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스크랩]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道雨 2012. 3. 2. 10:44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원문】


去隱春皆理米(거은춘개리미) - 간 봄을 그리매,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모동거질사곡옥시이우음) - 모든 것이 울면서 시름하는구나.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아동음내질호지사오은) -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兒史年數就音墮支行齊(아사년수취음타지행제) - 얼굴에 주름살이 졌구나.

目煙廻於尸七史伊衣(목연회어시칠사이의) - 눈 내두를 사이에

逢烏支惡知作乎下是(봉오지악지작호하시) - 만나 보게 되오리

郞也慕理尸心未行乎尸道尸(랑야모리시심미행호시도시) - 낭이여, 그리는 마음에 가는 길

逢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봉차질항중숙시야음유질하시) - 다봊 굴허헤 잘 밤 이시리.


【현대어 풀이】

지나간 봄을 그리워함에

모든 것이 울어서 시름하는구나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 지니려 하는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만나보게 되오리.

죽지랑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에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인들 있으리오?(죽어서 다시 만나리라.)


【어휘 풀이】

<去隱春> : 간 봄. 지나간 봄

<皆理米> : 그리매. 그리워함에

<毛冬居叱沙> : 모든 거사. 모든 것이

<哭屋尸以憂音> : 우리 시름. 울어 시름. 울면서 시름하고 있는데.

<阿冬音> : 아람, 아름다움

<乃叱好支賜烏隱> : 나토샤온. 나타내신

<兒史> : 즈시. 모양이.

<年數就音> : 샬쯈. 주름살

<墮支行齊> : 디니져. 지니려 하는구나. 잡히려 하는구나.

<目煙廻於尸七> : 눈 돌친. 눈을 돌릴

<史伊衣> ; 사이예. 사이에

<逢烏支惡知> : 맛보압디. 만나보기를

<作乎下是> : 지오리. 지으리. 되오리.

<郞也> ; 낭이여. 낭(郞)이여.

<慕理尸> : 그릴. 그리워하는.

<心未> : 마사미. 마음의

<行乎尸道尸> : 녀올 길. 갈 길이.

<逢次叱巷中> : 다봊 굴허헤. 다북쑥 구렁에.

<宿尸夜音> : 잘 밤. 잘 밤이.

<有叱下是> : 이시리. 있을까?


【개관】

작가 : 득오

연대 : 신라 효소왕(孝昭王.692∼702) 때

갈래 : 향가, 서정시

성격 : 추모적, 찬양적

형식 : 향가, 8구체

내용 : 화랑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을 개인 서정을 빌려 노래한 것


주제 ; - 죽지랑에 대한 사모, 연모의 정

       - 죽지랑의 인품과 그에 대한 추모

출전 : <삼국유사> 권2, '효소왕대 죽지랑'

의의 : 주술성이나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는 순수한 서정시로, 낭도(郎徒)의 세계를 보여 준 작품이다.

- 8구체 향가로 화랑의 세계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 주술성이나 종교적 색채가 없는 순수한 서정시다.

 

해설

 

득오가 죽지랑(竹旨郎)을 사모하여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삼국유사> 권2 효소왕대 ‘죽지랑조(孝昭王代 竹

旨郎條)’에 관련설화와 함께 가사가 전한다.


이 노래의 이름은 양주동(梁柱東)이 ‘모죽지랑가’라고 칭한 이외에도 오구라(小倉進平)는 ‘득오곡모랑가(得

烏谷慕郎歌)’라 하였고, 김선기(金善琪)는 ‘다기마로 노래’, 김사엽(金思燁)은 ‘대마로가’ 혹은 ‘죽지랑가’ 등

으로 불렀다.


삼국을 통일한 후 화랑도가 세력을 잃어 과정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보여 주는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노래

이다. 노래 제목은 <삼국유사> 본문의 기록에 따라 뒤에 붙인 것이다.


