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소미아 문제’ 해결책 일본에서 찾아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미국의 연장 압박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13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한국을 방문한 데 이어, 14일에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방한한다. 이튿날 열릴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는 전시작전권 전환과 연합방위태세 점검을 논의하는 자리이지만, 이번엔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지소미아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원칙에 따라 미국의 지소미아 연장 압박에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미국의 압력은 전방위적이다.
지난주에는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차관보가 방한해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지소미아 연장을 강하게 요구한 바 있다.
이번주엔 밀리 합참의장이 일본과 한국 순방길에 지소미아가 ‘지역의 안보와 안정에 필수적’이라며 ‘한-미-일의 결속’을 강조했다. 밀리 의장은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를 직접 만나 지소미아 문제를 논의한 뒤 ‘지소미아 종료 전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밝혔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도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주변국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거들고 나섰다.
국무부 고위인사에 이어 미군 수뇌부까지 지소미아 연장 압박에 총출동한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지소미아 종료의 원인을 제공한 쪽이 일본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은 안보상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는 이유를 들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행했다. ‘안보상 믿을 수 없는 나라’라며 가장 중요한 안보사항을 제공받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에 따른 합당한 조처다.
그런데도 미국이 일본의 원인 제공엔 입을 닫은 채 한국만 압박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동맹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동맹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일본이 부당한 수출규제를 철회하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미국은 한국 정부와 국민의 뜻을 깊이 헤아리는 게 필요하다. 지소미아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한국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쥐고 있다. 일본을 놔두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일본과의 군사정보 공유에 대한 한국 국민의 부정적 여론만 키울 수 있다.
정부는 미국의 압박에 물러서지 말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건, 미국 압력에 굴복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꼴이 될 뿐이다.
[ 2019. 11. 14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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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게 공개적으로 물어야 할 것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말한 북-미 협상의 ‘연말 시한’이 다가오지만, 협상을 되살리기 위한 물밑 접촉의 노력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주말 “미국이 매우 적극적으로 북한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지만, 북-미 간 진지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징후를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북한은 기회 있을 때마다 ‘시간이 소진되고 있다’며 대미, 대남 비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 11월 미국 대선 전에, 북핵 문제에서 분명한 성과를 내고, 역사적인 북-미 관계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 몹시 의심스럽다. 김정은과의 ‘개인적 신뢰’를 강조하며 보여주기용 협상은 이어가겠지만, 북한이 먼저 양보하지 않는 이상 협상의 돌파구를 열 만한 진지한 제안을 할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 북한의 비핵화 행동, 예를 들어 보유 중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범적으로 해체하는 등의 행사가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에 큰 도움이 되리란 관측이 있었지만, 지금 분위기론 미국 대선에 북한 문제를 활용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한국 정부를 압박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엄청 올려서 받아내는 게 유권자들 표를 얻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읽힌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를 현 상태로 그냥 끌고가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판단을 하는 듯하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중단시켰고, 상징적이긴 하나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함으로써, 지난 수십 년간 어느 미국 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막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북핵 문제에 ‘현상 유지’란 없다.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질 뿐, 상황은 그대로 멈춰 있지 않는다. 현상 유지를 바라는 순간, 북핵 문제는 악화일로를 치닫기 쉽다. 바로 지금이 그런 위험이 가시화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상황이 이런데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고, 한국 정부는 멀리서 이를 지켜보듯이 서 있기만 한 건 몹시 위태롭게 보인다.
최근 일주일이 멀다 하고 서울을 찾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관리들이 ‘북핵’ 문제가 아니라 ‘방위비 분담금’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만 거론하고 있는 건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
연말 시한은 다가오는데, 북-미 협상의 돌파구를 어떻게 마련할지, 이에 대한 한-미 협의는 대체 어디서 이뤄지고 있는 걸까. 물론 서훈 국정원장의 주도로 두 나라 정보 당국 사이에 물밑에서 논의가 이뤄질 거라는 짐작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정보 수집과 정책 판단을 엄격히 분리하는 미국 정부 시스템에선, 국정원이 앞에 나서는 북한 문제 협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백악관과 국무부의 정책 수립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다.
미국은 지난해보다 무려 5배나 오른 연 50억달러(약 5조8천억원)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청구서를 우리 정부에 들이밀었다. 단순한 ‘협상 카드’라고 치부하긴 어렵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지난 수십년간 미군의 해외 주둔이 막대한 인력과 재원의 낭비였고, (평화를 위한) 협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재앙의 연장일 뿐이란 게 트럼프 대통령의 기본 시각”이라고 보도했다.
쿠르드족에 대한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시리아 주둔 미군을 손쉽게 빼냈듯이, 한국이 막대한 방위비를 내지 않으면 언제든지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낼 수 있으리라 보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동맹의 가치’가 오직 돈으로만 환산되는 시기에 접어든 게 ‘트럼프 시대’의 특징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북-미 협상의 진전을 돕기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보다 조용히 뒤에서 돕는 역할을 자처해왔다.
며칠 전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5당 대표의 청와대 만찬에서 ‘한국 정부가 남북문제에 더 주도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 발언에, 문 대통령은 “북-미 회담이 아예 결렬됐거나 그러면 조치를 했을 텐데, 북-미 회담이 진행되며 미국이 보조를 맞춰달라고 하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젠 한국 정부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북핵 문제보다 ‘50억달러 분담금’에 더 몰두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진정 지금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물어야 한다.
지나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는 한-미 동맹을 위태롭게 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뿐이란 점을 분명하게 트럼프 행정부에 깨우칠 필요가 있다.
박찬수ㅣ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6908.html?_fr=mt0#csidx39f150d7cb8745481ecbad709d8a5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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