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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협회는 신문사 입김 아래…부수 부풀리기 손쉬웠다

道雨 2021. 3. 24. 10:30

ABC협회는 신문사 입김 아래…부수 부풀리기 손쉬웠다

[난맥상 드러난 ABC협회 운영]

협회 운영 “고양이에 생선 맡긴 꼴”
매체사 회비가 운영비의 90%
이사에 유력 일간 판매국장들
부수인증 신뢰 문제 불거져도
회장 보수 논의하다 ‘2년 허송’

협회 지배구조 이대론 안 돼
문체부 “이사회에 제3자 참여를”
학계·소비자·전문가 개방 권고
“인적 쇄신·회의록 공개 넘어
신문산업 정상화 계기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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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 “학생이 자신이 낸 답안지를 채점하는 상황.”

신문·잡지 등의 발행·유료 부수를 인증해주는 한국에이비시(ABC)협회(이하 협회)의 지배구조를 비판적으로 빗댄 말이다. 협회로부터 부수인증을 받아야 하는 신문사 간부들이 협회의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이사로 참여하는 상황을 뜻한다.

 

‘신문 부수 부풀리기’ 의혹을 조사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협회의 사무검사 결과에서도 유력 신문사 중심의 조직 운영이 문제점으로 확인됐다. 문체부는 “신문사 중심의 임원 구성과 회비 수입 비중으로 인해 매체사 영향력이 과도하게 작용”한 점이 문제라며, 이사회 구조 개선을 권고했다. 협회의 지배구조가 신문업계와 부수 부풀리기를 공모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 신뢰성 논란에도…회장 보수 논의로 2년여 허송세월

 

협회 이사회는 1989년 창립 때부터 매체사와 광고업계를 양대 축으로 구성했다. 정관상 50명을 상한으로 두고 매체사와 광고업계를 같은 비율로 채우고자 했다. 매체 쪽과 광고주·광고회사 간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광고시장의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려는 목적에서, 해외 부수공사들의 지배구조를 참조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균형이 흔들리고 갈등이 지속됐다. 2009년 말 정부가 부수인증을 정부 광고 및 지원금 집행과 연계하는 법령을 만들면서 매체 쪽 회원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폭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협회에 가입한 회원사 총 1591개 가운데 신문·잡지·전문지 등 매체사가 1536개이며, 이들이 내는 연간 회비 총액은 약 18억원으로 협회 운영비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광고주·광고회사 등 광고업계 회원은 55개(3%)이다. 회비가 부수 규모에 비례해 늘어나는데, 협회 이사도 회비를 많이 내는 매체 위주로 채워진다. 주로 유력 일간지 판매국장(본부장)이 이사로 참여한다. 같은 시기 뉴스 이용률이 인쇄 매체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옮겨가고, 종이신문의 광고효과가 급감하면서 광고업계에선 부수인증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었다.

광고주 쪽 추천으로 협회 이사를 맡은 ㄱ씨는 “협회 이사회에서 신문업계나 광고업계가 표결 대신 협의 위주로 의사 결정하는 시기도 있었는데, 3~4년 전부터 신문업계와 회장이 뭉쳐 일방통행을 하는 바람에 이번 문제가 불거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이사회 운영의 문제 사례로 “(2018년 9월 이후) 회장 보수 지급을 위한 정관 개정을 지속 시도하는 등 행정력 낭비”를 짚었다. 당시 협회 정관에서 “임원은 무보수로 한다. 단 회장과 상임이사 중 1인에 한해 보수를 지급한다”고 정했는데, 보수 지급 범위를 늘리고자 정관을 바꾸는 논의를 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의미다.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8년 9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총 8번의 정기·임시 이사회 회의록을 살펴보니, 문체부가 지적한 ‘허송세월’이 사실로 확인됐다. <저널리즘 토크쇼 제이(J)>(KBS) 등 언론에서 제기하는 부수인증 신뢰성 의혹 해소나 미디어 환경 변화에 발맞춘 부수인증제 혁신이 긴급한 상황이었지만, 협회 이사회는 이와 관련한 소수 이사의 문제 제기를 대부분 묵살했다. 이사회 의장인 회장의 보수를 어떤 형식으로 얼마나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2년여를 흘려보냈다.

문체부는 “회장의 협회 운영 방식으로 인한 갈등과 부수공사 제도의 신뢰성 상실 등”을 이유로 ‘기관장 경고’를 한 상태다. 광고회사 쪽 추천 이사인 ㄴ씨는 “협회 쪽에서 문체부 사무검사 결과나 후속 조처에 대해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회장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짚었다. 하지만 협회 관계자는 <한겨레>에 “협회 직원 대부분은 ‘기관장 경고’를 승복하지 못하고 있다. 납득할 수 없는 조처”라고 답했다. 회장은 취임 뒤 “안정적인 자산 운용과 노사 화합”을 유지했다는 이유에서다.

 

■ ‘해체에 준하는’ 조처와 신문산업 정상화 필요

 

문체부는 협회 이사회 구조를 개선하는 조처로 ‘제3자’(학계·소비자단체·회계전문가·법조인·한국언론진흥재단 등)가 신문업계, 광고업계와 동등한 비율로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권고했다. 김승원 의원실 쪽은 “협회 회장단 사퇴와 인적 쇄신은 필요하다”며 “이사회 구성을 유력 신문사 외에 풀뿌리 언론, 전문지 등 다양성을 갖추는 쪽으로 바꾸고, 이사회 회의록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언론시민단체에서는 ‘부수 부풀리기’와 관련한 문제를 “언론개혁의 중대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풀뿌리 언론이 모인 바른지역언론연대의 모소영 사무국장은 “협회의 징계와 인적 개선에 그칠 경우 면피용으로 똑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좋은 저널리즘’ 구현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홍보예산을 집행할 기준과 척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지난 18일 낸 성명에서 “이번 사태가 협회 관계자의 처벌과 조사 방식 개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신문산업 수익구조의 과점화, 광고주의 마케팅과 무관한 광고, 공적 재원의 부적절한 집행을 개선할 구체적인 대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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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987976.html?_fr=mt2#csidx593693d7e970fc58bb3817f9b3c9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