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새정치 당명 개정, 바꿔서 뭐 하려고? 그들만의 리그, 찬성 vs 반대 명분 없긴 마찬가지

道雨 2015. 1. 5. 14:57

 

 

 

          ‘잊혀진 야당’이 더 불쌍하다

 

 

 

<잊혀진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여성 화가 마리 로랑생의 시는 번역 과정에서 너무 심하게 의역이 된 경우다. 흔히 “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고들 말하지만, 실제 이 시의 원문에는 ‘여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그래서 “죽음보다 더 불쌍한 것은 잊혀짐”이다.

세상의 모든 잊혀진 것은 슬프다.

 

요즘 야당을 볼 때마다 이 시가 자주 떠오르는 것은 ‘잊혀짐’만큼 지금의 야당 처지를 적절히 묘사하는 단어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새로운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주자들끼리의 싸움이 가열되고 있지만, 대다수 유권자한테는 관심 영역 밖의 일이다.

이 시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야당은 권태로운 야당, 슬픔에 젖은 야당, 병을 앓는 야당, 버림받은 야당, 쫓겨난 야당, 죽은 야당의 차원을 넘어서 이제는 국민의 뇌리에서 아스라이 잊혀져 가는 야당이 되고 말았다. 당명 개정을 둘러싼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이, 그나마 야당을 망각의 늪에서 끌어낸 성과라고나 할까.

 

존재감 없는 야당, 저항은 하지만 결코 위협이 되지는 못하는 야당은 권력의 최대 응원자다.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이렇게 큰소리를 탕탕 치는 것도, 헌법재판소가 8 대 1이라는 비상식적 표차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것도, 검찰이 비선 세력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아무도 믿지 않는 수사 결과를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존재가 미미한 야당이 있기에 가능하다.

 

대의민주주의 체제는 좋든 싫든 선거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아무리 시민사회가 분노하고 들끓어도, 야당이 선거에서 정권의 실정을 정당화해주는 ‘추인 기구’ 노릇만 하는 현실 앞에서는 모든 게 허망해진다.

그것은 단지 야당의 패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부추기며, 진보개혁세력 전체의 사기 저하와 침체라는 악순환을 동반한다.

4월에 있을 재보궐선거는 또 어떻게 될 것인가. 헌재의 민주주의 압살에 대한 정치적 추인의 대못 박기로 끝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존재감 없는 야당의 위상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신당과 지지율에서 별 차이가 없는 데서도 확인된다. 신당 태동 움직임은 그 자체가 수명을 다한 야당의 참담한 현주소다.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전당대회를 치르고 나면 지도력을 회복하고 지지율이 되살아나 수권정당으로 환생할 것으로 믿을 사람은 없다. 오히려 전당대회 뒤가 더 걱정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당이 야권의 희망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역량부터가 의심스럽다. 기존 야당에 대한 환멸감에 의존하는 신당은 출발부터 한계를 지닌다.

신당 출범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야권 분열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기존의 야당은 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새로운 야당은 분열의 씨앗이 되는 상황, 여기에 지금의 야권, 나아가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딜레마가 있다.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야권에 대해서는 사실 더 해줄 말도 마땅히 없다. 다만 야당은 우선 자신들의 ‘보잘것없음’, 너나 할 것 없이 잊혀진 존재라는 서글픈 현실부터 직시했으면 한다. 야당 안에서 이름깨나 있는 정치인들도 자신들이 걸출한 준마가 아니라 조랑말에 불과함을 인정했으면 한다.

자신의 욕망 안에서 민심을 읽는 한 패배는 계속된다. ‘야당의 주류화’란 원대한 목표를 접고, 고작 ‘야당 내 주류화’나 좇는 한심한 자세로는 영원히 그 모양 그 꼴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서로를 보듬고, 현재의 정당 틀을 넘어서는 대담한 활로를 모색하는 역전의 발상도, 이런 처연한 인식에서부터 비로소 가능해진다.

 

마리 로랑생의 시의 원제는 ‘진정제’(Le Calmant)다. 온갖 불행을 겪은 이에게 잊혀진다는 것은 고통을 가라앉히는 진정제라는 의미일까.

야당의 경우도 잊혀진 존재로, 그저 부스러기 권력에 안주하며 살아가면 그럭저럭 행복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야당에 대한 진정제는 될지언정, 고통받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진정제가 될 수는 없다.

 

을미년 새해, 문제는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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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 당명 개정, 바꿔서 뭐 하려고?
그들만의 리그, 찬성 vs 반대 명분 없긴 마찬가지
육근성 | 2015-01-05 12:14:1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당파 간 정쟁으로 몸살을 앓던 나라가 조선왕조다. 사소한 이견이 피비린내 나는 당파 싸움으로 번져 서로 죽고 죽이기를 반복하곤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7세기 중반에 일어났던 효종의 복제 논란이다.


