제공했다.

종편 콘텐츠의 의무 재전송을 비롯해 종합유선방송사업자(에스오)에 대한 황금채널 배정 압박, 광고 직거래 허용, 중간광고 허용, 제작·편성 비율 완화 등 특혜를 다 열거하기조차 어렵다.

이를 통해 케이블로 방영되면서도 지상파 이상의 특혜를 누리는,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괴물방송’이 등장했다.

 

종편시대를 열어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노림수는 분명하다. 2007년 대선에서 권력 창출의 사실상 파트너였던 보수 족벌언론과의 유착을 강화하고 보수 일색의 여론시장을 형성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다시 보수권력을 창출해내려는 것이다.

 

미디어시장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방송 진출을 추진해온 조·중·동 등 족벌언론들은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해 신문·방송 겸영 금지 해제를 내건 이명박 정부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그 대가로 종편을 허가받은 뒤엔 국회의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사) 입법 논의를 무시하고 직접 영업에 나서고 있다.

아직 시청률이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많게는 지상파 광고의 70%를 요구하는 조폭적 영업을 자행하고 있다. 광고주의 입맛에 맞는 기획 프로그램의 제작을 약속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방송 보도·제작과 광고영업의 분리라는 미디어로서의 최소한의 공공성마저 뒷전으로 내팽개친 지 오래다.

 

종편이 활개치는 시대의 우리 사회 모습은 암울한 잿빛일 수밖에 없다.

종편은 이미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한 조·중·동과 함께 광고시장의 포식자로 군림할 것이고, 지역방송과 종교방송, 중소 신문사들은 생존을 위협받는 벼랑 끝에 내몰릴 것이다.

 

종편의 광고 직접영업은 광고를 무기로 한 대기업의 대언론 영향력을 키울 위험이 크다.

그 결과 언론시장은 기득권의 이해에 충실한 의제로 도배되고, 상대적으로 노동자와 농민, 서민 등 우리 사회 99%의 목소리가 전달될 통로는 축소될 게 뻔하다.

한마디로 미디어 생태계가 붕괴돼 여론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보수여론의 독과점 시대가 한층 강화되는 것이다. 아울러 방송사들 사이의 과도한 시청률 경쟁으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이 넘쳐날 게 분명하다.

 

이는 한국 사회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민주주의의 위기에 봉착했음을 의미한다.

여론 다양성은 민주주의가 존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한 사회의 여론이 일방통행식으로 흐를 때 민주주의는 절대 꽃필 수 없다.

더욱이 종편이 누리고 있는 온갖 특혜와 거리낌없는 조폭적 영업 행태는 민주주의의 기본가치공정성과 건전한 시장질서를 유린하는 행위다.

 

 

보수여론의 독과점과 민주주의의 상실

 

 

이 땅의 건전한 양심세력이 종편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편에 부여된 온갖 특혜를 없애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여론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절체절명의 싸움이다.

그런 점에서 종편 4사의 합동 축하쇼에 민주당 등 야당이 불참하기로 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종편 4사와 개국 축하 인터뷰를 한 것과 대비된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종편 특혜 철회와 미디어렙법 입법을 요구하며 오늘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

종편 개국과 함께 이 땅의 양심·진보세력의 투쟁도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다. 이 싸움에 온 국민이 함께해 주기를 기대한다.

 

[한겨레  2011. 12. 1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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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도 ‘신문·방송 겸영’ 4년만에 “잘못된 결정”
 

 

지난 7월 필라델피아 항소법원, FCC결정 무효화
“추진과정서 충분한 정보 안줘”…여론독과점 지적

 

 

 

» ‘프로메테우스 라디오’ 컨퍼런스 프로메테우스 라디오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위아레디나우’(WARN) 라디오 방송이 지난해 7월 열린 연합미디어컨퍼런스(AMC)에서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있다. <얼라이드미디어> 누리집 갈무리
» 공공라디오 확산운동 퍼포먼스 공공라디오 확산운동을 벌여온 방송인들이 지난해 12월 미국 방송연맹 사옥 앞에서 훌라후프 묘기를 부리며 공공라디오 규제법안의 철폐와 촉진법안의 입안을 촉구하고 있다. <텔섬바디라디오> 누리집 갈무리

지난 7월 미국 필라델피아 제3연방순회 항소법원은 20개 주요 도시에서 신문·방송(신방) 겸영을 허용한 연방통신위원회(FCC)의 2007년 결정을 무효화했다.

