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나그네
출처: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http://cafe.daum.net/saseamo/JCx6/715
까도 까도 끝이 없는 기무사와 박근혜 세력의 친위쿠데타 전모 ②
-사조직 알자회 출신이 약진하며 준비한 친위군사반란-
1980년 4월, 당시 계엄사 합수부장 겸 보안사령관인 전두환 중장이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되자, 외신들은 일제히 전 장군이 권력을 틀어쥐고 가장 유력한 대한민국의 실세로 부상했음을 예언했다. 당시 그는 외신의 이러한 분석에 철저하게 부인으로 일관했으나, 이후 그는 그 예상대로 ‘피의 5.18 광주’까지 감수하며 결국 대통령까지 오른다.
우리는 바람의 실체를 눈으로 보지는 못한다. 바람은 보이는 존재가 아니므로 그러나 바람이 흔드는 나뭇잎이나 가지의 떨림으로 바람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이는 전두환이 80년 4월 당시 권력의 실세로 부상했다는 분석에 손사래를 쳤던 것과는 달리 그가 결국 권력을 부당하게 찬탈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모든 힘의 중추였던 중정과 보안사를 다 휘어잡았던 걸로도 이미 숨길 수 없었다.
같은 이유로 촛불시위가 격화되면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마지막 군 인사 면면을 조금만 살펴봐도, 이미 청와대와 그 내부의 박근혜 수족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드러난다.
2. 아버지 시대의 악습을 그대로 따라간 박근혜의 최후 군 인사
2016년 10월 말 군 장성의 정기인사에서 교체가 거의 확실시 되었던 기무사령관 조현천 중장이 유임되었을 때부터 이번 기무사의 반란 모의는 시작된 것은 아닐까?
그 이전에 도주한 조현천의 기무사령관 기용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기무사령관은 철저하게 정치적(그래서 더 이상은 필요없는 자리이기도 함)인 자리다. 이 자리에 누가 기용되는가는 정권의 향배와도 직결되며 권력의 의중과 성격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때 그 자리에 왜 조현천이 있었는가를 따져본다면 박근혜와 그 추종세력이 무엇을 머릿속에 담아뒀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현천이 그 시점에 유임된 것은 모두에서 전두환이 중정과 보안사를 모두 장악했던 것만큼이나 분명하게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바로 국가의 기본 틀과 군의 정상 시스템을 부정하고 사익에 기반한 권력 찬탈과 민주주의 질서의 철저한 부정, 즉 반역과 내란음모의 획책이었다.
문제의 조현천 중장은 지난 93년 서완수 기무사령관이 문민 대통령 김영삼에 의해 전격 해임된 이후 25년 만에 기용된 육사 사조직 알자회 출신이다. 하나회 출신 서완수 이후 청와대의 기무사령관 인사는 집권 정당과 상관없이 사조직 출신 배제가 관례처럼 준수되었지만, 이것이 박근혜에 의해 조현천으로 깨졌을 때부터 이미 수상한 조짐은 있었다. 사실 박근혜 권력은 집권하자마자 알자회와 하나회를 다시 중용했다.
하나회의 마지막 기수였던 육사 36기 김현집이 야전의 요직인 3군사령관과 연합사 부사령관까지 역임했던 시기가 박근혜 집권기였다. 김현집은 하나회의 마지막 기수이자 93년 하나회가 소탕된 이후 처음으로 사성장군이 된 경우다. 김현집 이전 하나회가 배출한 마지막 대장이 육사18기 조남풍이었으니 거의 한 세대만의 일이었다. 다시는 대장이 아니 나올 줄 알았던 하나회였으나, 박근혜가 집권하자마자 사조직 출신들이 재중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그간 씨가 마른(?) 하나회에 비해, 박근혜의 16년 10월 명목상 그녀의 마지막 군 장성 인사(왜 명목상인지는 후일 다른 글에서 다룸)에서는 알자회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2016년 10월에 이미 2년의 임기를 거의 다한 조현천은 천만뜻밖에도 기무사령관에 다시 유임되었다. 사실 정상적인 군 인사라면 조현천은 유임될 수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https://blog.naver.com/josephkwon/220855105768
(해당글은 조의 기무사 유임당시에 쓴 글임 참조하실 것. 그때에도 느낌이 싸해서 쓴건데 이후에 이게 맞아 떨어져서 모골이 송연했던 기억이 있네요)
통상의 기무사령관 인사 관례로 볼 때, 정권의 신임이 아주 두텁다고 해도 이 자리에 2년 이상 재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힘센 자리를 특정인이 독점해서 생기는 폐해를 경계함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은 임기 초 두 명의 기무사령관을 모두 임기 전에 갈아치웠고, 특히 두 번째 기무사령관 이재수 중장은 동생 박지만과 고교 육사 동창으로 박근혜와 오래 알고 지냈던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순실의 조언에 따라 1년만에 교체한 것에 비하면, 조현천의 임기 후 유임은 뜻밖이었다. 더구나 조현천은 임기 말 극심한 구설수에 오른 상태.
그도 그럴 것이 같은 해 기무사는 소속 장교들이 방산기밀을 외부에 푼돈을 받고 유출하다 헌병대에 적발되는 치부를 드러냈다. 기밀누출을 막아야 하는 기무부대가 스스로 군 기밀을 돈 받고 내줬다면 이미 말 다한 것 아닌가.