새해 첫날 불거진 당명 개정 논란, 17C 당파싸움 닮아

 

인조 때부터 서인(송시열)에게 권력을 빼앗겨 온 남인은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효종의 계모 자의대비의 복상기간을 놓고 송시열 측을 공격한다. 효종이 인조의 제2왕자이지만 왕통을 계승했으니 장자나 마찬가지라며, 자의대비의 복상에 대해 3년설을 주장하고 나섰다. 차남이기 때문에 1년설이 맞다고 주장한 송시열 측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복제를 핑계로 서인을 권력에서 밀어내려 했던 남인의 계략은 송시열이라는 산을 넘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송시열 측은 남인의 주장이 사서(四書)의 주()을 멋대로 어긴 것이라며, 남인의 대표격인 윤휴를 유교 이념에 반하는 행위를 한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처형했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때문이다. 당권 후보들의 입에서 당명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당내 찬반 논란이 불거지더니, 이것이 계파 간 싸움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찬성 vs 반대, 역시 그들만의 리그

 

지난 1일 박지원 의원은 새해 첫 일정으로 광주를 찾아, 현재의 당명을 민주당으로 개정하겠다고 주장했다.

당명부터 시작해 당의 모든 것을 혁신함으로써 새로운 민주당을 만들어 강한 야당으로 거듭나겠다는 게 개정의 이유라고 밝혔다.

 

박 의원과 함께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문재인 의원 또한 당명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 1일 무등산 산행 자리에서 문 의원은 새정치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려 한다며, 지금 당명(새정치민주연합)에는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의 합당정신이 담겨 있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안 전 대표의 양해를 얻겠다고 말했다.

 

 

 

유력한 두 당권 주자가 당명 개정 주장을 펴자마자 반응은 명확하게 엇갈렸다.

박 의원이 주장한 민주당지지

문 의원의 새정치민주당지지

당명 개정 반대 등 세 부류로 나뉘었다.

호남계는 주로 박 의원의 주장에, 친노계는 문 의원의 주장에 각각 공감을 표한 반면, 김한길·안철수계와 빅2(박지원-문재인)를 제외한 나머지 당권주자들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안철수 전 대표측이 생각하는 새정치 이념이 훼손되지 않는다면 당명을 개정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전병헌의원과 이인영 의원도 민주당이라는 명칭을 되살리는 쪽으로 당명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권 주자인 박주선 의원은 당명 개명을 주장한 박지원 의원과 문재인 의원을 싸잡아 비난했다. “총선과 대선 등 선거 패배에 책임져야할 분들이 출마를 강행하면서 모든 책임을 당명에 떠넘기고 있다바꿔야 할 것은 당의 이름이 아니라 당의 리더십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당명 평균수명 2.6, 바꾸고 또 바꿔도 그 자리

 

현재의 당명은 지난해 3월 안철수 측의 새정치연합과 김한길 대표의 민주당이 통합하면서 생겨났다. 그런 만큼 안 의원의 반발이 가장 크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명칭에 대해 절반의 지분이 있다고 자처한 안 의원은 입장문을 내고 당명 개정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당명에 새정치를 포함한 것은 낡은 정치를 바꾸라는 국민의 요구와 의지를 담은 것이라며 당명 때문에 당이 집권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금은 당명보다 당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경쟁할 때라며 당명 개정을 주장한 빅2를 향해 날을 세웠다. 김한길 계로 분류되는 민병두 의원 역시 안 의원과 궤를 같이했다.

 

국민의 눈에는 당명 개정 논란이 어떻게 비쳐질까. 곱게 보일 리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생겨난 정당은 110개가 훨씬 넘는다. 게다가 여야 할 것 없이 대선과 총선 등 주요 선거 때마다 당명을 바꿔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11번이나 당명을 바꿨다. 당명 하나의 평균 수명이 2.6년에 불과하다.

 

 

 

당명 개명이 3류 정치쇼나 허접한 선거 마케팅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그동안 개혁, 변화, 분골쇄신, 민생 등을 외치며 수십 번 당명을 바꿔왔지만, 야당이 달라졌다는 긍정적 평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개명 주장 또한 당원 표를 얻기 위해 벌이는 고루하고 부패된 레퍼토리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확 다가온다.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새정치빼면 새정치 안 돼? 소가 웃을 일

 

당명 개명에 반발하는 측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현재의 당명을 바꾸면 새정치에 대한 의지와 실천이 퇴색될 거라는 식의 주장에 동의할 국민이 있을까.

야당의 입에서 새정치얘기가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아예 당명에 새정치를 큼직하게 새겨 넣은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간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새정치는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실체도 없다. ‘새정치가 뭔지 그 개념마저 여전히 모호하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새정치인지 각론 한 줄 정리된 게 없다.

2.6년 마다 개혁을 외치며 당명을 바꿔온 결과는 퇴보다. 이런 판국에 당명 개정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당권주자들과, 개념조차 모호한 새정치를 운운하며 당명 개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김한길·안철수계. 도찐개찐이다. 언제까지 이런 야당을 바라봐야하나.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 개정 논란은 17세기 서인과 남인이 벌인 복식 논쟁과 흡사하다. 복식 논쟁이라는 허울을 쓴 권력투쟁이나 당명 개정으로 포장된 표 싸움, 그놈이 그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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