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북-미 ‘비핵화 속도전’에 숨은 암초 살펴야

道雨 2018. 5. 1. 11:03




북-미 ‘비핵화 속도전’에 숨은 암초 살펴야

 




남북의 ‘판문점 선언’ 이후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 문제의 일괄 타결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대로 가면 북-미 양쪽이 모두 만족할 확실한 결론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상황을 낙관하기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를 암초를 조심해야 하는 국면이다.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29일(현지시각) 언론에 나와,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리비아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 것이 그런 경우다.

볼턴이 리비아와 북한은 차이가 있다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다. 그렇다 해도 북-미 대화가 무르익는 상황에서, 북한이 거부하는 리비아 모델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선 것은 대화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

볼턴의 발언이 협상 전술상 강경책을 구사해야만 더 많이 얻어낼 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면, 사태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협상 파트너에게 굴욕을 강요하면 판이 깨질 수 있다

 

미국의 일부 언론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협상에 대해 우려를 쏟아내는 것도 과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유력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북한이 먼저 모든 핵무기를 포기해야 하며, 그 후에 협정을 위한 대화나 제재 해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완전한 핵폐기 없이는 협상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은, 사실상 협상을 하지 말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이 신문은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비핵화 일정을 설정하지 않아 문제라고도 했는데, 비핵화 일정을 정하는 것은 북-미 회담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과한 편협한 지적이다.


오히려 현재 국면에서 더 합리적이고 전향적인 발언을 하는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판문점 선언이 완전한 비핵화를 확인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매우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북-미 정상회담이 3~4주 안에 열릴 것이라고 날짜를 앞당기기도 했다.


북-미 대화의 실질적 주역이라 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북한이 비핵화를 달성하도록 도와줄 준비가 됐으며, 완전한 비핵화 방법론에 대해 북-미 양쪽이 의견 접근을 이뤘음을 시사했다.

북한의 신속한 움직임과 트럼프 대통령의 맞대응을 보건대, 비핵화 과정이 의외로 빨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가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핵심은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주고받는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다.

북-미가 일괄 타결을 이루되,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 과정에서 단계를 최대한 압축해 통 크게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 정부는 이 과정에서 양쪽의 불일치를 조정하면서 ,필요할 경우 제3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2018. 5. 1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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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842718.html?_fr=mt0#csidx163d3b13a333b7288a46ec4d589aa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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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리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판문점 선언에 이어 북한 핵실험장 공개 추진까지 비핵화 일정이 숨가쁘다.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정상회담 때보다 여건도 좋고 기대도 높다.

한국과 미국 대통령 모두 임기 초반이란 점도 평화협정과 그 이후 일정의 전망을 밝게 한다.


무엇보다 합의문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주는 건 북한의 태도 변화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에 따르면, 이미 2012년 무렵부터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 등 사회주의권 개혁개방 정책 연구를 김일성대학에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4월 노동당 전원회의의 ‘경제건설’ 선언에 이어 “종전·불가침만 보장하면 왜 핵 갖고 어렵게 살겠냐”며 ‘비핵화’를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이 ‘배고픈 핵보유국’ 노선을 포기하고, 외자유치를 통한 경제개발 노선을 선택했다고 볼 만하다.


우리에게도 평화 정착과 함께 경제 회생과 번영의 기회가 주어졌다.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잡았다’는 한 칼럼 표현도 과하지 않다.

냉전시대 유산인 과도한 국방·안보 비용을 그대로 짊어지고는, 4차 산업혁명도 어렵고 복지국가 실현도 벅차다. 인구절벽·소비절벽·일자리절벽으로 꽉 막힌 경제에 돌파구를 열 새 성장동력을 북방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 게 창조경제다. 

  

남북이 평화·번영으로 가는 길엔 걸림돌도 적잖다. 치밀하게 일정표 짜고 돌부리도 미리 피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과거의 ‘실패’를 제대로 알아야 미래의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다.

그동안 비핵화 협상 실패 책임을 북한에만 전가하는 주장이 많았다.

절반만 맞는 얘기다.


1994년 카터 방북으로 위기를 넘긴 뒤 10·21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으나,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5년 기한의 경수로 사업이 합의 3년 만에 착공식을 올렸다. 미국이 한국·일본에 재정부담을 떠넘기려다 아이엠에프와 맞물려 좌초 위기를 맞자, 북은 핵사찰 대신 대포동 미사일로 응수했다.


2005년 6자회담에서 끌어낸 9·19 합의도, 미국이 마카오 한 은행(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해 위기를 맞았다. 이듬해 10월 북의 첫 핵실험 강행과 유엔 제재로 이어졌다.


중간선거에 패한 부시 정부가 대북정책을 바꿔 협상에 적극 나서면서, 2007년 2·13 합의가 다시 이뤄졌다. 북한은 냉각탑까지 폭파하며 비핵화 의지를 과시했다.

그러나 검증을 둘러싼 북-미 간 이견에다, 일본에 이어 한국의 새 정부도 중유 제공을 보류하자, 북한은 다시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수십년 쌓인 상호 불신은 디테일에 숨은 악마를 용케도 찾아내 협상을 좌초시켰다.


‘전쟁’을 위협하던 북한의 파격적 변신은 물론 의외다. 그러나 핵과 경제를 두 손에 쥘 수 없을 때 경제를 위해 핵을 포기해야 하는 건 어찌 보면 상식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북의 진정성을 검증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북이 요구하는 ‘체제 보장’에도 내부 점검이 필요하다.


북한 체제를 붕괴시켜야 북핵도 없어진다는 ‘붕괴론’에 오래 집착해온 세력들이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즈음엔 이들의 주장이 특히 강력했다. 수십년 냉전 동안 ‘반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분단’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한국과 미국의 일부 냉전세력들이다. 무기판매에 이해관계를 공유해온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그 연계세력, 색깔론과 안보상업주의로 정치·경제·언론의 기득권 동맹체제를 구축해온 국내 수구보수 세력이 대표적이다.


‘악마’ 북한과 이에 맞서는 자신들을 부각하며 ‘적대적 공존’을 해왔다. 협상이 무르익을 때마다 전쟁·충돌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갈등 소재를 부각시켰다.

‘훈령’을 조작하고 ‘불바다’ 영상 공개로 적대감을 부추겨, 결국 협상을 깨도록 한 것도 이들이다. 북의 변신을 인정하기 어렵고, 아직은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쪽에선 ‘위장평화쇼’ ‘어처구니없다’고 폄하한다.

‘비핵화’ 약속 받아내라더니, 정작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자, 김 위원장 육성이 없다, 구체적 방안이 빠졌다고 시비다.


비핵화-체제보장은 동시에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도, 비현실적인 일정표를 주장하는 건 몽니다. 이들은 앞으로도 북한 인권문제 등 평화로 가는 길에 돌부리를 놓으려 숨은 ‘악마’를 찾아나설 것이다.

이들이 정치판과 여론시장을 장악하던 시절에는 이런 억지가 먹혔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이젠 한줌도 안 되는 그들이 갈라파고스에 갇혔다.

그래도 남북이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게 조심은 해야 한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42714.html?_fr=mt0#csidxa149b2ec240a0bd9e2fe77ba3d167d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