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그리스 위기, 한국의 오해

道雨 2011. 12. 2. 10:11

 

 

 

              그리스 위기, 한국의 오해 

 

정말 큰 문제는 복지가 아니다.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는 것이다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올해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초빙교수로 있는 동안 그리스를 찾아갔다.

고대 민주주의의 발상지였던 아테네는 파업과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국제공항은 폐쇄되고 피레우스(피레에프스)항의 선박은 멈추었다. 25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리케이온을 설립했던 신타그마 광장에는 성난 시민들의 행렬이 가득했다.

깃발이 펄럭이는 거리에는 최루탄 연기가 매캐하게 퍼졌다. 경찰에 의해 시위대가 중상을 당하자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다.

철학과 토론의 나라에서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최근 한국의 일부 언론은 그리스의 위기가 과도한 복지 때문에 발생했다고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과연 그런가?

천만에, 그리스의 복지 수준은 결코 높지 않다.

그리스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수준인 20%선에 불과하다.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도 비슷한 수준이다.

 

오히려 복지가 많은 나라가 망해야 한다면 독일·스웨덴이 먼저 망해야 한다. 이 나라들의 복지 지출은 30% 수준이다. 그러나 독일·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경제가 튼튼한 나라이다. 고부가가치 제조업의 경쟁력이 매우 높다.

미국은 제조업을 해외로 옮기고 노동자를 해고하지만, 독일과 스웨덴은 숙련기술자를 위한 관대한 복지를 제공한다. 조세부담률이 높아도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그리스의 복지 가운데 연금에 대한 비난이 많다. 과연 연금혜택이 많을까?

20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한 사람은 연금으로 약 180만원을 받았는데, 최근 경제위기 이후 120만원으로 줄었다. 30년 동안 노동자로 일한 퇴직자는 140만원의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은퇴한 노인 이야손은 “수입은 없는데 퇴직연금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복지예산 중 연금이 50%를 차지하지만, 개인 수령액이 많은 것은 아니다. 30년 정도 일하다 퇴직하면 300만원 이상 연금을 받는 독일 노동자와 큰 차이가 난다.

 

그리스의 정말 큰 문제는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문제이다.

그리스 경제에서는 해운과 관광이 주력이다. 2002년 성급하게 화폐통합을 추진하면서 산업경쟁력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해운업은 동유럽과 외국으로 이전했다. 국내총생산 대비 16%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은 10% 수준으로 감소했다.

정부는 저금리로 국채를 발행하며 구조조정과 투자에 소홀했다.

2004년 그리스는 올림픽을 개최하며 공공건물의 50%를 유럽의 지원을 받았다. 부채로 지하철을 건설했지만 돈을 내는 승객은 거의 없다. 지하철 광장에는 복권을 파는 상인들이 붐빈다.

 

다음으로 큰 문제는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는 문제이다.

2004년 우파정부는 법인세 인하와 소득 면세자 확대 등 감세정책을 추진했다. 현재 조세부담률은 20% 수준으로 오이시디 평균인 26%보다 낮다. 조세 도피가 경제의 30%에 달한다.

수영장을 만든 주택에는 높은 재산세를 부과하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는다. <비비시>(BBC) 방송에서 “고소득 자영업자, 의사, 치과의사는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부패도 심각하다. 해마다 1인당 1800달러의 뇌물을 지출한다.

 

그리스 정부는 최근 자산을 매각하고 긴축정책을 단행했다. 공무원을 감원하고 급여를 대폭 삭감했다. 서점 주인 니코스는 시집을 내려놓으며 “시위에 나선 공무원노조나 시위를 막는 경찰이나 모두 월급이 삭감되기는 마찬가지”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청년실업은 43%나 된다. 빈곤율은 20%를 넘는다. 최근 세금도 인상해 부가세가 10%선에서 무려 23%로 인상되었다. 결국 무능한 정부의 경제 실패와 부패로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난이 가중되었다.

 

한국의 보수파는 그리스 위기를 ‘복지국가 때리기’에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다.

그리스 위기의 원인은 감세정책과 무능한 정부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부자감세를 추진하고 4대강 사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 그리스와 같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기업과 고소득자의 탈세를 제대로 막지 못한다면 세수는 더욱 쪼그라들 것이다.

 

막대한 국가부채를 만든 한국 정부야말로 그리스 위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애꿎게 복지국가 탓하지 마라. 복지가 발전한 독일과 스웨덴의 경제가 튼튼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