 


배경 설화】

『신라 제 32대 효소왕 때에 죽지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得烏)라고 하는 급간(級干: 신라 관등의 제 9위)

이 있었다. 화랑도의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매일 출근하더니, 한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았다. 죽지랑이 그

의 어미를 불러 아들이 어디에 갔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당전(幢典: 오늘날의 부대장에 해당하는 신라 때의 군직) 모량부(牟梁部: 사람이름)의 익선아간(益宣阿干:

아간은 신라 관등의 제 6위)이 내 아들을 부산성(富山城)의 창직(倉直:  곡식창고를 지키는 직책)으로 임

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급히 가느라고 낭께 알리지 못하였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죽지랑은 이 말을 듣고,


"그대의 아들이 만일 사사로운 일고 그 곳에 갔다면 찾아 볼 필요가 없지마는 공사로 갔다니 마땅히 가서

 위로하고 대접해야겠소. “


죽지랑은 익선의 밭으로 찾아가서 가지고 간 떡과 술을 득오에게 먹인 다음, 익선에게 휴가의 청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 마침 간진이라는 사람이 추화군 (지금의 밀양) 능절(能節)의 조 30

석을 거두어 성 안으로 싣고 가다가, 죽지랑의 선비를 존대하는 풍도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의 막히고 변

통성이 없는 것을 품위가 없고 천하게 생각하여, 가지고 가던 벼 30석을 익선에게 주면서 득오를 보내도록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또 진절사지(珍節舍知: 신라 관직의 제13위)가 쓰는 말안장을 더 주었

더니 드디어 허락하였다. 조정의 화주(花主: 신라에서 화랑을 관장하는 관직)가 이 이야기를 듣고 익선을

잡아다가 그의 더럽고 추한 마음을 씻어 주고자 하였는데, 도망쳐 버렸으므로 그의 아들을 대신 잡아갔다

때는 동짓달 몹시 추운 날인데 성 안의 못에서 목욕을 시키니 얼어 죽었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모량리사

람은 모두 벼슬에서 쫒아내게 하였고, 그 지방 사람들에게 심각한 불이익을 주었다. 처음에 득오가 죽지랑

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어 부르니 이것이 모죽지랑가다.』


소재의 상징성】

이 설화에는 두드러지는 소재가 별로 없다. 그러나 죽지랑(竹旨郞), 죽지령(竹旨領) 등에 '대[竹]'가 등장하

는 것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대는 번성하는 푸르름, 번식력이 강한 상록(常綠)이라는 점에서 소나무

와 비견되는 영생과 불변을 상징한다. 신화적으로는 신성성, 신과의 교감처, 신의 강림처, 축사(逐邪) 등의

상징성이 있고, 그 외에 동양에서는 지조, 절개, 군자, 선비 등의 상징물로 쓰이고 있다.


【다른 작품과의 관련성】

화랑(花郞)과 관련된다는 면에서 융천사의 <혜성가>,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한 묶음이 될 수 있고, 추

모적이란 면에서는 <제망매가>와 한 묶음이 될 수 있다. 작자가 화랑이라는 면에서는 월명사(月明師, 승려

이면서 화랑이었음)의 향가와 관련이 있다. 현재 전하는 향가 중에는 8구체 향가가 이 노래와 <처용가>

둘 밖에는 없다.


감상】

모죽지랑가 설화는 크게 세 단락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단락은 죽지랑의 낭도인 득오가  익선이라는 자에게 끌려 부산성 창고지기로 고역한 이야기와, 이 말을

들은 죽지랑이 무리를 이끌고 가서 뇌물을 주고 구출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이 기록에서 눈 돌릴 사건 은 뒤에

대왕이 이 사실을 알고 익선이 살던 모량리인(牟梁里人)으로 하여금 일체의 관직 및 승직에 오르지 못하게 하

였다는 인과응보담이다. 둘째 단락은 노래의 주인공이 되는 죽지랑의 출생담이다. 이 출생담은 죽지랑이라는

인물을 영웅시하는 데서 전래한 설화다. 영웅들의 전형적인 출생설화와 같다. 셋째 단락은 득

오가 지었다는 노래 내용이다.


