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민영화’ 뒤에 맥쿼리의 미소가
… 런던에서는 하수관 건설에 드는 비용을 누가 내느냐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런던에 물을 공급하는 템스워터를 지배하는 회사는 글로벌 투자은행인 맥쿼리다.
지금 영국에서는 런던 일대의 시민 1800만여 명에게 용수를 공급하는 기업 ‘템스워터(Thames Water)’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런던 하수도 시설의 노후화로 매년 3900만t의 폐수가 템스 강으로 새어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런던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슈퍼 하수관(Super Sewer)’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7년 동안 40억 파운드 규모의 비용이 드는 대역사(大役事)다. 그런데 누가 이 돈을 낼 것인가. 런던 시민(=정부)인가, 템스워터인가? 만약 템스워터가 정부 산하 기관이거나 공기업이라면, 제기될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템스워터는 매년 벌어들이는 엄청난 돈을 소유주(주주)에게 배당하는 사기업이다. 게다가 마술 같은 금융기법을 동원해 세금은 거의 내지 않는다. 이런 철저한 사기업의 사업(예컨대 슈퍼 하수관)에 왜 시민들이 ‘퍼주기’를 해야 하는가?
템스워터의 소유주(주주)는, 세금 피난처인 룩셈부르크에 등록된 ‘켐블워터 홀딩스(Kemble Water Holdings)’다. 자금운용을 위한 페이퍼 컴퍼니다. 이러한 켐블워터 홀딩스를 지배하는 회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명한 글로벌 투자은행인 맥쿼리다.
그러나 영국 정부와 시민들은 템스 강의 수질 악화를 방관할 수 없는 처지다. 슈퍼 하수관 공사가 추진되면 세금이나 상하수도 가격 인상 등으로 런던 시민들은 매년 평균 40~ 120파운드(약 7만~21만원)를 더 내야 한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혜자는 템스워터 주주들이다. 수익은 금융자본이 챙기고 비용은 사회적으로 부담하는 구조. 이는 1989년 전면적인 ‘물 민영화’ 조치를 감행한 마거릿 대처 전 총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물 민영화의 두 가지 흐름
‘물 민영화’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영국처럼 상하수도 시설의 운영권은 물론 소유권까지 민간자본에 넘기는 경우를 ‘완전 민영화(full privatization)’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운영권만 일정 기간 민간자본에 ‘위탁’하는 ‘공공·민간 파트너십(PPP)’ 방식이다.
그런데 ‘완전 민영화’는 영국·칠레 두 나라에서만 전면적으로 채택된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일반적인 민영화에서는 PPP 방식이 절대 다수다.
세계적으로 학계에서나 언론에서나 두 방식 모두를 민영화라고 부르는 이유는,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시민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물 민영화가 아니라 민간위탁(참여)을 추진 중’이라고 하는데, 이야말로 조삼모사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물 민영화’, 즉 ‘물기업을, 국가와 민간자본 중 어느 쪽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이 나은가’는, 아직 세계적으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는 문제다. 물 민영화는 결코 세계적 대세가 아니다. 미국 물기업연합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 민간기업이 생산·공급한 물을 마시는 인구는 7300만명(전체 인구의 20%)에 불과하다.
물 민영화 찬성론자들은 국가(정부)가 물기업을 소유·운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폐해들을 지적한다.
예컨대 정부는 물 수급 시스템에 투자할 재정도 없는 데다, 심지어 ‘정치적 인기’를 위해 물 가격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물의 품질이 떨어지는가 하면, 시민은 물이 싸기 때문에 낭비한다.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자면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 그러니까 물을 민간자본에 맡기라는 이야기다.
