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역사전쟁” 호들갑 말고, ‘민생·미래 비전’ 경쟁을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에 대한 보수 야권과 언론들의 ‘색깔론’ 공세가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라며 노골적으로 색깔을 덧씌운 데 이어, 5일에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이 비난에 가세했다.
이준석 대표는 “국민 분열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고자 하는 매우 얄팍한 술수”라며 “친일 논란을 일으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자체를 폄훼하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주자 9명 모두를 겨냥해 “여러분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는가”라며, ‘점령군’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을 하든지 하라. 아니면 백두혈통이 지배하는 북한으로 망명을 하시든지”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점령군’은 미군 스스로가 쓴 명칭이고, 역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다. 그런데도 보수 야권이 거친 말과 조악한 논리를 들이대며 벌 떼처럼 공격하는 모습은 볼썽사납기 짝이 없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이 “대선 역사전쟁” “대선 1·2위 역사논쟁” 운운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시대착오적 색깔론 공세를, 마치 역사적·논리적 근거가 있는 논쟁인 양 포장하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다. 무어라 윤색해봐도 낡은 색깔론 공세라는 본질이 가려지지 않는다.
보수 야권이 일제히 터무니없는 색깔론 공세에 나선 건, ‘장모 사기 사건’ 유죄 선고 및 법정구속, 자신과 부인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쏟아지면서, 지지율 하락 위기에 몰린 윤석열 전 총장을 구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여권 1위 주자를 색깔론으로 때림으로써 강경 보수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의 여권 이탈을 끌어내겠다는, 뻔히 보이는 의도가 지금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도 이런 얕은 계산에 더는 현혹되지 않는다.
코로나 방역에 다시 비상등이 켜졌다. 집값 불안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길게는 자산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를 해소하고,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국민들은 누가 민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미래를 열어갈 비전을 제시하는지 눈여겨보고 있다.
보수 야권은 국민 분열만 부추기는 소모적인 색깔론 공세를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여야 모두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민생 정책과 미래 비전을 놓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기 바란다.
[ 2021. 7. 6 한겨레 사설 ]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002249.html#csidx645a444843f748da54e0c6f37bede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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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규약, 미 점령군과 주한미군
18세기까지 국제사회에서 ‘점령’은 정복이나 착취와 같은 개념이었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패배한 나라의 땅, 주권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도 빼앗았다.
19세기 이후 인도주의 사상, 민족국가 등이 대두하면서, 이처럼 가혹한 점령 개념은 사라지게 됐다.
20세기 이후에는 점령 지역에 대한 ‘일시적 통제’에 기초한 점령 개념이 자리잡게 됐다.
‘군사 점령’(영토 소유권이 군사적으로 주둔군에 있는 상태)에 대한 국제법은 1907년 헤이그 규약으로 성문화됐다. 이 규약의 핵심 내용은 “피점령 지역은 점령국의 영토가 아니며, 이 지역의 주권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국제법상 군사 점령은 전쟁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전쟁 결과로 점령국이 피점령국의 영토 전부 또는 일부 지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통제하면 인정된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한 뒤 38선 남북을 미국과 소련이 나눠 점령했다. 국제법상 미국과 소련은 둘 다 점령군 지위였다. 점령의 목적은 일본군 무장해제와 치안 유지였다. 맥아더 태평양 미 육군 총사령관은 1945년 9월7일 포고령 1호를 통해 스스로 ‘점령군’이라 칭하며, ‘38선 이남 지역에 대한 군정 실시’ 등 6개항을 밝혔다. 이 포고령 내용은 맥아더 장군 마음대로 쓴 게 아니라 헤이그 규약에 근거한 것이다. 미군은 1945년 9월9일 조선총독부의 항복을 접수한 뒤 군정(군사 점령)을 시작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은 ‘미 군정이 끝났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국민의힘, 수구언론이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을 겨냥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한다’며 공격했다. 해방 이후 38선 이남의 ‘미 점령군’은 역사적 사실이고, 국내외 역사·정치학자들이 두루 사용해온 학술 표현이다.
주한미군의 국제법적 성격은 1945~1948년은 점령군이고, 1948년 8월 정부 수립 이후에는 주둔군이다.
윤석열 전 총장 등이 펴는 색깔론 공세는 역사적 사실, 국제법에 대한 무지나 의도적 무시다.
(안준형 ‘해방 직후 주한미군정의 국제법적 성격’, 이춘선 ‘해방 직후 미 군정에 대한 국제법적 검토-한국의 국가성과 제주 4·3사건을 중심으로’ 인용)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02257.html#csidx9406001f5b2445fa4c0a17e1325e0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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