<삼국유사>의 본 기록을 검토할 때, 둘째 단락과 셋째 단락 첫머리 기술에 주목하게 된다. 이 조목의 단락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첫째 단락이다. 그리고 일연은 여기에다  가장 큰 비중을 둔 것이다. 나머

지  2,3단락은 1단락의 내용을 보완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얼핏 보기에는 <삼국유사>의 편집 서술에는

선후를 무시하고 무질서하게 편집한 것 같으나, 실은 내용의 비중을 두고 생각한 편집 구성이란 점을 유의

할 일이다. <삼국유사>는 일연에 의해 철저하게 재편집 구성되었고, 그것은 내용에 따라 경중을 두었다.


첫째 단락에서 보여준 죽지랑의 득오곡 구출담과, 익선이 보응담이 이 조목의 핵심이다. 둘째 단락의 죽지

랑 출생담과, 셋째 단락의 <모죽지랑가>는 이에 따른  나머지 이야기들이다. 둘째 단락 죽지랑의 출생 애

기를 하나의 설화로 보는 데는 별다른 이론이 없다. 죽지랑의 출생은 부모인 술종공(述宗公)부부가 죽지령

에서 만난 거사(居士)를 꿈에 보고 태기가 있어 잉태하여 죽지랑을 낳았다는 점과, 몽중 거사와 죽지령 거

사는 동일인이란 점과, 거사가 죽은 뒤 죽지령 북쪽 봉우리에다 장사지내고 미륵을 만들어 무덤 앞에 세웠

다는 것이다. 다음, 셋째 단락은 전혀 <모죽지랑가>의 내용뿐이다.


일연은 전승 설화를 <삼국유사>속에 채록하면서, 특히 구전 설화로서 기이한 내용에는 유독 관심을 가졌

고, 그런 신이한 사건들은 일연의 승려로서의 신분, 나아가서는 이런 종교적 이적이 포교와 매우 밀접한 관

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2, 3단락에서 보여준 신이한 면모나 내용은 모두가 시공을 초월한 불교의 윤회 및

 내세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죽지랑가>는 민요적인 성격이 있다. 다시 말해 죽지랑의 출생담이 하나의 훌륭한 설화로 받아지듯, <모

죽지랑가>도 전승 추도가로서 널리 입에서 불려진 노래라 하겠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인생의 허무와 내세

에 대한 종교관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 이 노래는 하나의 훌륭한 추모가요의 유형으로 불교사상에 뿌리 박

은 노래라 본다.


그러면 이 설화 내지는 노래는 어떤 분위기에서 나온 것인가. 아마 그 당시에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세우는

데 크게 이바지한 화랑에 대한 관심이나 평가가 다소 낮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 이유는 이 설화나 노래

가 화랑의 자랑스러움보다는 죽지랑의 시련에다가 자신의 고난을 보태어 하소연하려고 한 점이 주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득오를 괴롭힌 익선은  죽지랑보다 더한 세력가였다. 죽지랑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가

진 지도자로서 숭앙을 받는 인물이었다면, 익선은 권력을 이용해 탐욕을 채우는 지배층의 횡포를 보여준다

고 짐작된다. 따라서 이 시대는 고매한 이상이 무너지고 지배층이 횡포를 자행하던 사태가 벌어지는 때였

고, 득오는 이에 항거하며  이 노래를 불렀으리라 생각된다.


이 노래는 득오가 죽지랑의 생존시에 지은 것이라는 견해(양주동)와 죽지랑이 죽은 뒤에 지은 것이라는 견

해(김동욱), 그리고 죽지랑이 효소왕 때의 인물이 아니고 진덕여왕 때의 인물로 그때 작품일 것이라는 설

등 이설이 많다.


노래를 보면 지나간 봄을 그리며 시름에 젖고, 또 죽지랑의 아름답던 모습이 쇠함을 바라보는 득오곡의 낭

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정서가 작품의 주된 정조를 형성하고 있다. 한때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하

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그 후 여러 대에 걸쳐 대신으로서 존경과 찬미를 한 몸에 받았던 노화랑(老花郎)의

쇠잔한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득오곡의 심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한 변하지 않는 존경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작품의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죽지랑의 생존 시에 지어진 작품이라는 설과, 그의 사후에 그를 추모하여 지

은 노래라는 설이 학계에 제기되어 있다. 전자에 따를 때 이 노래는 득오가 앞서 익선에게 끌려가서이거나

그 일이 있은 뒤, 낭을 사모하여 지은 노래가 되고, 후자의 경우 죽지랑이 죽은 뒤 그의 덕을 사모하여 추

모 찬송한 추모가의 성격을 지닌다.


