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이자 이순신의 후임자, 이시언 장군

道雨 2020. 9. 13. 21:49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이자 이순신의 후임자, 이시언 장군

 

1589년(선조 22) 당시 우의정으로 있던 나암(懶庵) 정언신(鄭彦信)[1527~1591]의 천거로 오위의 사용(司勇)에 기용되어 사과(司果)를 거쳐,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선조 25) 인천부사로 나갔다. 이 때 큰 공을 세워 당상관에 오른 뒤, 1593년(선조 26) 황해방어사가 되었다.

1594년(선조 27) 전라병마절도사가 되어,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라도를 지키며 큰 공을 세웠다. 곧이어 해주목사, 장흥부사를 거쳐, 1596년(선조 29) 충청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이 때 경주 탈환전에서 의병장 정기룡(鄭起龍)·권응수(權應銖)와 함께 명나라 원군과 합세하여 공을 세우고 가선대부에 올랐다.

1598년(선조 31)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뒤, 이시언이순신 장군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다. 1599년(선조 32) 이시언은 객사인 여수 진남관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인 여수 충민사를 건립했다.

1600년(선조 33) 삼도수군통제영을 가배량(加背梁)[현 거제도]으로 옮겨야 한다는 장계를 올려, 1601년(선조 34) 삼도수군통제영은 지금의 통영으로 옮겨지고, 여수는 다시 전라좌도 수군절도영으로 남게 되었다.

1605년(선조 38) 함경도순변사로 변방을 지켰고, 광해군 때는 평안병사·훈련대장 등을 거쳐, 인조 초 순변부원수(巡邊副元帥)가 되었다.

그러나 이시언의 평안병사 후임이었던 이괄(李适)이 1624년(인조 2) 난을 일으키자, 그 일파로 몰려 사형되었다.

여수에는 이시언의 재임 시 선정을 기리기 위한 이시언 선정비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