그것도 부족해 기무사 지역 부대장이 매춘조직을 사사로이 운영하며 영리를 추구하다 경찰 수사에 걸리기까지 했으니, 기무사는 그야말로 기강이 엉망이었다.
특권형 친위부대의 난맥상이 이보다 더 심할 수가 없었고, 이쯤 되면 부대통솔과 관리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낸 조현천 사령관은 스스로 물러났어야 했다.
더구나 같은 해 육사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대한 지휘 책임을 지고 즉시 전역을 신청해 물러난 박남수 육사교장(조현천과 같은 중장이다)의 깔끔한 처신과 비교되는 기사마저 올라오며, 조현천 사령관은 그야말로 언론의 질타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었다. 국회에 불려 나와, 심지어 여당 의원들한테서도 왜 물러나지 않느냐고 추궁을 당했을 정도였다.
이렇듯 당장 잘려도 전혀 이상할 게 없던 조현천이 다시 요직에 유임된 시기가 하필 촛불시위가 격화되는 시점과 일치한다. 이걸 그냥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의 입에서 계엄령 경고가 터져 나왔다. 당시 이를 제보한 이가 수방사 참모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히 조현천이 유임된 기무사는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새로운 인물이 기무사에 부임했다면, 그토록 빠르게 박근혜의 지시를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엄청난 하자에도 불구하고 박이 조현천을 다시 신임한 것은, 국정농단이 드러나는 초유의 궁지에 몰려 사면초가가 된 자신의 입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전술했던 사조직 알자회의 약진은 박근혜의 10월 군 인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박근혜는 그 아버지인 박정희가 집권 18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구축했던 정권보위 시스템, 즉 특권형 대전복부대(이른바 권력을 수호하는 친위대)들의 지휘관을 전부 자신의 말을 잘 따를 만한 요건을 가진 인사 혹은 자신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인사들로 채워 넣었다. 아니, 그 시점에서 더더욱 이러한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먼저 정권보위의 핵심인 대전복부대의 신경망, 기무사령부의 수장이 유임된 데 이어, 시위 진압시 가장 먼저 동원되도록 지정된 특전사여단을 지휘하는 특전사령관에 같은 알자회 출신 조종설 중장이 10월 30일 부임한다. 그런데 조종설 중장의 전임자는 역시 같은 알자회 출신 장경석 중장이었다. 이는 매우 드문 경우라고 봐야 한다.
알자회 출신 장성이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더구나 같은 배경을 가진 이를 이런 식으로 계속 요직에 연이어 보임하는 작태는, 누가 봐도 믿을 만한 소수의 특권층을 형성하고, 이들이 군의 주도권을 휘두르게 하여 자신에게 충성토록 하는, 7,80년대 박정희·전두환의 인사 스타일이었다.
더구나 특전사령관에서 물러난 장경석마저, 그보다 이틀 앞선 10월 28일에 요즘 뜨고 있는 항공작전 사령관이라는 요직에 재배치 된다. 항공작전사령부는 육군 내 주력 헬리콥터 부대를 통솔한다. 80년 5월 당시 헬기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떠올려보라. 공군보다 시위진압에 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게 항작사 예하 부대들이며, 이들의 수송력이 있어야만 특전사 예하여단들이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항작사 신임사령관마저 알자회가 된 건 예사롭지 않은 징후 중 하나였다. 알자회 역시도 문민정부 시기에 존재가 발각된 이후 극심한 견제와 불이익 처분을 받아, 육사 출신에게는 수월하다는 대령 진급자가 전혀 나오지 못한 알자회 기수가 수두룩했다. 조현천의 군경력을 살펴봐도 1차에 진급한 경우는 전혀 없고, 거의 2차 혹은 3차에 간신히 진급하곤 했었다.
심지어 동기생들에게서도 영구제명된 육사 판 얼자(?)에 천덕꾸러기 신세였는데, 이들이 연이어 친위대에 해당하는 기무사령관 유임에 특전사령관에 연이어 기용되고 항작사령관이 되는 이 드문 현상을 어찌 봐야 할까.
당시 군 인사권자 박근혜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이들을 기용했을지 뻔하지 않은가.
알자회 출신 장성들은 그들이 왜 요직에 중용되었을지 모르지 않았을 것이며, 인사권자이자 군 통수권자였던 박의 모든 더러운 지시 혹은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명령에 언제든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는 필요충분조건을 전부 갖추고 있었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
전두환이가 보안사와 중정을 홀라당 다 먹어치웠을 때도, 명백히 그가 권력의 정점에 선다는 명백한 근거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후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던가?
결정적인 물증이 없다는 형식논리적이고 안이한 인식이야말로, 이번 기무사 내란미수와 반란실패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고, 군의 통수와 운용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집권당의 크나큰 오판과 방심에서 기인하기에, 실로 그 잠재적인 위험이 백척간두에 달했다.
2016년 촛불 시민이 지켜준 소중한 민주 헌정 질서를 다시금 위기에 빠트릴 셈인가?
더 이상 박근혜 매국 반민주 역적 잔당들이 모의한 내란 미수사건을 수수방관하지 말고, 특검을 통해 제대로 다시 수사하고, 온전하게 죄지은 자들을 응징해야 한다.
다음에는 기무사가 감추거나 은폐했을 문서와 기무사의 사전공작 징후에 대해서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