민간자본은 수익만 얻을 수 있다면, 정부가 재정 투입을 꺼리는 부문에까지 투자할 것이다. 더욱이 비용절감에 적극적인 민간자본은 과감한 혁신과 기술발전에 매진할 것이기 때문에 물산업 전반의 서비스와 질이 향상된다. 물론 가격이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절실하게 필요한 제품(가령 물)이라면 비싼 가격을 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더욱이 물 값이 오르면 낭비도 줄일 수 있으므로 일거양득이다.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 공공정책학과 리처드 G. 리틀 교수는 물산업을 다루는 인터넷 사이트(waterindustry.org)에서 “민영 물기업은 투자·혁신·기술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가격을 매길 것이다. 이에 따라 재무적·재정적 책임성이 강조됨은 물론 효율성도 개선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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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Newsis 2000년 4월8일 물 민영화로 인한 물 값 폭등에 항의하는 볼리비아 시민들이 코차밤바 시 중앙광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런 물 민영화 찬성론자들이 주로 드는 사례가 바로 1997년 필리핀 마닐라 시 동부 지역의 물 민영화 조치다. 1997년에는 수도를 통해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주민이 300만명에 불과했으나 2009년에는 610만명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24시간 내내 수도에서 물이 나오는’ 가구도 26%에서 98%로 증가했다.
반면 필리핀과 같은 개발도상국인데도 엄청난 사회적 분쟁을 일으킨 경우가 있다. 바로 1999~2000년, 볼리비아의 ‘코차밤바 물전쟁’ 사건이다.
볼리비아에서 일어난 ‘물 전쟁’
볼리비아는 1980년대의 외환위기 이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물 민영화’를 받아들인 경우다. 1999년 볼리비아의 3대 도시 중 하나인 코차밤바 시는 상하수도 네트워크의 운영권(40년)을 아구아스(Aguas del Tunari)라는 외국계 기업에 넘긴다. 이 아구아스의 실질적 지배자는 미국의 건설기업인 벡텔로, 투자한 돈의 15% 이상의 수익을 매년 보장받는 방식이었다.
아구아스는 공식적인 상하수도 시설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이 개발한 수원(水源)에까지 미터기를 달고 물 값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상 코차밤바 시의 물 공급을 독점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시민들이 지붕에 올라가 빗물을 대야에 받으려 해도 면허증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아구아스는 인수하자마자, 물 수급 시스템을 확장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비용이라며 물 값을 평균 35%나 올린다. 그러면서 “물 값을 내지 않으면 물 공급도 없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절실하게 필요한 자원이라면 비싸게 사는 것이 ‘적정 가격’이고 시장원칙이 맞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코차밤바 주민 처지에서는 어이없는 이야기다. 1인당 GDP가 월 100달러 남짓한 상황에서 물 값이 월평균 20달러로 오른 것이다. 더욱이 35%라는 인상폭마저 아구아스 측의 공식 주장일 뿐이다. 주민에 따라서는 이전 요금의 2~3배로 오른 경우도 많았다.
격분한 시민들은 2000년 1월 시의 중앙광장을 점거하고 ‘민영화 철회’를 외치며 군·경과 격돌했다. 아구아스 경영진은 시외로 도피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같은 해 4월 계엄령까지 선포했으나 시위가 계속 격화되자 결국 아구아스와 한 계약을 폐기한다.
이후 아구아스 측은 볼리비아 정부를 대상으로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4000만 달러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코차밤바 물 전쟁’의 원인 중 하나는 볼리비아 정부의 무능이다. 위탁업체에 너무 큰 권한(사실상의 물 독점권)을 부여했고 가격통제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영국 같은 선진국 정부도 민영 물기업의 주인인 금융자본을 당해내지 못한다.
영국의 경우, 물기업 중 76%가 사모펀드의 지배를 받는다. 이런 기업들의 공통점은 매년 엄청난 배당금을 투자자나 형제 기업 혹은 해외 조세 피난처에 있는 지주회사에 지급한다는 것이다. 공기업이었다면 미래의 인프라 투자를 위해 내부에 유보했을 자금이다.
