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그 베일을 벗겨라

道雨 2011. 12. 2. 10:00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그 베일을 벗겨라 

 

민주주의는 여러 경제원리를 포용할 수 있는 개방적 통치원리다
민주주의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로 현대사를 기술한 책은 중학교 교과서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자유민주주의’로 쓰면 되고 ‘민주주의’라고 쓰면 안 된다는 것이 우리 현실정치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유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원래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는 냉전시대에 서구의 입헌민주주의를 공산국가의 인민민주주의에 대비시켜 부르는 말이었다.

앞에 ‘자유’라는 말을 붙인 것은 서구의 입헌민주주의가 국민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뜻이라면 우리 현대사를 ‘자유민주주의’라는 말로 기술하는 것이 특별히 문제 될 게 없다.

 

그런데 일부 국가의 우파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게 되면서 자유민주주의 개념에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가 슬그머니 끼어들게 되었다.

 

사유재산제도는 생산수단의 사유를 핵심으로 하며, 시장경제의 핵심은 경제적 자유에 있다. 그래서 기업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아무리 자유롭고 민주적인 체제라도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요컨대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하는 논쟁은 결국 자본주의를 민주주의의 필수요소로 볼 것인가 하는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개념이 이렇게 변질된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다.

우리나라의 자유당과 자유민주연합, 일본의 자유민주당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문제는, 이렇게 변질된 개념을 헌법재판소가 그대로 받아들였고, 헌법학자들도 대부분 이에 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잘 나가다가 사유재산 운운하는 대목에서 커다란 가시 하나가 목에 ‘턱!’ 하고 걸리는 느낌이다.

이 판례는 독일의 판례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것인데, 독일의 판례에는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에 관한 언급이 없다.

 

더욱 큰 문제는 다수설·판례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우리 헌법의 최고원리로 본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이 민주주의를 최고원리로 보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그런데 우리 헌법의 역사를 보면 역사학자들의 견해가 옳음을 알 수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유신헌법에서 처음 등장한 말이다. 제헌헌법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삼지 않았으며, 오히려 국가의 통제가 개인의 경제적 자유에 우선함을 분명히 선언하였다.

이 규정은 제2공화국 헌법에서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이어졌다. 그렇다면 제헌헌법과 제2공화국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헌법이라고 할 것인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반은 매우 중대한 헌법 위반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자본주의를 뼈대로 하지 않는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중대한 헌법 위반이 되며,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하면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을 피할 길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 사건에서는 ‘중대한 위반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탄핵이 기각되었지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반은 얘기가 다르다.

 

설사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하지 않더라도, 그런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법률들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되면 위헌결정으로 법률이 효력을 잃게 되어 대통령은 더 이상 정책을 추진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헌법은 통일정책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정당의 강제해산 사유인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배로 보는 것이 다수설·판례이다.

‘민주주의’는 안 되고 ‘자유민주주의’만 된다는 것이 이렇게 커다란 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패망의 징조들을 보이고 있다.

그들에게 묻는다.

자본주의가 망하면 민주주의도 같이 망해야 하는가? 자본주의가 망하면 우리나라는 더 이상 민주국가가 아닌가?

 

대답은 분명하다.

자본주의가 망해도 민주주의는 망하지 않으며, 우리나라는 여전히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는 여러 경제원리를 포용할 수 있는 개방적 통치원리이다. 민주주의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표방한 정치체제 중에서, 경제질서를 민주주의의 개념에 포함시키고 그것을 최고 정치원리라고 주장한 것은 인민민주주의가 거의 유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우리 헌법의 최고원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헌법 제1조 제1항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이다”라고 바꾸어야 한다.

 

오승철 헌법학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