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선관위, 헌재 결정 무시… ‘통 큰 반항’ 그 배경은?

道雨 2011. 12. 31. 10:30

 

 

 

선관위, 헌재 결정 무시… ‘통 큰 반항’ 그 배경은?

                                                                             (블로그 ‘사람과 세상 사이’ / 오주르디 / 2011-12-28)

 

 


헌법재판소가 트위터, UCC,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활용한 사전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93조1항에 대한 헌법소원사건에서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공직선거법 93조1항 ‘한정위헌’ 결정, 잘된 일

당장 내년 4월 총선부터 SNS, 블로그를 이용한 선거운동이 가능해졌다. 선관위는 그동안 트위터, 블로그 등에 대해 공직선거법 93조1항을 적용해 정당과 후보에 대한 지지와 반대 행위를 엄격히 규제해 왔다.

공직선거법 93조1항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 도화 인쇄물이나 녹음, 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 첩부, 살포, 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

※ 선관위는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이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에 해당한다고 해석해 엄격히 규제 해왔다.

트위터를 이용한 유명인들의 투표독려 ‘인증샷’조차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며 불법이라고 주장해 온 선관위다. A라는 연예인의 정치적 성향이 야당인 경우 그가 ‘인증샷’을 트위터에 유포하게 되면 결국 야당과 야당 후보 지지를 암시하는 셈이 돼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는 게 선관위의 입장이었다. 가히 ‘코미디’ 수준이다.

헌재의 결정으로 선관위가 똥물을 뒤집어쓴 꼴이 되고 말았다. 머쓱하기는 검찰도 마찬가지. 선관위 입장을 지지하며 ‘인증샷 수사’에 적극성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에 맞서는 선관위의 ‘통 큰 짓’

‘통 큰 짓’을 벌이고 있다. 선관위가 헌재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선관위가 빼든 카드는 ‘공직선거법 254조2항’. 공직선거법 93조1항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이 났다 해도 254조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SNS 선거운동은 여전히 단속대상이라고 우긴다.

선관위는 93조1항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행위’를 규제하는 조항일 뿐”이라며 “93조가 위헌이라도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사전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는 254조에 의해 규제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공직선거법 제254조 (헌재가 93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자 선관위가 SNS 규제를 계속하기 위해 꺼낸 조항)

② 선거운동기간 전에 이 법에 규정된 방법을 제외하고 선전시설물·용구 또는 각종 인쇄물, 방송·신문·뉴스통신·잡지, 그 밖의 간행물, 정견발표회·좌담회·토론회·향우회·동창회·반상회, 그 밖의 집회, 정보통신, 선거운동기구나 사조직의 설치, 호별방문, 그 밖의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헌재가 공직선거법 254조를 염두에 두지 않고 결정을 내렸을까? 그럴 리 만무하다.


선관위 똥배짱, “헌재 결정 관계없이 SNS 규제하겠다”

93조와 254조를 들여다보면 어디까지를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행위’로 볼 수 있는지, 어느 수준을 ‘사전선거운동’으로 봐야 하는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헌재의 결정은 이러한 모호성을 충분히 감안한 결정이었다.

헌재는 93조와 254조의 모호성과 충돌을 의식해 결정문에 이렇게 설명을 해놓았다. 93조1항의 ‘180일 규정’은 물론 254조 2항의 ‘사전선거운동 제한’까지를 겨냥한 결정이다.

● “선거가 연속적으로 치러지는 상황에서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장기간 지지·추천·반대를 할 수 없게 한 것은 상시적으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 “선거운동을 상시적으로 허용하면 조기 과열될 우려가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정치적 관심과 열정의 표출을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헌재 결정문에서)

생각해 보라.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려고 한다고 치자. 선거일이 가까운데 어찌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겠는가. 선거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정치적 의사표현’은 선거와 연결된다. 사전 선거운동 금지규정은 결국 상당기간 동안 국민의 정치표현의 자유을 억압하는 게 된다.


내년 여당 선거 걱정하나?

헌재는 사전선거운동을 금지하는 254조까지 염두에 두고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선관위는 헌재의 결정은 93조만 해당하는 것이라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 헌재의 결정을 무시할 정도로 대단한 배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SNS, 블로그 등을 이용한 선거운동에 유리한 쪽은 야당. 여권은 불리하다. 선관위가 헌재의 결정에 불복한다는 건 결국 정부·여당을 돕는 행동을 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 선관위가 내년 여당 선거를 걱정하는 건가?

SNS, 블로그 등을 이용한 선거운동에 유리한 쪽은 야당. 여권은 불리하다. 선관위가 헌재의 결정에 불복한다는 건 결국 정부·여당을 돕는 행동을 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 선관위가 내년 여당 선거를 걱정하는 건가?

선관위원 선출과 구성을 보면 그 배짱의 출처가 어딘지 쉽게 짐작이 간다. 신분보장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기관이 선관위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정치권력의 영향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구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구성(대법원장 지명 몫 1명 결원) 

위원 9명 중 3명은 대통령이 임명, 3명은 국회에서 선출,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그런데 거대여당 체제에 대법원장이 대통령 측근이라면 어떨까? 중립성 보장은 어림도 없다.

9명의 위원 중 3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3명은 국회에서 선출된다. 나머지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입법, 사법, 행정 3부가 참여해 위원을 구성하겠다는 취지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친정권’ 일색이다.

대통령이 자신과 정치적 이해를 함께하지 않는 사람을 위원으로 임명할 리 없다. 행정부 몫 3인은 모두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보면 맞다. 또 대법원장의 말 한마디로 사법부 몫 3명이 결정된다. 대법원장이 정권의 측근이라면 어떻게 될까. 3명 모두 친정권 인사로 짜여질 게 뻔하다. 국회 선출 3인도 정치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당이 다수라면 3인의 균형이 여당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선관위 ‘통 큰 반항’, 정치적 중립성 잃었기 때문

선관위원 가운데 야당 성향 인물은 고작 한둘 뿐. 이들의 힘으로는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다수를 막을 방법이 없다. 지난 10·26선거 당시 야권 지지 성향이 높은 지역의 투표소 위치가 대폭 바뀐 것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선관위 디도스 공격에 내부자의 연루 가능성이 거론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선관위의 지나친 ‘정권 편향성’ 때문이다.

SNS, 블로그 등이 사전 선거운동에 활용된다면 크게 유리해지는 쪽은 야당이다. 한나라당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어떻게 하든 SNS 등의 선거운동을 규제하지 못한다면 ‘지고 들어가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선관위의 몽니도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다고 보여진다. 헌재의 결정으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SNS 선거’에 대한 정부·여당의 당혹감이 친정권적인 선관위원들에게 반영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매년 한 차례 이상 선거가 치러진다. 선거 때마다 ‘180일 규정’에 묶인다면 국민이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간은 대폭 줄어든다. 사전선거운동 금지법은 정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이다. 폐지돼야 맞다.

선관위도 손봐야 할 대상이다. 정치적 중립이 심각하게 훼손된 기관이 어찌 선거 관리를 공정하게 하겠는가.

 

오주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