법원은 연방통신위원회가 신방 겸영 법안 추진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신방 겸영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의견 제시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법원이 이처럼 표면적 이유로 추진 과정의 미비함을 문제삼았지만, 실제론 신방 겸영으로 인한 여론 독과점을 지적한 것으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신방 겸영이 세계적 추세라는 한국 방송통신위원회의 주장과는 상반된다. 미국에서도 공화당은 규제를 풀어 개별 방송국에 더 많은 상업적 자유를 주려 하지만, 민주당은 규제를 강화해 거대 미디어기업의 여론 장악을 피하고, 여론 다양성을 높이는 쪽으로 움직여왔다.

 

미국은 1975년부터 한 회사가 한 지역에서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는 것을 금지해왔다. 그런데 미디어그룹들이 신방 겸영 허용을 꾸준히 요구해 2007년 연방통신위원회는 20개 대도시에 한해 신방 겸영을 허용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공공라디오 운동을 확산해 온 ‘프로메테우스 라디오 프로젝트’ 등 언론단체들의 문제제기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이 단체에서 신방 겸영 금지 소송을 전담하는 앤드루 제이 슈워츠먼은 신방 겸영의 범위를 제한한 이 결정을 두고 “다양한 미디어 환경을 누릴 공공의 권리를 위한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대법원에서도 이번과 같은 판결이 내려지면 미국의 신방 겸영은 원상복귀된다.

 

하지만 사실 미국 20개 도시에서 허용해온 신방 겸영조차 한국과 비교하면 ‘여론 독과점’ 폐해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미국의 신방 겸영은 해당 도시의 1개사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돼, 우리처럼 전국에 배포되는 신문이 역시 전국에 방영되는 종합편성방송을 무더기로 겸영하는 경우는 없다.

신방 겸영을 추구하는 쪽도 대부분 기존 미디어그룹들로 겸영에 사활을 걸었다기보단 기존 매체와의 융합을 통한 효율성 제고로 수익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크다.

그렇지만 신방 겸영 허용 이후 디즈니, 폭스 등이 꾸준히 인수·합병(M&A)을 하면서 거대 미디어그룹들의 여론 독과점 현상이 점점 심해졌다.

그 결과 미 언론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기업 편향적·보수적이 되어가고 있다. 자본력은 약하지만 영향력이 큰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이 그나마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방 겸영이 자본력과 영향력을 모두 지닌, 전국을 대상으로 한, 보수 일색의, 대형 신문사들이 모두 참가하는, 기형적 형태여서 여론 독과점 현상은 미국과 비교할 수도 없이 큰 상황이다.

 

최진봉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이와 관련해 30일(현지시각)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공공재의 영역에까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려는 것에 대해선 자본주의의 첨단을 걷는 미국에서도 제한을 두고 있다”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미국은 소수자(마이너리티)들의 발언권을 높여 여론 독과점 현상을 완화하려 애쓰는 데 반해, 이명박 정부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방적으로 보수언론에 힘을 더 싣는 쪽으로 나아갔다”고 말했다.

 

또 최 교수는 “종편에 대해선 편향적 정보와 무제한의 경제적 이윤을 누릴 수 없도록 제도적 규제를 해야 한다”며 “현재 종편은 공중파가 누리는 혜택은 누리면서 케이블채널로 남아 책임은 안 지려고 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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