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조선역사 쇠퇴 제1주범은 세도정치

道雨 2016. 11. 19. 12:07

 

 

 

19세기 조선, 무슨 일이 있었나

[김갑수의 역사에세이] 조선역사 쇠퇴 제1주범은 세도정치
김갑수 | 2016-11-18 13:24:3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세기 조선, 무슨 일이 있었나


[김갑수의 역사에세이]조선역사 쇠퇴 제1주범은 세도정치 38

 

우리의 근현대사는 망국과 식민지와 분단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망국의 시점부터 말하는 것보다는 망국 이전 100년 동안 조선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근현대의 역사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지 읺겠습니까?

 

사실 19세기는 조선 역사에서 가장 덜 알려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것도 19세기부터 속개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근현대사를 다 다루고 나면 17,8세기의 숙종, 영조, 정조시대로 되돌아가서 제 역사 에세이 집필을 완료할 작정입니다. 비전공자가 만드는 졸렬한 글이지만 많이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조선 역사를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100년 단위로 볼 때 19세기는 가장 부정적인 시간이었다. 물론 임진, 병자 양란의 치욕을 겼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조선인들은 이 누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성공하고 18세기 영정조시대로 들면서 융성한 부활의 시간을 일구어냈다.

 

조선 20대 임금 숙종의 재위 연대가 1674 ~ 1720년, 21대 영조는 1724 ~ 1776년이며 22대 정조는 1776년에 즉위하여 1800년에 죽음과 함께 재위를 마쳤다. 다시 말해 조선의 18세기는 정조의 시대와 함께 막을 내린 것이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사실은 18세기의 조선은 세계 최상급의 선진국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와 경제 등의 면에도 두루 적용된다. 조선의 18세기는 ‘때 이른 절정’을 구가했던 15세기에 버금가는 시간이었다.

 

정조의 죽음(1800년)과 거의 동시에 새로운 세기가 열리면서 조선의 국운이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은 역설적이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중차대하다. 정조는 조선의 건국이념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성취한 지도자였다. 그럼에도 정조의 죽음 직후부터 조선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은 조선의 19세기가 정조의 구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음을 의미한다.

 

19세기 들어 조선에는 세 가지 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졌다. 그것은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흥성’과 ‘사회적 변질’ 등으로 요약된다. 19세기 들어 조선 정치에는 붕당정치가 사라지고 세도정치가 나타났다. 또한 조선은 18세기부터 상공업이 발달하여 경제규모가 복잡하게 확장되었다. 반면에 정정은 매우 불안해졌다. 이에 따라 유학이 쇠퇴하면서 정치인들과 인민들의 윤리 기강이 함께 균열하기 시작했다.

 

1811년 서북에서 일어난 이른바 ‘홍경래의 난’을 필두로 1833년에는 서울에서 ‘쌀 폭동’이 일어났고, 1862년에는 최대의 농민 민란이 발발하여 삼남지방의 거의 전 지역을 휩쓸었다. 이후 제국주의 외세의 침탈과 동학항쟁(전쟁) 등으로 조선이라는 국체가 걷잡을 수 없이 동요하게 되었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19세기 들어 갑자기 쇠퇴와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변화 때문이었다. 환기하자면 세도정치의 출현, 대상인집단(재벌)의 생성, 윤리 기강의 해이 등이다.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세도정치는 외척의 발호와 일당독재의 형태로 나타났다. 과거에도 외척의 정치 개입은 더러 있었지만 그때에는 이를 견제 내지 퇴치할 수 있는 ‘붕당’이 있었다. 그런데 붕당정치가 소멸되자 ‘세도정치 – 일당독재’가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은 붕당정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다음으로 19세기 조선에는 경강상인, 개성상인, 평안상인 등의 대상인집단(재벌)이 출현했는데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더욱 큰 경제적 이익을 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들이 만들어 낸 경제력을 새로운 사회구조로 승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재벌들은 유감스럽게도 전자의 길을 선택했다.(오늘의 재벌처럼) 이것 즉, 돈이 권력과 결탁하는 일 역시 세도정치 세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세도정치는 지방 행정을 급격히 타락시켰다. 이것은 세도정치 세력이 지방 수령의 진퇴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령들의 탐학은 인민들의 삶을 피폐시켰으며 이에 따라 인민들의 윤리 기강도 자연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19세기는 순조, 헌종, 철종이 재위한 시기였다. 공교롭게도 이 세 군주는 즉위 과정상에 불안 요소가 있었다. 그들은 안동김씨, 풍양조씨 등의 세도정치세력에 눌려 제대로 운신조차 하지 못했다. 요컨대 조선이 쇠퇴하게 된 제1주범은 세도정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세도정치는 유학적 정치윤리에서 심하게 일탈한 정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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