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고 잠적했다 후송된 서울 보라매병원 응급실에서 경찰 관계자들과 직원 등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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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폭로’ 침소봉대하는 한국당과 보수 언론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적자국채 관련 폭로’가 혼탁스러운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이 3일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다가 4시간 만에 경찰에 발견되는가 하면,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은 “재정 조작 정권” “국정 농단” 운운하며, 무분별한 의혹 부풀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폭로 내용의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논란이 될 사안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신 전 사무관의 폭로에는 사실과 추측이 혼재돼 있다.
첫째, 신 전 사무관은 2017년 11월 대규모 초과 세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 비율을 높이려고 청와대가 기재부에 적자국채 추가 발행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15조원 규모의 초과 세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바이백(국채 매입)이 일시적으로 취소되고 적자국채 추가 발행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4조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했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8.3%에서 38.5%로 0.2%포인트 높아진다. 의미 있는 수치로 보기 어렵다.
또 2017년 국가채무 비율은 그해 3월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국가채무 비율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청와대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국가채무 비율을 높이려 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당시 청와대가 적자국채 추가 발행 의견을 냈고, 기재부 실무진은 부정적이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을 지는 청와대가 중요한 정책 결정과 관련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분명한 근거 없이 외압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결국 기재부 의견대로 적자국채 추가 발행을 하지 않은 것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셋째, 신 전 사무관은 초과 세수 상황에서 이자 비용이 들어가는 적자국채 발행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초과 세수가 발생했다고 반드시 국채를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채 상환은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예를 들어 빚을 지고 있는 가계가 현금이 생겼다고 무조건 빚을 갚는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한 지출을 하거나 투자를 할 수도 있다. 국채 발행 여부는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당시 ‘100대 국정과제’ 추진을 위한 재원 마련은 문재인 정부에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신 전 사무관이 국채 발행 업무를 맡고 있는 실무자의 입장에서 당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난 1일 유튜브에서 “2017년 업무를 처음 담당했을 때부터 적자성 국채 발행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체 정책결정 과정 중 일부분만을 경험한 것을 근거로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로 보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사안을 무조건 키우면서 정치 쟁점화하는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의 행태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3일 “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최대 양심선언”이라고 했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나라 살림을 조작하려 했다”며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유했다. 자유한국당은 ‘나라살림조작 사건 진상조사단’도 만들었다.
<조선일보>는 “전 정권 먹칠용으로 적자국채를 발행하려 했다면 국정 농단이 따로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관계에 관한 정확한 검증이 없는 무책임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 2019. 1. 4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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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향한 '음모론'과 김동연 전 부총리의 '품격'
신재민 전 사무관 지인-가족 호소문 "뉴라이트-사익추구 사실 아냐"
신 전 사무관이 폭로한 내용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심각한 문제인지, 과연 공익제보로 볼 수 있는지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신 전 사무관의 극단적 선택을 부추긴 건 그의 신상을 둘러싼 이른바 '음모론'이다.
그동안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배경을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3월 기재부의 KT&G 동향 보고 자료를 입수해 언론에 제보했고, 5월쯤 MBC 보도가 나간 뒤 정부에서 내부 문건 유출자 색출에 나서 갈등하다, 결국 지난 7월 기재부를 나왔다고 밝혔다.
급기야 신 전 사무관이 유서를 통해 해명하고, 지인들과 가족까지 나서 "너무 가혹한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며 호소문을 내기에 이르렀다.
신 전 사무관 "차라리 박근혜 정부 때 이렇게 행동했으면..."
신 전 사무관은 이날 오전 고려대 커뮤니티인 '고파스'에 올린 글에서 "나는 일베(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 이용자)도 아니고 자한당(자유한국당)도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도 하고 싶지 않다"면서 "정말 그냥 나라가 좀 더 좋아지길 바랐을 뿐이었는데"이라며, 자신을 추켜세우는 극우·보수 진영과 선을 그었다.
공무원 신분이던 지난 2016년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고 털어놨던 신 전 사무관은 "저는 지금 박근혜 이명박 정부였다 하더라도 당연히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 생각한다"면서 "차라리 그때 이렇게 행동했으면 민변에서도 도와주시고 여론도 좋았을 텐데..."라며, 자신을 향한 진보 진영의 무관심을 안타까워했다.