앞에 나온 템스워터의 경우, 2008년 3월 이후 지금까지 5년 동안 주주에게 지급한 배당금이 14억 파운드(약 2조4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영국의 진보적 신문 <옵서버>에 따르면, 템스워터가 5년 동안 낸 법인세는 0파운드에 가까우며 오히려 정부로부터 4370만 파운드(약 760억원)를 환급받았다.
이런 구조가 어떻게 가능할까. 템스워터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연례 보고서(2011년 3월~2012년 3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간 템스워터는 6억4780만 파운드 규모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그런데 이자로 내야 할 돈이 무려 4억2320만 파운드다. 영업이익에서 이자 등 영업외비용을 빼고 세금을 내면 당기순이익이 나오는데 2억4720만 파운드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당기순이익 중에서 일부는 배당하고 일부는 미래 투자 등의 목적으로 내부에 유보한다. 그런데 템스워터는 당기순이익보다 많은 2억7950만 파운드를 배당했다. 결국 이 기간 템스워터의 총결산은 3230만 파운드 손실이다.
회사가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의 태반이 이자로 나갔는데, 여기서 남은 순이익보다 더 많은 돈을 주주에게 배당금으로 건네는 것이다.
“왜 정부가 템스워터를 지원해야 하나”
이자비용이 이토록 높은 이유는 부채 규모가 83억9760만 파운드에 달하기 때문이다. <옵서버>는 템스워터가 이렇게 많은 부채를 지게 된 이유는 ‘빌려서 배당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민주당 소속 사이먼 휴스 의원은 “템스워터의 소유자(기업)들이 돈을 빌려서 자기들끼리 배분한 것이다. 이 돈은 모든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 (템스워터의 설비에) 장기 투자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겨우 10여 년 사이에 템스워터의 부채가 18억 파운드에서 80억 파운드로 대폭 늘어난 이유가 여기 있다.
또한 템스워터가 부채를 늘린 다른 이유가 있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다. 과잉 부채를 통해 이자를 많이 발생시켜 수익을 줄이는 방식으로 ‘징세 기반’ 자체를 축소시킨 것이다.
더욱이 총부채 중 60억 파운드 정도는 ‘은행 이외에서 대출받은 돈’이다. 템스워터가 계열사들로부터 많은 돈을 빌린다는 의미다.
예를 들자면, 계열사가 템스워터에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면 된다. 이 경우, 전체 그룹 차원에서는 엄청난 금융수익이 발생하지만 정작 템스워터의 수익은 줄어 세금을 안 낼 수 있다. 템스워터는 2010년에는 세금으로 2600만 파운드를 냈으나 2011~2012년에는 7960만 파운드를 환급받았다.
템스워터의 소유자들은 큰 수익을 올리지만 해당 기업의 재무구조는 악화되는 구조다. 이는 템스워터가 소비자들을 위한 서비스 개선은 물론 미래 상황(예컨대 템스 강으로의 누수)에 대비할 자금력도 가지지 못한 기업이라는 의미다. 그러면서 정부에 손을 벌린다.
더욱이 이렇게 부채가 많은 기업이 도산이라도 하는 경우엔 정부가 납세자의 돈을 모아 구제금융을 제공해야 한다.
사이먼 휴스 의원은 <옵서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템스워터가 주주들에게 2000년 이후 제공한 배당금 중 50%만 유보했어도 21억 파운드를 비축할 수 있었다. 슈퍼 하수관 건설에 필요한 경비의 절반이다. 오랫동안 도리에 어긋난 대출과 너무 높은 배당금을 지급해 스스로 재무상태를 악화시킨 기업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미국 시민단체 ‘식량과 물 감시’ 대표인 위노나 호이터는 물산업 정보 사이트(waterindu stry.org)에서 진행된 논쟁에서 “민간기업의 경우, 주주를 위해 높은 수익률을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서비스를 떨어뜨리고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물은 ‘기본권’이며, …주주가 아니라 시민들에게 직접 책임지는 기구에 의해 가장 잘 통제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이종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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