어떻든지 이 작품은 지난 날 위대하였던 노화랑 죽지랑이 일개 아간 벼슬의 익선에게 수모를 당할 정도로

그 위엄과 위의를 상실해 간 화랑도의 세력을 잃은 모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죽지랑가>는 화랑 죽지랑의 무리인 득오곡이 자기가 모시던 죽지랑이 죽자 그를 그리워하며 읊은 노래

이다.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인 죽지랑을 찬양하면서 그를 그리는 마음이 행여 무심치 않다면, 저 세상 어느

곳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적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함께 화랑을 기리고 그리워하는 노래로서,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과 인

생 무상의 정감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주술성이나 종교적인 색채가 다른 작품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는 점

에서, 순수 서정시에로 진일보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삼국 통일의 위업을 완수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후 여러 대에 걸쳐 대신으로서 존경과 찬미를 한 몸

에 받았던 노화랑(老花郞)의 쇠잔한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득오곡의 심정에서, 삼국을 통일한 이후 화랑도가

실세(失勢)하여 가는 과정을 암시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는,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화랑 죽지랑의 무리인 득오곡이 자기가 모시던 죽지랑이 죽자 그를 그리워하며 읊은 노래이다. 고매한 인

품의 소유자인 죽지랑을 찬양하면서 그를 그리는 마음이 행여 무심치 않다면, 저 세상 어느 곳에서라도 다

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적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함께 화랑을 기리고 그리워하는 노래로서,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과 인

생 무상의 정감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주술성이나 종교적인 색채가 다른 작품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는 점

에서, 순수 서정시에로 진일보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삼국 통일의 위업을 완수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후 여러 대에 걸쳐 대신으로서 존경과 찬미를 한 몸

에 받았던 노화랑(老花郞)의 쇠잔한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득오곡의 심정에서, 삼국을 통일한 이후 화랑도가

실세(失勢)하여 가는 과정을 암시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는,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노래는 화랑 죽지랑의 탁월한 인품과 고역(苦役)에서 구해 준 덕을 사모하여 부른 향가로 화랑의 세계

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더불어 대표작이다. 이 노래의 해독상 제작 연대를 ①죽지

랑의 생존 시에 지은 것(양주동), ②타계(他界)한 후에 지은 것(김동욱), ③ 죽지랑이 효소왕 때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진덕여왕 때의 작품으로 보는 설(신수식) 등 가장 이견(異見)이 심하기도 하다.


이 노래는 죽지랑에 대한 애정이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더욱 정신적 가열 작용을 일으키게 하

는 순수 서정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가버린, 돌이킬 수 없는 봄[靑春(청춘)]에의 회한이(1∼2행) 숭

앙(崇仰)의 정으로 이입(移入)된 죽지랑의 늙음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폭발되고(3∼4행), 이로 인해 더욱 만

나고 싶은 애정적 충동은(5∼6행) 드디어 만날 수 없음에 대한 처절한 탄식으로 마무리되는(7∼8행) 득오

(得烏)만의 정서적 서경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7∼8행은 10구체 향가의 낙구(落句)인 9∼

10행과 같은 탄사(嘆詞)를 가진 유사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절묘한 은유적 표현으로 전개되어 있다. '그리

워 할 마음의 가는 길'이라는 감정의 구상화와 '다북쑥 마을'이 지니는 황촌(荒村)은 곧 작자 득오가 낭을

만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오는 정신적 초토(焦土)나 폐허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자의

정서적 처절성이 가열하면 해질수록 죽지랑이라는 화랑의 인품과 덕의 높음을 더욱 실감 있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죽지랑(竹旨郞) : 신라의 명장.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의 공을 세움. 신분은 진골. 벼슬이 17관등 중 2

등인 이찬에까지 오름. 부친이 돌미륵을 세운 뒤에 태어났다고 하는 비화가 있어 '기이'편에 수록이 된 듯

하다. 



출처 : 한국문인협회 영주지부
글쓴이 : 園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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