그를 검찰에 고발한 현 정부를 향해서도 "(내가 부족하고 틀렸다고 해도) 이번 정부라면 최소한 내부고발로 내 목소리 들어주려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난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재발방지 이야기해줄 줄 알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 청와대가 KT&G 사장교체를 지시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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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전 사무관의 대학 선후배 등 지인들도 이날 오후 늦게 '고파스'에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신재민 전 사무관의 주장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다만 순수했던 한 친구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마음먹기까지 겪었던 고통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으며, 신 전 사무관에 대해 뉴라이트 출신이라는 등 사실무근의 '찌라시' 및 가짜 뉴스가 유포되고 있는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 전 사무관과 자신들이 활동했던 대학 동아리도 근로 청소년들의 중학 과정을 가르치면서 시작된 순수한 교육봉사 동아리로, 어떤 정치적·정파적 입장도 표방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정부와 일개 전직 사무관은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싸움이 아니라, 그의 의견에 귀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국민을 향해서도 "신재민 전 사무관과 관련하여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다, 뉴라이트였다느니, 국가기밀로 사익추구 활동을 했다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들은 "결과 여부를 떠나서, 그 동기와 과정에서만큼은 그는 공익을 목표로 행동했다"면서 "사회적인 진보를 한 발 이룬 이 시점에서, 그가 하려 했던 내부고발 역시 과정과 의도가 선하다면 그 결과에 대해 너무 가혹한 책임을 묻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언론을 향해서도 "일부 언론의 경쟁적, 자극적 보도가 신 전 사무관과 그의 지인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면서 "전 사무관과 정부의 대결 구도보다는,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없는지, 정부의 주주권 행사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 좀 더 다뤄달라"고 요청했다.
신 전 사무관의 부모 역시 "저희 아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 국민 여러분과 정부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민변을 포함한 주변 분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부모는 "심성이 여린 재민이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주위에 폐를 끼친 점을 많이 괴로워했다"면서 "본인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 나선 일이 생각보다 너무 커져 버리기도 했고, 스트레스가 심각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려 한 것 같다"며 국민의 이해를 구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 "소신과 정책의 합리적인 조율은 다른 문제"
▲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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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부총리는 신 전 사무관을 향해 "앞으로도 절대 극단의 선택을 해서는 안 됩니다"라면서 "신 사무관은 공직을 떠났지만,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우리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청년입니다. 또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극단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 됩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픈 가족사를 언급하기도 했다.(관련기사: '흙수저 장관' 김동연은 왜 '아래로부터 반란' 꿈꾸나)
"나도 신 사무관 또래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남은 가족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아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 아끼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런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김 전 부총리는 "그 충정도 이해가 된다, 공직자는 당연히 소신이 있어야 하고 그 소신의 관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도 34년 공직생활 동안 부당한 외압에 굴한 적은 결단코 없다"면서 "그러나 소신이 담긴 정책이 모두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소신과 정책의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조율은 다른 문제"라면서 국고국 한 실무자의 한계를 에둘러 지적했다.
"기재부에서 다루는 대부분 정책은 종합적인 검토와 조율을 필요로 합니다. 어느 한 국(局)이나 과(課)에서 다루거나 결정할 일도 있지만 많은 경우 여러 측면, 그리고 여러 국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많습니다. 최근 제기된 이슈들도 국채뿐 아니라 중장기 국가 채무, 거시경제 운영, 다음 해와 그다음 해 예산 편성과 세수 전망, 재정정책 등을 고려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국고국뿐 아니라 거시, 세수, 예산을 담당하는 부서의 의견도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특정 국 실무자의 시각에서 보는 의견과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보다 넓은 시각에서 전체를 봐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해 주기 바랍니다."
신 전 사무관이 제기한 '청와대 외압' 논란 역시 정상적인 정책 형성 과정임을 강조했다.
"부처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특정 실·국의 의견이 부처의 결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부처의 의견이 모두 정부 전체의 공식 입장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부처, 청와대, 나아가서 당과 국회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보완될 수도, 수용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정책형성 과정입니다."
특히 김 전 부총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신 전 사무관뿐 아니라, 이번 사태에 지나치게 매몰된 정치권과 우리 사회를 향한 강한 일침이기도 했다.
"우리 경제에 할 일이 산적해 있습니다. 빨리 논란이 매듭지어지고 민생과 일자리, 그리고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해야 할 일에 매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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